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의대를 졸업했고 전남대에 정신과를 창설한 김성희 교수에게 정신의학을 배웠다. 국제정신분석학회장을 역임한 런던대학의 산들러 교수에게 정신분석을 배웠고, 영국 정신분석학회 교육분석가인 베이커 박사와 샌디에이고 정신분석학회의 교육분석가인 타이슨 박사에게 350여 시간에 걸친 개인분석을 받았다.”
“나는 40대 초반에 영국 런던에서 정신분석을 받았다. 열등감과 대인관계의 긴장감 때문이었다. 친밀항의 문제는 내 문제이기도 했다. 물론 정신분석을 배우고 싶다는 동기도 작용했다. 분석시간에 희열을 느낄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머니의 사랑에 목말라하는 내 마음속의 아이를 만났다. 6개월간 분석을 받고 귀국했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 생활을 계속하면서 뭔지 모를 부족함을 계속 느꼈다. 마음속의 아이를 만나기는 했지만 마음이 자유롭지는 못했다. 친밀함의 문제는 그대로였다. 정통 정신분석을 제대로 받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50대 중반에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다시 분석을 시작했고 350여 시간의 정통정신 분석을 받았다.”
“힘세고 사나운 아이들이 두려웠다. 다행히 나는 누나와 형이 우리 학교 교사였고 아버지가 우체국장이라는, 시골에서는 무사하지 못할 집안 덕분에 힘센 애들에게 폭행당하거나 무시당하지 않았다. … 태권도나 권투를 배워 보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나는 내 자신이 나약하고 비겁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싸울 자리는 미리 피하고 부당하게 당해도 먼저 사과했다. 사람들은 나를 순하고 선량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나는 당당하게 맞서 싸우지 못하는 자신에게 불만이 컸다. 그런데 50대 중반에 분석을 받으며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나를 나약하고 비겁하게 만든 것은 강한 상대방이 아니었고 나 자신의 분노 때문이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