01. 언덕길, 노을 -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그리고 작별

02. ‘그가 말하는 곳’과 괴리된 생경한 어휘가 구축한 몽환적 공간, “남은 집” - 본의 아니게 ‘이것은 실제상황이 아닙니다. 연극입니다’를 부단히 환기시키는 철거 효과음과 단조롭고 작위적인 미장센, 성긴 언행 속에 구겨넣은 연출의도들이 큰 울림으로 전달되길 조바심내는 불친절한 편린들이 난무한다. 하나[진선]는 모두의 목적이고, 다른 하나[두훈]는 모두의 원인이다. 그들이 풍장(風葬)같은 삶을 견뎌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체념이다. 그들은 견뎌내지 않는다. “기다리지 말고 기다리자.” 허무적 기대는 차오르는 밀물에 쓸려가는 뿌리 뽑힌 민초들의 토양이다. ‘진선’은 그들의 ‘고도’ 즉 막연한 구원인 셈이다. “우리 진선이는 날아와서 날 업고 내려가겠지. 암, 그렇고 말고.”

03. [아무도 맡을 수 없는] 자신의 향기를 맡지 못하는 자들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자는 비장한 자기연민에 찌들어있다. “절교한다”는 것은 “소외된다”는 것과 다를 바 없음을 그는 영웅심리를 동원하여 애써 외면한다.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 적막한 시공 속에서 홀로 세상 고뇌를 짊어진 채 그는 오늘 하루도 여러 편의 영화를 찍어댄다. 물론 ‘마스터베이션’이다. 

04. 젝스 키스의 “너를 보내며” - ‘만날 수 없다는 슬픔 보다 힘든 건 / 네가 내 곁에 항상 있어도 외롭다고 느끼는 가슴이야. … 잠들어 버린 내 사랑이라고 해도 / 그걸 무너뜨릴 자신이 없어 / 또다시 혼자 돌아서고 있어 / 내가 원한 너의 사랑도 / 항상 바램으로 끝이 났지만 / 이젠 사랑했던 널 위해 먼저 / 떠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