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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2, 2019: 11:07 pm: bluemosesErudition

그는 우리 인간이 지식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를 타고 있는 항해자들과 같다. 배에 물이 새는데 육지로 올라가서 선박 건조대에서 배를 해체하고 최상의 부품으로 다시 건조할 수 없고, 바다 한가운데 떠서 자신들의 배를 고쳐야 하는 처지이다.”

떠다니는 배의 모습은 지식에 확실한 토대가 없음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가라앉지 않고 떠 있다는 것은 배를 구성하고 있는 나무 조작들이 서로 어느 정도 잘 맞아들게 짜여 있다는 뜻입니다.

토대주의에서는 지식의 정당화를 확실한 기초 위에 건물을 세우는 작업에 비유한 데 반해 노이랏의 정합주의에서는 물이 크게 새어들지 않도록 해 배가 계속 떠다닐 수 있게 하는 작업과 같다고 봅니다. 어떤 막연한 진리보다는 우리가 실제로 이루어낼 수 있는 일관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 배의 이미지는 관측의 이론적재성과도 바로 통합니다. 노이랏의 배는 특별한 부위들로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론을 나타내는 나무 조각들과 실험을 나타내는 나무 조각들이 그냥 다 같이 섞여서 짜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면 이론의 검증이란 그 체제 내부의 일관성을 확인해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고,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을 평가하는 과정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배에서는 일관성을 지킬 뿐만 아니라 배를 수선하는 진보도 이루어갑니다. 노이랏의 비유는 배가 완벽하지 못하고 물이 새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고치지 않고 그냥 놔두면 결국 침몰한다는 이미지는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항상 절실하게 느꼈던 노이랏이 가졌을 만한 것이지요. 배를 고쳐서 더 물 샐 틈 없도록 한다는 것은, 정합성을 더 높인다는 의미입니다.

_ 장하석, <과학, 철학을 만나다>, 지식플러스, 2014.

: 12:57 pm: bluemosesErudition

“ENA 입학생 대다수는 다른 그랑제콜인 시앙스포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