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판토 해전에서 왼팔을 잃고, 귀환 중 터키 해적에 붙잡혀 5년간의 포로 생활을 경험한 세르반테스. 서른세 살에 귀환한 조국은 그에게 숨 막히고 두려운 공간이었다. 중남미로 보내 달라는 두 차례 청원도 거절당하고, 징발관으로 복무 중 교회의 밀을 징발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한다. 심지어 가족의 일에 연루돼 무고하게 옥살이까지 한다. 저자는 말한다. <당시 목숨을 부지하려면 모순에 눈감은 채 주어진 체제에 순응하며 동조하든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으면 스페인을 떠나면 되었다. 이 두 가지조차 불가능하다면 유일한 돌파구인 위장술만이 남는다.> 세르반테스는 이런 화려한 제국 뒤에 감춰진 비참한 현실을 글로 담아내고자 했다. 결국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 패러디였고, 진실과 우롱, 광기와 제정신, 희극과 비극 간의 끊임없는 역설로 당대의 현실을 녹여 냈다. 20세기 스페인의 지성 호세 오르테가가 <영웅적인 위선>이라 평한 것처럼, 자기 양심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종교 재판의 검열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작가는 『돈키호테』에 감쪽같은 가면을 씌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