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진의 말마따나, 루비콘 강을 건넜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다만 사랑일까? 절박하지 않은, 이리저리 재는 가슴앓이도.
혁진의 말마따나, 루비콘 강을 건넜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다만 사랑일까? 절박하지 않은, 이리저리 재는 가슴앓이도.
01. “블로트(J. M. Blaut)는 유럽의 환경이 다른 지역보다 더 뛰어나지도 않았으며, 문화적으로도 우월한 특성이 없다고 단언한다. 유럽 발흥의 원인은 오직 다른 지역의 해운 중심지보다 유럽의 그것이 아메리카로 향한 접근성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02. 1849년 폐트라셰프스키 사건에 연루된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전후 관계를 생각지 않고, 어떤 의도인지 개의치 않고, 조각조각의 말을 임의대로 엮는 것은 위험한 짓이다. … 검열관들은 무해(無害)한 문장에서도 악의를 찾아내려고 한다. 있지도 않은 위험 사상을 상상으로 만들어내고선 작품을 매장해 버린다.” … “‘열 마디 말만 내놓으라. 그걸로도 한 사람을 사형시킬 수 있다’는 식이다.”
03.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는 지적 설계론 - ‘변형된 창조론’으로 간주되는 지적 설계론은 1991년 법학교수인 필립 존슨이 펴낸 ‘심판 받는 다윈’, 1996년 생화학자인 마이클 베히가 출간한 ‘다윈의 블랙박스’, 1998년 윌리엄 뎀스키가 베히의 주장을 수학적으로 논증한 논문 등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 을 “나쁜 과학이자 형편없는 믿음”이라 비판하며, “신자들은 종교와 과학을 함께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04. 미국 연방 대법원은 1987년에 “창조론은 종교적 믿음이기 때문에 공립학교에서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지만 종교와 과학은 여전히 얽혀 있다. 과학 역시 신념에 토대하기 때문이다. 1859년 출간된 <종의 기원>은 줄기차게 다윈의 고해성사를 강요하고 있다. “종은 결코 불변하는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네. 꼭 살인죄를 자백하는 것 같군.”
“먹거리 안전확보라는 개인의 ‘권리 지키기’ 문제에 집중한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중산층적 문제의식이 … 다른 사회ㆍ경제적 문제들에 대한 연대의식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가. 한홍구 : “발랄한 대중에게 운동권은 따분하고 재미없고 판에 박힌 말만 하고 게다가 권위주의적이기까지 했다.”
나. 남재일 : “정부가 민의를 거스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는 것이 대의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시민의 힘으로 재협상을 하는 것이 [절차적] 민주화를 성취한다는 시각은 난센스”라며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수개월 만에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전면적으로 대의 권력을 부정하는 것은 스스로 참정권을 폄하하는 것”이다.
다. 최장집 :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는 대의적 민주주의 체제이며 운동이 항시적으로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라. 김종엽 :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된 이 운동에서 인터넷에 들어가볼 시간조차 없이 노동에 시달리고 해고에 내몰린 노동자들과 촛불항쟁 사이에는 거리가 존재했다. 촛불항쟁은 비정규직 문제, 한미 FTA같은 의제들을 에둘러갔다.”
* 결론은, 충성스런 대의 권력이 스스로 민의를 샅샅이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멋쩍은 ‘당위’만 난무한다. 흐릿해진 개울물은 여전히 뿌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