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는 죄의 옷을 벗고(최소) 예수 그리스도를 입는 것이다(최대).
“So whatever you wish that others would do to you, do also to them, for this is the Law and the Prophets.”
94. 식구들이 집을 옮기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오히려 완전한 절망감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친척들이나 지인들 가운데 그 누구도 당해보지 않은 그런 불행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상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바를 그들은 최대한 이행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말단 은행직원들에게 아침을 날라다주었고, 어머니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속옷을 바느질하느라 온 힘을 다 쏟았으며, 여동생은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판매대 뒤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식구들에겐 더이상 여력이 없었다. 아버지를 침대로 데려다놓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 어머니와 여동생이 하던 일을 놓아둔 채 볼과 볼이 맞닿을 정도로 바싹 다가앉을 때, 그러다 어머니가 그레고르의 방을 가리키며 “그레테야, 저기 문 좀 닫고 오거라” 하고 말할 때, 그래서 그레고르가 다시 어둠 속에 있게 될 때면, 등짝의 상처가 새로 생긴 것인 양 욱신욱신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 시간, 거실에서는 두 여자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눈물을 흘리거나, 눈물조차 말라서 식탁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_ 프란츠 카프카, 이재황(역), <변신>, 문학동네, 2005.
조실부모한 탓에 가장으로서 어려운 삶을 지탱해나가야 했던 류승완 감독에게 영화는 꿈이었다. 현실이 목을 죌수록 어두운 동시상영관에 들어가 영화를 보던 류 감독은 구운 오징어 냄새, 사람들의 음침한 표정 속에서 희열을 느꼈다. “특별한 재능이나 영리함이 있었다기보다는 매 순간 가졌던 절박함이 무기였다”는 그는 여러 차례 영화를 만들어 영화제에 도전장을 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모든 시나리오 공모전에서도 떨어졌다. 주변에서는 포기하라는 말이 들려왔다. 술친구 봉준호 감독이 “제빵사나 하자”며 위로를 하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영화감독이 되기로 한 후 그냥 직진만 해왔다.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고, 영화아카데미도 합격했다. 다른 일을 한다는 상상 자체를 해보지 않았다…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든 좌절감이 수시로 엄습했지만 이미 발을 내디딘 이상 그저 묵묵히 매사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비참했고, 실제로 포기하려 했지만, 박찬욱 감독이 건넨 위로의 말 덕택에 영화를 계속할 수 있었다. “재능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고 스스로 있다고 생각하는 그 믿음이 중요하다.” 그렇게 호기롭게 말했던 박찬욱 감독의 데뷔 시절도 영 신통치 않았다. 그도 영화감독이 되고자 악전고투했다. 영화사를 다니며 보도자료를 쓰고, 영어 자막을 번역했다. 극장에 찾아가 영화를 틀어달라며 영업도 했다. “<현기증>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컨트롤된 영화,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다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닥치는 대로 글을 쓰고, 방송도 하며 겨우겨우 살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다. 세월은 그렇게 자꾸 흘러 아이는 자랐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대단한 일을 할 걸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플란다스의 개(봉준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류승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