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uly, 2016

July 22, 2016: 10:49 pm: bluemosesErudition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초월성과 내재성, 순진한 이상주의와 냉혹한 현실주의 사이에서 니버는 ‘불가능한 가능성’을 견지했다. 하여 혹자는 그의 사상을 이상적 현실주의, 현실적 이상주의라 칭한다.

: 11:51 am: bluemosesErudition

“David learnt through this event that serving God according to God’s word must come before passion and earnestness.”

: 10:52 am: bluemosesErudition

Blessed are you who are poor, for yours is the kingdom of God. Blessed are you who are hungry now, for you shall be satisfied. Blessed are you who weep now, for you shall laugh. Blessed are you when people hate you and when they exclude you and revile you and spurn your name as evil, on account of the Son of Man! Rejoice in that day, and leap for joy, for behold, your reward is great in heaven; for so their fathers did to the prophets. But woe to you who are rich, for you have received your consolation. Woe to you who are full now, for you shall be hungry. Woe to you who laugh now, for you shall mourn and weep. Woe to you, when all people speak well of you, for so their fathers did to the false prophets. But I say to you who hear, Love your enemies, do good to those who hate you, bless those who curse you, pray for those who abuse you. To one who strikes you on the cheek, offer the other also, and from one who takes away your cloak do not withhold your tunic either. Give to everyone who begs from you, and from one who takes away your goods do not demand them back. And as you wish that others would do to you, do so to them. If you love those who love you, what benefit is that to you? For even sinners love those who love them. And if you do good to those who do good to you, what benefit is that to you? For even sinners do the same. And if you lend to those from whom you expect to receive, what credit is that to you? Even sinners lend to sinners, to get back the same amount. But love your enemies, and do good, and lend, expecting nothing in return, and your reward will be great, and you will be sons of the Most High, for he is kind to the ungrateful and the evil. Be merciful, even as your Father is merciful. Judge not, and you will not be judged; condemn not, and you will not be condemned; forgive, and you will be forgiven; give, and it will be given to you. Good measure, pressed down, shaken together, running over, will be put into your lap. For with the measure you use it will be measured back to you.

Can a blind man lead a blind man? Will they not both fall into a pit? A disciple is not above his teacher, but everyone when he is fully trained will be like his teacher. Why do you see the speck that is in your brother’s eye, but do not notice the log that is in your own eye? How can you say to your brother, ‘Brother, let me take out the speck that is in your eye’, when you yourself do not see the log that is in your own eye? You hypocrite, first take the log out of your own eye, and then you will see clearly to take out the speck that is in your brother’s eye. For no good tree bears bad fruit, nor again does a bad tree bear good fruit, for each tree is known by its own fruit. For figs are not gathered from thornbushes, nor are grapes picked from a bramble bush. The good person out of the good treasure of his heart produces good, and the evil person out of his evil treasure produces evil, for out of the abundance of the heart his mouth speaks. Why do you call me ‘Lord, Lord’, and not do what I tell you? Everyone who comes to me and hears my words and does them, I will show you what he is like: he is like a man building a house, who dug deep and laid the foundation on the rock. And when a flood arose, the stream broke against that house and could not shake it, because it had been well built. But the one who hears and does not do them is like a man who built a house on the ground without a foundation. When the stream broke against it, immediately it fell, and the ruin of that house was great.

* Luke 6:20‭-‬49 ESV

: 1:05 am: bluemosesErudition

Q. 이번에 가장 어려웠던 항로는.

A. “지난 2월2일 통과한 케이프 혼이다. 케이프혼 해역은 남극해 구간으로 추운 날씨에 연중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로 인해 바다의 에베레스트, 선원들의 무덤으로 불린다. 이 지역을 통과한 이들에게는 ‘케이프호너’이라는 명예의 호칭이 주어진다. 최대풍속 50노트(kn)의 돌풍과 파고 7m의 높은 파도와 싸워야 했다. 거대한 파도가 덮쳐 요트가 두 번 뒤집어졌다. 요트 밑바닥에 매달려 균형을 잡아주고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발라스트 킬)가 없었다면 배는 침몰하고 말았을 것이다.”

Q. 언제가 가장 위험했나.

A. “광란의 위도, 울부짖는 50도, 비명의 60도라는 별명이 붙은 남극해다. 떠내려 오는 유빙(流氷)이 지뢰처럼 깔려 있다. 포틀랜드 제도에 있는 사우스조지아섬 인근을 지날 때는 폭 30m 정도의 집채만 한 빙하가 옆으로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작은 빙하라도 한번 부딪치면 끝장이다. 순식간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다. 빙하를 피하느라 며칠 동안 뜬 눈으로 밤을 샜다.”

Q. 바람이 잠잠해야 좋은 것인가.

A. “반대다. 바람이 부는 날엔 앞으로 속도감 있게 전진할 수 있어서 좋다. 오히려 잠잠한 날이 어렵다. 이런 날엔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한다. 폭풍 못지않게 무서운 것이 적도 인근의 무풍(無風)지대다. 바람에만 의지해 항해하는 배에 무풍지대는 지옥이다. 적게는 1~2시간, 많게는 17시간 동안 바람 한 점 없어 닻을 내리고 뙤약볕 아래서 무작정 기다려야만 한다.”

* 무동력, 무기항, 무원조 세계일주(2014. 10. 18. ~ 2015. 5. 16.) _ 아라파니호 김승진 선장

July 21, 2016: 4:01 pm: bluemosesErudition

대개 양보하고 언쟁을 기피하는 “이런 사람들의 선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뒤쪽에 그어져 있는데, 그걸 건드린다는 건 … 상대 반응을 보고 그걸 기준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며, 그 끝은 친분의 종결이다.

: 12:06 pm: bluemosesErudition

David inquired of the Lord, and did as the Lord commanded him. Following this, the Lord went out before David to strike down the army of the Philistines(cf. 2 Samuel 5:1-10).

: 10:54 am: bluemosesErudition

인간화된 공간인 장소(Yi-Fu Tuan, 2007: 94)

: 10:51 am: bluemosesErudition

“인간의 눈앞에는 수다한 것이 쫙 펼쳐져 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만 보고 있는 사람은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것처럼 ‘개처럼 짖기만’ 할 것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자들에게는 무엇이든 낯설 것입니다. 인간이 그 낯선 것들을 파악하여 법칙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하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것은 언제까지나 낯선 ‘여럿’일 뿐입니다. 봄이 와도 봄이라고 이름 붙일 줄도 모를 것입니다. 첫째 강물, 둘째 강물, 셋째 강물, 이렇게 강물들이 계속해서 흘러가도 그것에 ‘강’이라는 이름을 붙일 줄 모를 것입니다. 강물들이 흘러가다 더 이상 흐르지 않으면 ‘웅덩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하는데 그렇게 할 줄도 모를 것입니다. 이렇게 개념을 바꾸어 쓸 줄 모를 것이고, 이렇게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그것은 한정되지 않은 것, 규정되지 않은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규정을 따른다면 우리는 헤시오도스의 텍스트를 읽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논증을 통해 주장을 내세우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과 우주의 전 국면에는 논증을 통해서 해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으며, 그것까지도 포괄해야만 철학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철학의 한 영역인 형이상학을 공부하면서 《신들의 계보》를 읽는다는 것은 철학에 대한 관점도 달리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신들의 계보》를 읽으면서 그것의 내용도 따져봐야 하지만, 종래의 철학이라는 것에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 《신들의 계보》를 읽는 이유는 이러한 우주론 안에 철학적 사색의 맹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신화(뮈토스)에서 이성(로고스)으로의 전환, 이것이 철학의 시작이다’라는 말은 일단 배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형상에 관한 플라톤의 입장은 일관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사물 바깥에 실체인 형상이 따로 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살펴보면, 《파이돈》에서는 형상실재론과 형상시원론이 혼재하고 《국가》를 거쳐서 《필레보스》 등에 이르면 형상실재론의 입장이 고수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후기 형상론을 플라톤의 일관된 주장으로 파악합니다. ‘사물과 따로 떨어져서 사물 외부에 실체인 형상이 실제로 있다’, 이것이 플라톤의 입장이라고 정리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 사물들의 실체이려면 그것이 사물들과 분리되지 않고 사물 안에 있어야 한다는 형상내재론을 주장하려 합니다.”

“데카르트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해야만 신의 무한성을 알 수 있는 아주 불안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신에 의존하면서도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자기 의식입니다. 이론과 실천 양 측면에서 인간 자신이 유한자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이런 자기의식이 칸트에도 들어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칸트에서는 인간과 신이 합치될 수 없습니다. 인간과 신은 마주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유한자와 무한자가 맞서 있습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유한자인 인간이 노력하면 무한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고대적인 사유입니다. 근대적인 사유에서는 자기 의식이 등장하면서 신과 멀어져버렸습니다.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신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는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그 어떤 매개를 거치지 않고도 신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가톨릭에서 내세우는 성사聖事를 거치지 않고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의식입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단독자로서의 인간의 위치를 확보했는데, 확보하면 확보할수록 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헤겔 철학에서는, 외부 세계에서 뭔가 데이터가 주어진다 해도, 인간이 데이터를 그냥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대상 세계까지 나아갑니다. 우리 인간 정신의 활동이 대상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스스로 바깥으로 나아가서 대상 세계와 접촉하고 그 대상의 본성을 자신에게 가지고 옵니다. 정신은 무한자의 입장으로까지 뻗어나갑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의 통일된 총체성(Totalitat)을 이룹니다. 헤겔의 체계 안에서는 이러한 총체성이 유기적으로 짜여 있습니다. 그러나 헤겔의 체계를 벗어나면 그것은 거대한 사기처럼 보입니다.”

_ 강유원, 2016. 7. 20.

: 10:32 am: bluemosesErudition

“6월 6일은 바로 어지신 둘째 형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날이다. 슬프도다! 어지신 분이 이렇게 곤궁하게 세상을 떠나시다니. 원통한 그분의 죽음 앞에 나무와 돌멩이도 눈물을 흘릴 일인데 무슨 말을 더하랴. 외롭기 짝이 없는 이 세상에서 다만 손암(巽庵) 선생만이 나의 지기(知己)였는데 이제는 그분마저 잃고 말았구나. 지금부터는 학문연구에서 비록 얻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누구와 상의를 해보겠느냐.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는 지기가 없다면 죽은 목숨보다 못한 것이다. … 네 어머니가 나를 제대로 알아주랴. 자식들이 이 아비를 제대로 알아주랴. 나를 알아주는 분이 돌아가셨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느냐.” (다산, 두 아들에게 보냄, 1816)

: 1:49 am: bluemosesEru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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