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y, 2014

May 6, 2014: 6:56 pm: bluemosesErudition

“서구 근대의 기원에 관해서는 실로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1430년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채택했던 시점, 1520년 교회의 권위에 대한 루터의 반란, 1648년 30년 전쟁의 종결, 1776년 북아메리카의 식민지 혁명, 1789년 프랑스 혁명, 1895년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및 회화와 문학에서의 모더니즘의 발흥 등. 이 중에서 어떤 기원을 채택하느냐는 논의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달려있다. 철학에 있어 근대의 출발점은 데카르트의 ‘자기의식’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왜 이를 철학적 사색의 원리로 정립했는가 또는 이 원리의 형성 배경은 무엇인가, 이러한 시도는 데카르트 혼자만의 것인가 아니면 그의 동시대인들이 공유한 일종의 시대정신인가?”

“에라스무스에서 몽테뉴에 이르기까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저술은 도시풍의 열린 마음과 회의적인 관용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태도는 새로운 평신도 문화의 새로운 특징이었다.” 이것은 중세의 종교적 지배를 뚫고 생겨난 것이었다. 그런데 “17세기의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 합리성을 제한하면서 거의 기하학적인 확실성이나 필연성만을 인정했다. 이론물리학은 이성적 연구와 토론에 적합한 영역이었지만, [16세기에 융성했던 실천철학들인] 윤리학과 법학은 그렇지 못한 것들로 간주되었다. 데카르트와 데카르트주의자들은 다양한 종류의 ‘합리적’ 절차들을 존중하기는커녕 모든 주제들을 형식이론의 틀에 끼워 맞추려는 희망을 추구했다. 그들은 오직 형식적으로 타당한 증명에만 몰두함으로써 ‘이성의 언어’ 그 자체를 바꾸어 버렸고, 결국에는 ‘이성(reason)’, ‘이성적(rational)’, ‘합리성(rationality)’ 같은 핵심 용어들의 의미를 바꾸어 버렸다.” ”데카르트의 이러한 전환, 넓게는 16세기의 인문주의적 근대에서 17세기의 이성주의적 근대로의 전환을 불러온 결정적인 사건은 30년 전쟁이다.”

“30년의 잔인하고 파괴적인 전쟁을 거치는 동안, 외세들은 수시로 파트너를 바꾸어 가면서 독일과 보헤미아 전역을 일종의 연무장으로 사용했다. … 독일과 보헤미아는 납골당으로 변해버렸다.” “1618년 30년 전쟁이 발발했을 때 데카르트는 20대 초반이었고, 마침내 1648년 전쟁이 끝났을 때 그의 생애는 2년 남아 있었다. 그는 성인 시절의 대부분을 삼십년 전쟁의 그늘 밑에서 보낸 셈이다.” 그가 추구한 확실성의 원리는 “30년 전쟁의 와중에서 노출된 정치적, 사회적, 이론적 혼란에 대처하기 위한 응전이었다.”

“1570-1610의 시대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한 때이다. 인문주의 정신은 “이론과 교리가 경험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610-1650의 시대는 대재앙의 분위기 속에서 “유럽인들은 신학적 논쟁에 몰두한 나머지, 특정한 교리 보다는 ‘믿음 그 자체’를 믿기에 이른다. 모두가 동의하는 교리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17세기의 데카르트는 최소한의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명석판명한’ 수학적 개념”이라는 창백한 원리에 호소한다.”

30년 전쟁 이후, 우주적 질서(cosmos)와 사회적 질서(polis)의 통일(cosmopolis)을 정초했던 합리성의 원리와 그 체계는 “과학적 장치일 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장치이기도 했다. … 그 과학적 세계관은 행성 운동이나 조류의 간만을 훌륭하게 설명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국가의 정치체계에 정당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 2:35 am: bluemosesErudition

1. “<법률>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 사람의 빚을 갚은 사람이 다른 연대 채무자나 주된 채무자에게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2. “검사가 업무 수행 중에 잘못한 행위를 가지고 형사 처벌을 받는다는 가능성 자체를 검사들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부분에 대해서 국가가 어마어마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고, 해당자에 대해서 구상권을 청구하게 된다면 절대로 그런 짓을 못하게 되는 거죠. 겁나서라도.”(표창원, 2013: 81)

3. “책임은 없는데 도의적으로 돈을 주는 ‘보상’과 책임이 있어 강제로 물어내야 하는 ‘배상’은 차원이 다르다. … 국가나 기관, 법인 등이 ‘배상’하게 되면 그 배상의 원인인 개인 위법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게 된다.”(표창원)

: 2:12 am: bluemosesErudition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May 5, 2014: 2:04 pm: bluemosesErudition

실용주의, 강교수의 철학 이야기, 한국 현대사, 인문+역사고전강의, 부흥

: 1:28 pm: bluemosesErudition

“1일 <내일신문>이 여론조사기관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지난달 30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박 대통령 지지율은 48.8%로 나타났다.”

: 4:19 am: bluemosesErudition

김용옥 “국민들이여, 거리로 뛰쳐나와라!” (한겨레, 2014. 5. 3.)

1950년 6월 25일, 국민 전체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었던 이승만은 새벽부터 전쟁 발발의 소식을 듣고 우선 자기 혼자 도망갈 생각부터 했다. 26일 아침 8시 신성모 국방장관이 방송에 나와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치고 북진중에 있다”는 담화를 발표한다. 그런데 27일 새벽부터 비상국무회의가 열렸지만 이승만은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고 열차편으로 이미 몰래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대전 도피에 관해 각료는 물론, 국회의원, 하물며 육군본부에까지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승만은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곧 특별담화를 녹음한다. 27일 밤 9시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전파를 타고 전국민에게 전달되었다: “우리 국군이 용감하게 적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국민과 공무원은 정부 발표를 믿고 동요하지 마십시오. 나 대통령 본인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서울을 지키고 있습니다.” 생거짓말이었다.

이날 정훈국장교의 말만 믿은 모윤숙은 밤늦게까지 가두선전방송을 하고 다녔다. 이승만의 파렴치한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8일 새벽 2시30분 아무 예고도 없이 한강대교를 폭파시켜 버렸다. 사전 통보나 통제가 없었기에 50대 이상의 차량이 물에 빠지고 그 다리를 건너가던 시민 500여명이 폭사하였다. 군사전략적으로 볼 때도 이것은 터무니없는 실수였다.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던 우리 국군이 퇴로를 차단당하고 와해, 희생된 것이다.

이승만은 7월1일 대전에서 또다시 도망갈 때도 목포로 가서 부산으로 배를 타고 갔다. 경부가도가 이미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전 서울 시민을 서울에 가두어놓고 자기 혼자만 살 생각을 했다. 그리고 9·28 서울수복을 했을 때 서울에 남아 고생한 뭇 시민들을 부역했다고 죽이고 고문하고 연좌제로 묶어놓았다. 우리는 이러한 이승만을 성스러운 통치자로 모시는 기나긴 정치사적 이념의 굴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역사의 비극적 상황이란 모든 함수가 최악의 길을 재촉하도록 협동을 한 필연·우연의 사태이기 때문에 그 인과를 단선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이나 반성에 크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인과계열 중에서도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들이 있다.

우선 배에 관하여 정확한 구조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끝까지 남아서 승객의 안위를 책임지어야 할 선박직 승무원 15명 전원이 먼저 탈출하여 쌩쌩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이준석 선장과 일등항해사가 탈출하면서도 학생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객실 속에서 제자리를 지킬 것을 명령하였고 그것을 계속 강요하였다는 가슴 아픈 일련의 사태에 내재한다. 모든 비극은 이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로부터 연역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다. 위기상황에 누구든지 나 먼저 살고보자는 본능적 움직임은 충분히 요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과 이준석의 경우 도덕적 양심을 운운치 않더라도 이러한 생존본능의 논리조차 적용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승만의 서울 탈출이나 이준석의 세월호 탈출은 전혀 시민, 승객의 탈출과 충돌을 일으키는 사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서울을 빠져나오면서도 서울시민들에게 탈출을 권고할 수 있었고, 이준석은 세월호를 빠져나오면서도 승객들에게 같이 탈출하자는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자신의 탈출이 학생들의 탈출로 인하여 저지되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 도호쿠지진 때 미야기농고의 학생들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소·돼지 축사의 문을 열어주고 피신했다. 하물며 인간이랴! 이것은 이승만과 이준석의 디엔에이 심층구조 속에까지 사람은 존엄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와 관리의 수단일 뿐이라고 하는 비인성적 무책임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다. 이들이 생각하는 코스모스는 다중의 죽음이다. 죽음의 질서인 것이다. 이것은 우발적인 사태가 아니라 우리 민족사의 구조적인 사태인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도 선조는 대책 없이 먼저 도망쳤다. 사실 왜군은 이순신에게 해로를 차단당해 보급이 끊겼기 때문에 식량이 없었고 지쳐 있었다. 서울은 한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다. 그리고 당시 서울에는 화약이 2만7천 근이나 저장되어 있었다. 한강의 대형 수송배들과 지형을 활용하고 강북 강변에 군사를 배치하여 대처했더라면 왜군의 도강을 쉽사리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선조는 가마를 메어줄 사람도 없어 우중에 말을 타고 쫄쫄 비 맞고 굶으면서 북상에 북상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이승만처럼 자기가 건넌 임진강변의 건물과 배는 다 태워버렸다. 한번 생각해보라! 그가 의주까지 도망갈 때, 그의 말을 이끌었던 말단 관리 이마와 임란을 승리로 이끈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 장군 두 사람의 공훈을 평가할 때, 누굴 더 높게 평점했을까? 왜란이 끝나고 전체 훈공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선조는 이순신이 일적추(一賊酋)의 목도 베지 못했고, 일적진(一賊陳)도 함락시키지 못했다고 생거짓말을 하면서, 왜란을 토평한 것은 오로지 자기가 의주에서 요청하여 온 천병(天兵) 덕분이라고 말한다. 선조의 의식 속에서는 이순신이나 왜적과 피 흘리며 싸운 의병들보다 자기 말몰이꾼이 더 위대한 것이다.(<호성선무청난삼공신도감의궤>)

지금 전국민의 애간장을 끓게 만드는 것은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최초의 시각으로부터 적게는 20분, 넉넉하게는 2시간 정도, 충분히 사태 해결을 위한 구명결단의 여백이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이 최초 절명의 황금시간에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언론은 부정확한 보도로 사태를 흐리게 했을 뿐 아니라, 모든 관련된 국가행정부서의 사람들은 혼선을 빚기만 하는 다양한 대책본부를 꾸리기만 하면서 황금시간을 허송했고, 또 거짓말만 남발했으며, 그 사건 현장에 당도한 그 어느 누구도 학생들이 애처롭게 죽어간다는 것을 목도하면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순신이 좌수사로서 당시 세태의 관행에 역행하여 임란 직전에 수군과 화포와 전술과 전함을 정렬해놓았다는 이 사실은 오로지 그의 독자적 판단에 의거한 것이다. 이러한 이순신에게 선조는 원균의 모함을 빌미로 종적죄를 씌워 서울로 끌어올리자마자 심한 고문을 가했다. 삼도수군통제사로서 5년 동안 나라를 구한 명장을 함부로 나국한 것이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우리 역사는 구조적으로 책임을 질 줄 아는 결단의 인물을 키우지 않았다. 호걸이란 성군문왕의 다스림이 없이도 태어난다고 맹자가 말한 그 리더십의 주인공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 오로지 민중의 직감적 판단 속에서만 우리 사회의 정의는 지켜져 내려온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역사가 총체적 부실 속에서 결정권자가 부재한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총체적 부실의 주체는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이다. 그리고 이 박근혜 정부의 구조적 죄악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모두 박근혜 본인에게 돌아간다. 세월호 참변의 전과정을 직접적으로 총괄한 사람은 박근혜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의 정부의 사람과 이념, 그 모든 것이 박근혜가 창조한 것이다. 그만큼 통치의 정점은 국가의 안위에 막중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진심어린 전면적인 사과의 한마디도 없었다. 과거의 황제인 한(漢)나라의 문제(文帝)조차 불상사가 일어날 때마다 거느리고 있는 신하를 탓하지 않고 자기가 국민 앞에 직접 사죄했다. 맹자는 통치자가 진정 생도(生道)의 원리를 가지고 다스리면 죽는 사람도 죽음을 원망치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사도(死道)의 원리로써 생사람까지 죽이고 있다. 이 불상사는 99.99%의 대중을 희생시켜 0.01%의 부귀권세가들을 봉양하려는 이명박 정부 이래의 줄기찬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기조가 교육·경제·정치·행정·법률·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이 만들어낸 것이다.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은 이윤 극대화를 위하여 승객을 짐짝화한 것이다.

이 사회의 주류 언론들이 이 기회에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소재가 있는 모든 행정조직, 또 세모-청해진과 같은 음흉한 범죄기관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과격한 주장을 펴지만 이것은 사태의 본질적 해결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박근혜에게 무소불위의 과거 독재자가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박근혜와 그 주변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태를 활용하여 도덕적 제스처의 칼자루를 휘두르기만 하면 목전의 선거에서 승리를 구가할 수 있다는 계산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선교사 김선일 사건 때에 박근혜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며 국민 한 사람을 못 지켜낸 그러한 정부에 대하여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다는 논조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도올은 선포한다: “박근혜, 그대의 대통령의 자격이야말로 근본적인 회의의 대상이다.” 그대가 설사 대통령의 직책을 맡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허명이다. 그대의 대통령이라는 명분은 오로지 선거라는 합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정당화되는 것인데, 그 정당화의 법률적 근거인 선거 자체가 불법선거였다는 것은 이미 명백한 사실로서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이 땅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미 그대에게 대통령 사직의 권고를 한 바 있다. 트위터상에 올라오는 어린 학생들의 문구 속에도 항변의 언사들이 많다.

국민들이여! 더 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의기소침하여 경건한 몸가짐만에 머물지 말라! 국민들이여! 분노하라! 거리로 뛰쳐나와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박근혜여! 그대가 진실로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차마 여의치 못하다고 한다면, 정책의 근원적인 기조를 바꾸고 거국적 내각을 새롭게 구성하여 그대의 허명화된 카리스마를 축소하고 개방적 권력형태를 만들며, 주변의 어리석은 유신잔당들을 척결해야 한다. 그들은 통치능력이 부재한 과거의 유물이라는 사실이 이미 명백히 드러났다. 그대의 양신(良臣)은 민적(民賊)이다.

규제를 왜 푸는가? 그대의 규제풀음은 가진 자를 위한 것이다. 그대가 풀어야 할 규제는 사상통제의 규제이며, 언론의 규제이다. 유통을 장악하고 골목상권까지 독점하는 모든 대자본에 대하여 규제를 강화하라! 중소자영업의 생활세계를 보호하라! 그것이 민중의 갈망이다! 언론을 바로 세워라!

그대는 “국가개조”를 말했다. 그러나 그대가 중심이 된 국가개조는 악순환만 초래한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의 근원적 변화는 그대의 시녀가 되어버린 검찰이나 행정체계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원칙에 따른 국민적 합의가 창출한 새로운 기관에 의하여, 다시 말해서 국민이 주체가 되어 국민 스스로의 미래를 개혁해 나가는 과정을 그대가 적극 도와주는 그런 변화이어야 한다.

이제마는 말했다. 투현질능(妬賢疾能) 이상의 대환(大患)이 없고 호현낙선(好賢樂善) 이상의 대약(大藥)이 없다. 맹자는 호선(好善)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천하를 다스리기에 넉넉함이 있다 했다. 호선이란 낙문고언(樂聞苦言)이다. 쓴 말을 듣기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애타게 챙겨주며 질서를 지킨 단원의 학생들, 그들을 보호하며 목숨을 던진 선생님들, 선박직이 아닌 헌신적 승무원들, 그리고 책임을 통감하고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강민규 교감님, 우리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민족의 도덕성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민족 구원의 빛줄기는 있다. 세월호 희생자 302명은 살아 있다.

: 3:08 am: bluemosesErudition

“이미 수구언론은 ‘우리가 다 죄인’이라느니, ‘모든 어른이 죄인’이라는 식의 거짓 성찰로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말하며, 나와 내 새끼의 구명보트를 기대하며 이 살인 체제를 외면해온, 그래서 결국 99%에 해당하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지옥을 만들어버린 내 삶으로부터 즉각 하야해야 한다.”(김규항)

: 12:38 am: bluemosesErudition

Ephesians 5:15-17 ESV

Look carefully then how you walk, not as unwise but as wise, making the best use of the time, because the days are evil. Therefore do not be foolish, but understand what the will of the Lord is.

* 편린의 수집으로 허송세월하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May 4, 2014: 11:58 pm: bluemosesErudition

샘 레벤슨(Sam Levenson)의 “Time Tested Beauty Tips”는, 헵번의 유언으로 알려져 있다.

: 12:54 pm: bluemosesErudition

Proverbs 3:5-6 ESV

Trust in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and do not lean on your own understanding. In all your ways acknowledge him, and he will make straight your pat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