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악과 싸워온 전사’들이니 ‘사소한’ 흠결은 눈감아줘야지.” 이것은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며 개혁당 성폭력 사건을 조개나 줍는 부차적인 일로 만들어버린 유시민씨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더구나 저런 착각은 ‘국가 경제에 기여했으니 재벌 회장님들 비리에 관대해도 된다’는 사고방식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기 쉽다. 착각은 깨져야 하고, 나쁜 신호는 꺼져야 한다. 옳음에는 피아(彼我)가 없다.
“‘거악과 싸워온 전사’들이니 ‘사소한’ 흠결은 눈감아줘야지.” 이것은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며 개혁당 성폭력 사건을 조개나 줍는 부차적인 일로 만들어버린 유시민씨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더구나 저런 착각은 ‘국가 경제에 기여했으니 재벌 회장님들 비리에 관대해도 된다’는 사고방식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기 쉽다. 착각은 깨져야 하고, 나쁜 신호는 꺼져야 한다. 옳음에는 피아(彼我)가 없다.
축복의 삶을 위협하는 반복적인 죄 _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그쳤고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었사오며 우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 이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들이 어두우며 시온 산이 황폐하여 여우가 그 안에서 노나이다”(예레미야애가 5:15~18)
“뭐 그런거지” _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에는 이 문장이 106번 등장한다.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말은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작기는 하지만 확고한 행복의 하나가 아닐까……”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소확행(小確幸)이라는 말을 처음 세상에 내놓았다. “겨울밤 이불 속으로 들어온 고양이의 감촉”, “갓 구워낸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새 셔츠를 뒤집어쓸 때의 기분”이 그가 언급한 소확행들이다.
소확행은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의미하는 덴마크의 ‘휘게’나 소박하게 공간을 채워나가는 삶의 방식을 뜻하는 스웨덴의 ‘라곰’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Kurt Vonnegut, Jr., 1922 ~ 2007
“유머는 인생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한 발 물러서서 안전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은 사람들에게 웃음으로 위안을 주는 것이다. 유머는 아스피린처럼 아픔을 달래준다.”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사랑할 때도 비경제적인 기다란 애무를 절약할 줄 안다 / 그렇다 / 작아졌다 / 그들은 충분히 작아졌다 / 성별과 직업과 연령만 남고 / 그들은 이제 너무 작아져 보이지 않는다 // 그러므로 더 이상 작아질 수 없다”
_ 김광규, ‘작은 사내들’,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1979)
“같은 분노(憤怒)라고 해도 켜와 결이 같지는 않다. 부아를 돋우는 언동에 발끈하는 개인적인 것도 있고, 가랑비에 옷 젖듯 누적된 불만에서 비롯된 집단적 노여움도 있다. 격렬한 공화혁명을 겪은 프랑스에서는 ‘르상티망(ressentiment)’이란 말이 쓰인다. 분노·적의(敵意)를 뜻하는 영어의 ‘resentment’와 비슷하지만, 담긴 뜻이 더 다채롭다. 사전적 의미로 르상티망은 불안하고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패배주의적 분노라고도 하고, 아등바등한들 제자리 걸음하기도 벅찬 삶의 허무함에 대한 억압적인 각성을 뜻한다고도 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 5: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