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rch 14th, 2016

March 14, 2016: 11:37 pm: bluemosesErudition

“1950년대 탄생한 인공지능은 딥러닝으로 대표되는 기계학습의 진보, 강력한 반도체의 등장 및 빅데이터 시대의 도래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주로 규칙 기반(rule-based)의 인공지능 기술이 연구됐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빅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병렬처리 기술과 다양한 실제 사례를 통해 학습하는 데이터 주도적(data-driven) 기계학습 기술이 꽃을 피우면서 알파고와 같은 인간 수준 인공지능 구현이 가능하게 됐다.”(윤성로)

“알파고의 성취는 현실적으로 계산이 불가능할 만큼 컸던 경우의 수를 확률적인 학습을 통해 계산 가능한 범위로 좁혀냈다는 점이다. 확률적인 학습이라는 표현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사람은 이렇게 두더라’이고, 둘째는 ‘이런 상황에선 이렇게 둬봤더니 대체로 좋더라’이다. 알파고는 확률적 추론을 통해 바둑에서 이기기 위해 작성된 프로그램이다. 바둑판 위에 특정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이론과 기풍을 떠나서 좋은 수와 나쁜 수 사이에 확률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면 알파고는 이를 추론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바둑뿐 아니라 인간이 확률·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성향을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는 분야라면 어디든지 앞으로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이 점차 효과적으로 사람같이 행동할 것이다. 해당 확률분포가 실제로 존재하는 한 이것은 기정사실이다.”(유신)

“비행기가 하늘을 날려고 새처럼 날갯짓을 할 필요가 없는데, 왜 컴퓨터가 사람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가?”(스튜어트 러셀+피터 노빅)

: 12:21 pm: bluemosesErudition

복음주의 선교 운동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 로잔 언약(The Lausanne Covenant · 1974)의 입안자였던 존 스토트는 평생 “성경적으로 균형 잡힌 기독교”를 추구했던 사람이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분열을 가져다주는 지성과 감성, 보수와 진보, 형식과 자유, 복음전도와 사회참여 간의 갈등 구조 속에서 성숙한 신앙인이라면 극단적이 되거나 균형을 잃어버려서는 아니 될 것을 역설했다. 그리고 그는 균형 잡힌 삶을 위해서 그 둘 사이의 중간에 서기보다는 양극단을 다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이것과 저것의 중간에 서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양쪽을 확실하게 잡는 것이야말로 둘 사이에서 제대로 균형을 잡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루퍼트 멜데니우스가 처음 사용했지만 리처드 백스터에 의해 널리 알려진 격언을 인용한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 사랑을!” 

: 12:14 pm: bluemosesErudition

“성서조선아, 너는 소위 기독 신자보다도 조선혼을 소유한 조선인에게 가라, 시골로 가라, 산천으로 가라. 거기서 나무꾼 한 사람을 위함으로 너의 사명을 삼으라.”(1927년, 26세, 김교신, 성서조선 창간호)

: 11:49 am: bluemosesErudition

“지금까지 우리가 대광학원에 35억 원을 기증했습니다. 전세금은 한 푼도 없습니다. 재산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무소유 교회입니다.”(김형국)

: 3:21 am: bluemosesErudition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고, 어떻게 구현하는지 깨닫고 소망하는 삶. 이것이 새로운 삶의 목표, 자기부인이다.

: 1:23 am: bluemosesErudition

나들목교회 대표 목사 김형국. 10년 넘게 청년들을 만나시면서 목사님이 꼭 던지는 질문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중심사상이 무엇입니까?” 사랑, 구원, 십자가, 제자도, 선교, 예배 … 아직도 “하나님 나라”라는 정답을 듣기가 힘들다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의 “힘듦”의 이유는 사실 자본주의의 가치관이 규정한 “힘듦”은 아닐까요? “하나님 나라”가 우리 사고와 행동의 틀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