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December, 2019

December 21, 2019: 12:59 pm: bluemosesErudition

5.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일 년이 되었다. 포천 지현리 작업실에는 올해도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산당화와 자귀나무 꽃이 만개했다. 어머니는 당신과 같이 몇 해를 기다렸던 능소화 봉오리가 올여름에 드디어 맺혔구나, 하신다. 가족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아버지는 뭐라고 하셨을까’ 생각한다. 그런 순간들마다 아버지가 남시긴 글들이 위안과 길잡이가 된다.

6.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극도로 비정한 삶을 인간의 운명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시는, 패배를 말하는 시까지도, 패배주의에 반대한다. 어떤 정황에서도 그 자리에 주저앉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시의 행복이며 윤리이다. 네가 어떤 일을 하든 이 행복과 윤리가 너와 무관한 것은 아닐 것이다.”

7. 2019년 8월 / 황현산의 아들 / 황일우 삼가 씀

11. 문법 공부는 … 내 말이나 남의 말이나 말을 깊이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15. 세꼬시에 뼈가 들어가는 것은 사실 부차적 특징이다. 작은 고기를 쓰기에 칼질을 옆으로 하지 않고 수직으로 한다. 뼈가 발리지 않는다. 대신 고기를 짧게 썬다. 세꼬시는 경상도에만 있고 전라도에는 없다고 하는데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말이다. 전라도에서는 보통 생선을 칼질해서 미나리, 무 등 채소와 함께 무쳐 먹는다. 경상도에서는 그대로 상 위에 올려놓고 막장 등에 비벼 먹기를 잘 한다.

16. 어머니는 생선 요리를 잘하셨지만 당신은 들지 않으셨다. 목으로 넘어갈 때의 어떤 관능을 죄스럽게 여기셨기 때문이란 걸 내가 늙어갈 때야 알았다. 어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17. 금성이 초저녁에 뜨면 거지별 또는 개밥바라기별이고 새벽에 뜨면 샛별이다. 좋은 시인들은 늘 거지별 노릇만 한다. (중략) 시쓰기는 소통하기 어려운 것을 소통하려는 노력이다. 나중에라도 소통되도록 길을 여는 일. … 말을 생산하는 시와 소비하는 시가 있다. 소통 운운하는 것은 대개 말을 소비하는 시인들이다.

17. 복거일씨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만 읽으면 편향된 지식을 얻을 위험이 있다고 했다는데, 별걱정을 다 한다 싶다. 뭐는 안 그런가.

18. 뿌리 뽑기라는 게 얼마나 파시즘적 사고인데. (중략) 제도를 들먹이는 건 정작 중요한 문제를 가리기 위한 술책이다. (중략) 글쓰기 싫으면 번역을 하는데, 해놓은 게 제법 많아졌다. 글쓰기 싫은 것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 번역하기가 글쓰기보다 쉽지는 않지만 제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는다.

19. 동양에서 ‘이매’는 산과 숲과 냇물의 귀신 (중략) 글 한 꼭지를 끝냈다. 제목을 뭐라고 붙이나. 자고 나면 생각이 나겠지. 밤이 선생이다.

22. 백석의 <사슴>에 관해 쓴 글. “식민지 귀신의 상실된 영험을 시의 깊이로 채워”

23. “내 생존이 그 연명을 한 시간의 경계 밖으로 밀고나가기는 불가능하다.” (중략) 서울 시장직은 전문가가 할 일이지만 대통령은 바보도 하지 않는가.

24. 한국어의 제1급 사용자답게(이 점에선 겸손이 필요없다) 짧은 글짓기를 한다. (중략)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는 “말을 조각처럼 한다”는 표현이 있다. (중략) 우리집 애들은 다래끼가 나면, 정약용의 처방에 따라, 반대편 발바닥에 天平 두 글자를 써서 그때마다 효과를 보았다.

25. 머리가 굳어진 순수주의자보다 더 끔찍한 것도 드물다. 종교 문제에서도 그렇지만, 언어와 관련해서도 그렇다. 어떤 시도를 해도 토론이 불가능하다.

26. 남을 할퀴고 뒤통수치는 식으로 농담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은 재치라고 생각하겠지만, 재치 부족이고 병이다. 내 선배 중에 재능이 출중한 사람이 있었지만 이 때문에 망했다. (중략) 유치원 첫날, 선생이 말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사람은 오른손을 드세요. 한 아이가 물었다. 그럼 안 마려워져요? 순진성이 재능을 만든다.

34~35. 나무 주사위는 바깥에서만 묘사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러므로 영원히 그것의 핵심을 알지 못하게 될 저주를 받았다. 재빨리 둘로 갈라봤다. 그 즉시 그것의 내부가 벽이 되고, 번개처럼 빠르게 신비는 살갖으로 변형된다.

37. 우리 안에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덩어리가 있다는 생각은 끔찍한데, 초현실주의는 그걸 창조의 원천으로 삼기도 했다.

42. 내가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일에 여전히 매달려 고뇌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들을 우습게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이 빠뜨린 것이 없는지 되돌아보는 게 이롭다. 독창적인 생각은 대개 그럴 때 얻어진다.

43~44. 글에 ‘……으로 다가온다’나 ‘자리매김한다’가 보이면 아마추어 냄새가 난다. 바둑에서 뻔하고 평범한 수를 속수라 하는데, 글에도 그런 속수 비슷한 것이 있다.

45. 1952년 8월 6일의 추억 정리. 1)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이 물에 넣은 거울에 달이 태극으로 비쳤다. 2) 그날 한반도에 부분 월식이 일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3) 달의 그림자 진 부분이 붉게 보였고 어린 나는 그것을 태극기라고 생각했다. 4) 거울을 물에 넣은 것은 달을 잡아먹는 오랑캐를 그 방식으로 물리칠 수 있다는 설화 때문이었다. 5) 그날 밤 일은 책력을 보고 월식을 예견한 마을 어른의 지시였을 것이다.

52~53. 구두점이 필요 없는 언어는 없다. … 서양에서 의문부호를 처음 쓴 것은 4세기경, 감탄부호와 괄호를 쓴 것은 13세기. 현대의 구두점 체계가 완성된 것은 18세기였다. 글을 읽을 때, 사람마다 호흡과 리듬이 다르다. 구두점은 독자의 호흡을 글 쓴 사람의 호흡으로 유도하는 효과를 얻어주기도 한다.

55. 이윤기는 죽기 전 오역 논쟁에 휘말렸다. 그때 이윤기가 말했다. 번역이 틀렸으면 틀렸다고 말하지 왜 나를 죽일 놈으로 만들어. 분노를 앞세우지 않고는 비평을 못하는 것은 비평 연습이 돼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63. 박원순은 성소수자들이 소수라는 생각만 했지, 인권의 대원칙이 항상 소수와 만난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았다. 늘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밑바닥에 깔린 생각이다.

84. 동시대의 명저들이 하나의 생각을 전해준다면, 고전은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높은 생산성. (중략) “중단과 연속과 해학이 일치하듯이” 꽃이 핀다. 김수영의 말이다.

90. 근대화는 일본의 덕, 해방은 미국의 덕, 경제 성장은 독재의 덕

93. 시의 설명은 우선 시어 하나하나가 무슨 뜻이며, 그것이 어떻게 일상어와 연결되고 어떻게 일상어를 뛰어넘는지를 모두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의 분위기 파악이나 시와 연결될 것 같은 인문학적 이론의 제시 따위로 시에 대한 이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시를 상세하게 분석하면 시의 기가 죽어버릴 염려가 없지 않다. 하나 그것은 시의 기가 약하거나. 시가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를 키울 때 기를 살린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직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들이면 기는 저절로 살아난다.

113. 번역자가 실력이 부족하면 의성어 의태어 많이 넣어 아름답게 번역하는 일이 잦다.

118~119. 나는 제자들에게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할 때, 단어 하나하나를 엄격하고 자유롭게 쓰라고 말한다. ‘엄격하게’는 그 뜻과 용법에 맞게라는 뜻, ‘자유롭게’는 인습적 문맥을 벗어나 새로운 문맥, 새로운 문장 환경에서 그 뜻이 완벽하게 발휘되게라는 뜻.

126. 정지용의 <향수>가 트럼블 스티크니의 표절이라는 주장은 90년대에 이미 제기되었다. 정이 미국 시인에게서 착상을 얻었을진 모르지만 표절은 아니다. 19세기 후반 ~ 20세기 전반, 문학에서 고향 상실의 주체는 세계적 추세, 정도 트도 그 추세의 일부일 뿐.

127. 번역은 외국어에 서툰 사람을 위해 대체 텍스트를 만들기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어로 셰익스피어를 번역한다는 것은 한국어로 셰익스피어를 읽게 하는 일이기 전에 한국어 ‘안’에 셰익스피어가 있게 하는 일이다. 셰익스피어를 번역하기 전과 후의 한국어는 다르다.

148. ‘안 읽어도 다 안다.’ 이게 노망의 시작인 듯. 남 말은 안 듣고 자기 말만 하겠다는 것. 박완서 선생이 했던 말 : “책은 안 읽고 글만 쓰는 것은 토론회에서 자기 말만 하는 것과 같다. 말을 듣는 사람이 점점 사라지니, 나중엔 광인처럼 혼자 말한다.”

151. 문학의 세계는 다른 존재들의 세계와 같다. … 공익적인 차원에서 문학을 말한다면, 문학은 1) 주체가 타자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할지, 2) 주체가 타자에게서 끌어낼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문학이 착한 시민을 목표로 삼지는 않지만, 나쁜 시민을 상투적으로 등장시키는 것도 결코 칭찬할 일이 아니다.

170~171. 문학적 재능을 타고 났으나 삶의 곡절로 실현시키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40이 넘어 등단을 시도하지만 성공하기 어렵고, 성공하더라도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문단 변두리에 머문다. 그중에는 문학이 아닌 다른 글쓰기를 하면 성공할 사람들이 많다.

171.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게 엘뤼아르의 표절인 걸 알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179.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표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고 엘뤼아르의 <자유>를 깎아내리는 글을 보았다.

181. 좋은 작품을 썼는데 인맥이 없어 출판을 못했다, 이런 말은 거짓말이다. 출판사들은 좋은 원고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작품이 너무 훌륭해서 편집자들이 알아보지 못한다, 이런 말은 사실일 수 있다. 한 세기에 한 번 정도 이런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182. 신인 선발 심사를 해보면, 심사위원들 입장에선 안타깝고 본인 입장에선 조금 억울하게 생각할 작품이 한 편 내지 두 편 정도 있다. 그러나 심사에 불만을 품는 것은 그 외의 작품을 보낸 사람들이다.

195. 옛날 영화 <화양연화>에서 장만옥과 양조위의 밀회 장소가 양조위의 무협소설 집필실이라는 점에 주목한 비평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206. 바보는 흉내내고 영리한 자는 훔친다는 엘리엇의 말을 빌려 표절을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엘리엇의 레토릭일 뿐이고, 그 내용은 표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207. 남녀 사이에 성적인 것이 끼어들지 않는 관계는 없다. 친밀한 사이일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이유.

208. 결정한다는 것은 적절한 때에 잔인해지는 기술이라고 앙리 베크가 말했다는데,

218. 내 선배 한 분은 명민하고 매사가 바른 신사였는데, 모든 말을 뒤엎어 이해하고 모든 사람을 비꼬았다. 본인은 그걸 에스프리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보기엔 에스프리의 결핍인 것 같았다. 그 선배는 그 자질에 비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떴다.

231. 글을 잘 쓰는 능력은 말의 어떤 세부나 그 물질성에 들리는 능력일 때도 있다. <레미제라블>을 읽고 위고의 인도주의나 민중주의를 말하는 아이는 작가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퐁텐블로 숲길의 묘사에 매혹되는 아이는 작가가 되거나 되려고 한다.

240. 영어를 몰라도 우리말을 읽고 쓰는 일에 지장이 없다. 그러나 영어를 좀 배우고 나면 어휘의 개념을 이해하고 문장 구조를 파악하는 수준이 가히 혁명적으로 달라진다.

266. 중국에 처음 갔던 1992년, 남경대 출신 조선족 안내원이 중국은 선천적 장애인들을 모두 수술시켰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269. 공부를 잘하는 것은 간단하다. 세상에 어떤 이치가 있다고 믿고 이치에 따라 움직이기를 바라면 공부 잘한다.

271. “그리고 특히, 해부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릅답다!” - 아름다운 것은 사실 말들의 이 갑작스럽고 우연한 결합이다.

272. 옛날에는 의원을 찾아가서도 쌍화탕이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쌍화라는 게 좀 외설스러운 말이기 때문이었다.

278. 강용석을 보고 있으면 절망을 장사하는 것이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싶다.

282. “좋은 대통령은 역사를 만들고 저열한 대통령은 역사책을 바꾼다”는 전우용 선생의 말

289. 고려대학교가 입시에서 논술을 폐지하고 수능 선발 비율을 축소한다고 한다. 오랫동안 논술 출제위원을 맡았던 사람으로 서운한 마음이 크다. 논술과 수능이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운다곤 하지만, 그래도 현재로써는 가장 공평한 선발 방식이다.

301. 강동원과 거창고 동기인 울집 큰애한테 들은 이야기.

302. 무접종 아이가 전염병에 걸리지 않은 건 다른 아이가 모두 접종을 하기 때문, 도시에서 불 켜지 않은 차가 운행할 수 있는 건 다른 차들이 모두 불을 켰기 때문, 어버이연합이 그 정도라도 숨쉬고 사는 건 다른 사람들이 민주 발전을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전철에서건 민주 사회에서건 무임승차자들이 제일 큰소리를 친다.

303. 중국이 학생들에게 미세먼지를 모두 마시게 해 공기를 정화한다고, 학생들을 거리로 내몰았단다.

319. 문단에서 어느 문인이 잘나가면 그건 누가 뒤를 봐줬기 때문이 아니다. … 문학에서도 행운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행운이 올 때 잡을 수 있는 능력이다.

321. 어머니는 생선 요리를 잘했지만 입에 대지 않으셨다. 비린내를 탓했지만, 실은 그게 기분좋은 비린내와 함께 목을 넘어갈 때의 쾌감, 그 쾌감이 불어오는, 섹스를 포함한 온갖 육체적 관능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는 50이 다 되어서야 깨달았다. 성에 대한 억압은 젠더 권력을 내면화한다.

327. 올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들을 모두 훑어보니 당선자들 가운데 두 사람 정도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도 운이 좋으면. 전형적인 신춘문예풍을 벗어난 당선작의 숫자가 그 정도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기가 좀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333. 좋은 시의 기준을 세운 비평가가 시에서 섹스를 팔지 말라고 질타했다. 그런 시가 있나, 잠시 생각해보니 어떤 시를 말하는지 알겠다. 섹스라는 말만 나오면 ‘나는 섹스를 했다’나 ‘나는 섹스를 하고 싶다’로 이해한다면,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339. 방금 M지에서 청탁이 왔는데 곧바로 거절을 했다. 아마도 전화한 분은 모르는 일이겠지만, 그 잡지가 오래전에 나한테 크게 실례를 했다. 그러고는 주간이라는 사람이 이상한 부심을 부렸다. 글 쓰는 모든 사람은 마치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태도로.

344. 사람들은 랭보가 애로서 시를 썼기에 깔보기도 한다.

384. 빈정거림만큼 한 사회를 황폐하게 하는 것도 없다. 관습에 가려진 깊은 모순을 들추기 위해 잘 짜여진 아이러니가 아니라면 빈정거림은 우리의 정신을 현실에 볼모로 잡아두고 어떤 희망도 품지 못하게 한다.

428. 도서출판 삼인에서는 젊은 시인들에게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받아, 선정 출간합니다. 새로운 등단 또는 재등단 제도입니다. (중략) “헝클어진 신발들 틈에서 / 나는 당신의 신발을 한눈에 알아본다”

428. 안과에 갔더니 오타 내지 않느냐고 물었다. 심한 짝눈이어서 그렇단다. 방치하면 맞춤법까지 잊어먹는다고.

449. “진정한 진보는 원죄에서 한 걸음이라도 벗어나는 것”이라고 보들레르는 말했다.

449. 초등학교 때 소독약 머큐로크롬이 무슨 일인지 학교에 대량 배당되었다. 교사들은 그 붉은 약을 빨간색 잉크로 썼다.

451. 부모들은 그 비애를 기억한다.

469. 글은 쓰면서 잘 써진다. 일단 쓰는 것이 비결이다.

484. 결국 애가 쓴 시일 뿐인 랭보의 시가 왜 중요하냐고 누가 방금 물었다. 좋은 시는 늘 실패담이다. 그런데 아주 비장하고 순결한 실패담이 랭보의 시다. 그래서 중요하다.

485. 신인들의 작품을 심사할 때마다 느끼는 것. 잘나가는 어떤 시인도 이 정도 수준이더라, 이렇게 생각하고 ‘이 정도’로 쓰면 그게 못 쓰는 것이다. 게다가 실제의 이 정도와 그가 본 이 정도의 차이는 매우 크다. 어려서부터 자기에게 시의 재능이 있다고 믿어온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 재능이 아까워 늦게까지 시를 붙잡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그 결과가 그 재능을 증명해주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시를 읽는 것도 훌륭한 재능이라고 말한다.

487.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자기 글에서 단 한 문장도 상투적인 문장을 용납하지 않는다. 글에서 상투어구는 바둑의 속수와 같다. 속수를 두고 이기는 기사는 없다. (중략) 좋은 작가에게는 상투적 문장이 없다는 말을 이상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오정희 문장은 쉽지만 상투적인 문장이 있는가. 없다. 이문구는 충청도 사람같이 말하지만 상투적인 문장이 있는가. 없다. 박완서는 말하듯 썼지만 상투적인 문장이 있는가. 없다.

491. 시에는 입법자가 없다.

492. 너스레만 가득 널려 있는 시들이 있다. 그런 시가 인기도 있다.

496. 사우나탕의 화장품 냄새가 꼭 조폭 냄새일 것만 같다.

496. “하나가 없으니 모든 것이 없다”는 라마르틴의 시구가 있다.

497. 랭보는 독재자를 가리켜 “황제, 이 해묵은 가려움증”이라고 불렀다.

498. 인문학 번역은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을 위한 임시 텍스트나 대체 텍스트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생각이 어떤 언어를 통해 발행하고 전개된 과정을 우리말로 다시 재현하는 것이다. 어떤 생각을 수입하는 것과 번역하는 것의 차이.

498. 원래 우리말에서 ‘씨’가 붙는 말은 다 높여 부르는 말이었다. 신분 제도가 무너지면서 이 ‘씨’를 누구에게나 붙일 수 있게 되었지만, 진심으로 높이지는 않으면서 높임말을 쓰게 되면 그 말이 천해진다. 타의에 의한 근대화의 상처는 말이 가장 크게 입었다.

507. “이 삶은 하나의 병원, 환자들은 저마다 침대를 바꾸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이 사람은 난로 앞에서 신음하는 편이 나을 것 같고, 저 사람은 창 옆으로 가면 치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파리의 우울>에 나온 이 구절이 자주 트윗에 뜬다.

512. 한 공간에서 발음된 말을 질과 밀도가 다른 공간으로 옮기게 되면 당연히 왜곡이 일어나게 된다.

521. 민중은 좋은 일에서나 나쁜 일에서나 항상 예상 밖에 있다. 꽃은 허공에서 핀다고 했던 김수영의 말이 바로 그 말이다.

522. 외국어로 번역하면 이상하게 되는 말은 우리의 뿌리 깊은 미신적 사고와 관련이 있다.

524. 게으른 낙관주의를 두 글자로 줄이면 설마가 된다. 설마는 단순한 부사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관이다.

530. 따지다보면 억울한 일이 너무 많아 아예 안 따지는 거예요.

540. 나는 시에 관해 말할 때도, 극단적인 무엇이 있다고 썼다. … ‘극단의 개념’과 ‘극단적인 무엇’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벌써 개념이 되어버린 것과 끝내 개념이 되지 않으려는 것의 차이.

547. 남이 쓰던 변기에도 앉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지저분한 짓은 저리도 많이 했을까.

549. 어떤 악당이라도 이분법의 잣대를 쓰면 자신을 도덕적 우월자로 만들고, 또 스스로 그렇게 믿을 수 있다.

550. 플로베르가 <보바리 부인>을 쓸 때, 보바리 부인의 자살을 묘사하기 위해 스스로 비소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550. 태릉 담터 근처 최근에 문을 연 설렁탕 집에 갔다. 설렁탕에 소금을 넣어도 간이 맞지 않는다. 나중에 보니 소금이 녹지 않고 밑에 깔려 있다. 공장염을 썼거나 싸구려 암염을 쓴 것이다. 이 집 곧 망한다.

561. 태극기는 이상한 국기이다. 왕조 시대가 끝나기 전에 만들어진 기라서 천지 곧 제왕의 세계를 상징하는 음양 팔괘만 그려졌을 뿐, 근대 국가의 이상을 담지 못했다.

564. 어떤 분야를 전공했다고 해서 그 분야에 특권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의무를 지닐 뿐이다. 자다가 일어나서도 누가 질문을 하면 그 자리에서 대답해야 할 의무.

593. 문인들의 문재인 지지 선언을 비판하는 이택광 교수의 글을 읽어보니, 그 사람은 허공에 사는 것 같다. 문인들에게는 지도자가 없어야 된다고 하는데, 엄연히 있는 지도자를 없는 것처럼 살다가 늘 감옥에 갇혀야 했던 역사가 바로 어제의 일 아닌가.

594. 소설가 김도언 씨가 삼인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

605. 무교동 낙지는 고춧가루보다 마늘로 매운맛을 냈다. 명동 칼국수의 그 유명한 배추겉절이도 마늘로 맛을 냈다.

614. 너무 편하게 살다가 남들처럼 살려면 세상이 갑자기 황당해지니 주장도 황당한 주장을 할 수밖에 없다.

616. 염부들은 소금 한 알갱이를 입에 넣고 그 소금을 생산한 염전을 알아차린다. 봄 소금, 여름 소금, 가을 소금도 구분한다. … 초여름의 소금을 가장 좋은 소금으로 쳤다.

617. 우리도 영미권처럼 방학중엔 교사들에게 월급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칼럼이 있다.

622. 메밀을 껍질 벗기지 않고 빻은 가루를 막가루라고 하고, 막가루로 뽑은 국수를 막국수라고 한다.

623. ‘식모’도 대접하는 말이었지만 하는 일이 대접받는 일이 아니어서 천칭이 되었다.

626. 한소끔은 양이 아니라 모양을 나타내는 말인데. ‘우유가 한소끔 끓으면’ 이렇게. (중략) 엄지와 검지 끝으로 한번 잡은 양을 … 우리말로는 원래 ‘자밤’이라고 한다.

627. 사람들은 자기 땅에 있는 것을 천시해서. (중략) 능소화의 능 자는 능가할 능이고 소는 하늘 소다. 하늘을 능가하는 꽃. 아마도 마이산을 가본 사람이 이 꽃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631. 교수 앞에 무슨 말이 붙으면 (석좌교수 빼놓고는) 교수가 아니라 강사라는 뜻이다.

635. 나는 2015년 1월 1일 자로 50년 가까이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내가 증오하는 정부에 담뱃세 2천 원을 더 내기 싫어서였다.

639. 북한에서 1950년대에 이미 아라공의 <공산주의자들> 여섯 권이 번역되었고 그게 우리 국립 도서관에도 들어와 있다는 것을 어제야 알았다. 북한은 아라공의 이 소설이 완간되기도 전부터 번역하고 있었단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646. 철이 없기 때문에 그 범죄의 피해는 더 클 수 있다.

648. 말했다. 설명했다, 주장했다…… 같은 말을 언어학에서 전달사라고 한다.

649. 개나 고양이의 죽음이 다른 죽음보다 더 슬픈 것은 개나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고, 그래서 작별 인사 같은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660. 예술이 지향하는 이상 가운데 하나는 아름다우면서 쓸모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 것은 이 쓸모없다는 것은 ‘지금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의 쓸모를 찾아내는 것이 문화의 발전이기도 하다.

December 19, 2019: 9:00 pm: bluemosesErudition

살바도르 달리,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 _ 아버지의 마음으로 내려다본 십자가

December 18, 2019: 12:55 pm: bluemosesErudition

4. “우주가 아름다운 까닭은 다양한 현상 가운데에도 통일된 하나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통일된 법칙이 놀랍도록 다양한 현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7. 이 답을 찾은 사람들은 이번에도 조심스럽게 사이트에 접속한 후 이 수열 패스워드를 이용해 다음 페이지로 접속해봅니다. 과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무엇일까요? 다시 한번 ‘Congratulation!’ 간단한 축하 메세지가 나오면서, 이번에는 구글 채용사이트로 접속이 됩니다. 이 단계까지 통과한 사람들만을 위한 아주 특별한 사이트고요, 자신의 이력서를 제출하면 가벼운 인터뷰만으로 구글에 취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구글은 2004년과 2005년에 걸쳐 1만 5000명의 직원을 뽑았는데, 이것은 당시 사용한 채용 방식 중 하나였습니다.

8~9. 대부분 우리는 잠시 무언가에 호기심을 느껴 궁금해하지만 그것도 그때뿐, 바쁜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하던 일에 집중하거나, 체내 에너지의 23퍼센트 이상을 먹어치우는 1.4킬로그램의 폭식꾼 ‘뇌’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뇌를 최소한으로만 쓰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호기심, 도전정신 같은 자발적 동기만으로 끝까지 몰두해 해답을 얻거나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건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강력한 특징입니다. 호기심이나 꿈, 재미, 보람 등 다양한 내적 동기. 그리고 명예, 인정, 직위, 인센티브 등 외부에서 부여된 외적 동기. 이런 동기들에 지속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천착하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 데 있어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가 잘 균형 잡힌 사람들이 세상을 의미 있게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39. 미국 해병대에는 ‘70퍼센트 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70퍼센트 정도 확신이 들면 95퍼센트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단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기라는 겁니다.

45. 누군가를 반대한다고 해서 그 상대편이 리더로 선택되지는 않아요. 대통령은 비전이나 미래를 꿈꾸게 하는 사람이어야지, 다른 사람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내 후보를 정하지는 않지요. 여기에도 뇌과학이 들려주는 삶의 성찰이 있습니다. 내가 다니는 학교기 너무 싫어서, 지금 다니는 회사가 싫어서 그만두는 건 좋은 의사결정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건 괜찮지만, 지금 이게 싫으니까 그만두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진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대책도 없죠. 그 순간 너무 싫기 때문에 도망치듯 그만두지만,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107. 결핍된 것에 너무 많은 생각을 집중하는, 운통 거기에만 뇌 에너지를 쏟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결핍의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우리가 ‘터널 비전’을 갖게 만드니까요.

118. 사회성을 배우는 시기에 놀이의 역할은 너무나도 강력합니다. 그 시기에 제대로 놀지 못하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5배 이상 증가하며, 심지어 살인을 저지를 위험성은 17배나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어요.

121~122. 조직문화 이론가 해리스 오언은 진짜 의미 있는 아이디어와 정보는 회의가 아니라 커피 타임 때 나온다는 사실을 응용해, 커피 타임과 유사한 형식으로 회의하는 법을 고안했습니다. 이른바 ‘오픈 스페이스 테크놀로지(Open Space Technology)’라는 기법인데요, 직원들이 커피를 손에 든 채로 서서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이를 녹음해서 정리한 후에 15분 동안 공유하는 방식의 회의입니다.

154. 과거의 경험과 학습 내용을 가지고 그때그때 삶을 꾸려나가야겠지만, 그중 10~20퍼센트 정도는 새로운 탐색을 하는 삶을 살아보시길 권합니다. 그래야만 예전에는 못했던 일을 시도해볼 수 있고, 새로운 삶이 주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방식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면 빠르고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예측 가능한 수준의 결과는 얻겠지만, 새로운 시도가 주는 큰 즐거움과 뜻밖의 수확은 얻을 수 없습니다. 삶에서 80~90퍼센트 정도는 기존 방법을 적용하더라도, 10~20퍼센트 정도는 방법 탐색의 전략으로 살아보시길 바랍니다. … 20퍼센트쯤은 열어두는 삶이 새로고침을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겠죠.

160~161. 미국에 연구원으로 처음 유학을 갔을 때 얘기입니다. 첫날 대학교에 서류를 제출하는데, 행정 직우너이 제 이름을 빨간색 펜으로 적는 거예요. …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찜찜했습니다. 그날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 거예요. … 그래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불을 켜고 앉아서 하얀색 종이에다가 빨간색으로 제 이름을 썼어요. 그날 저는 비로소 ‘과학자 정재승’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 우리는 왜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안 된다고 믿고 있을까요? 다양한 가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진시황 때 중국에서는 빨간색이 너무나 귀한 색이어서 왕만 쓸 수 있었다는 설입니다. 그래서 왕이 아닌 사람이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왕을 모욕하거나 자신이 왕이 되려 한다는 의심을 받았다고 해요.

169~170. 타자, 투수, 야수 중에서 어떤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이 가장 징크스가 많을까요? 한번 생각해보시지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정답은 ‘타자’였습니다. 그 다음이 ‘투수’고요, ‘야수’들이 징크스가 가장 적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 세 포지션 중 성공 확률은 타자가 제일 낮습니다. 자신이 성공할 확률이 낮을수록, 선수들은 더 많은 징크스를 만들어냅니다.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욕수는 강한데 자신이 상황을 충분히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신이라는 엉뚱한 인과관계를 넣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 결국 징크스나 미신을 믿는 이유는 미래라는 굉장히 통제하기 어렵고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인과관계를 억지로 갖다 붙인, 그래서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자신의 모든 환경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거나 지속적으로 행운이 따라준다면, 인간은 결코 미신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172. 우리는 제2종 오류(맞는 걸 아니라고 판정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 제1종 오류(아닌 것을 맞다고 판정하는 오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편입니다. 그것이 바로 미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176~177. 우리 뇌에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습니다. 뇌 전역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 이 화학물질은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라 불리는 뇌 영역에서 아주 흥미로운 역할을 합니다. 바로 무작위적인 패턴 사이에서 어떤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는 역할이지요.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뱀을 발견하는 능력, 사막의 모래언덕 사이에서 도마뱀을 찾아내는 능력, 숲속에서 군복 입은 군인을 찾아내는 능력은 이곳에서 비롯됩니다. … 도파민 분비가 적절하면 패턴을 잘 찾을 뿐 아니라 창의적으로 패턴을 해석하기도 합니다. 복잡한 패턴 사이에서 생산적인 무언가를 발견하는 창의적인 예술가 혹은 과학자는 전대상피질의 도파민이 제구실을 잘하는 분들인 겁니다. 그런데 만약 이곳의 도파민 분비가 지나치면, 무작위적인 패턴에서도 쉽게 특정 패턴을 ‘만들어’ 발견하게 돼요. 예를 들어 코카인이라는 마약은 도파민 상승제 역할을 하는데, 코카인을 섭취하면 없던 패턴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현증 환자처럼 도파민 분비가 과도한 경우에는 환청, 환상, 강박 등 존재하지 낳는 것을 듣거나 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182. “상충하는 두 가지 욕구 사이에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앞에 놓인 모든 가설들을 지극히 회의적으로 면밀히 검토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생각에도 크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뭐든지 의신하기만 한다면, 어떤 새로운 생각도 보듬지 못할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비상식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괴팍한 노인네가 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귀가 가볍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마음을 열면, 그래서 회의적인 감각을 터럭만큼도 갖추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가치 있는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모든 생각들이 똑같이 타당하다면 여러분은 길을 잃고 말 것입니다. 결국 어떤 생각도 타당성을 갖지 못할 것이겠기에 말입니다.”(칼 세이건, ‘회의주의자가 짊어진 부담’, 패서디나 강연, 1987)

185. 제가 꿈꾸는 사회는 주요 일간지에서 ‘오늘의 운세’가 사라지는 사회입니다. 오늘의 운세 믿나요? 다들 안 믿으시죠. 그런데 오늘의 운세가 나오면 안 봅니까? 있는데도 안 보시나요? 안 믿지만 보죠. 그것이 비합리의 시작입니다.

195~196. 제가 예전에 헬로키티를 만드는 회사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거기서 한 임원이 제게 질문을 했습니다. “헬로키티가 아시아에서는 굉장히 인기를 끄는데,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기대하는 것만큼 큰 인기를 못 끌고 있다. 왜 동양 아이들은 헬로키티를 좋아하고, 서양 아이들은 덜 좋아하느냐? 동서양 아이들의 뇌가 서로 근본적으로 다른 거냐?” (중략) 헬로키티는 사실 이상한 녀석입니다. 눈은 있는데 입은 없는 고양이죠. … 동양 아이들은 눈에서 감정을 읽기 때문에 눈이 있는 헬로키티에게 공감이나 동일시가 가능합니다. 다만 헬로키티 눈은 항상 중성적이어서 특별히 슬퍼 보이지고, 그렇다고 기뻐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기분이 좋으면 헬로키티가 나를 방긋 웃으며 보는 것 같고, 내가 기분이 우울하면 얘도 나를 뚱하게 보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감정 이입이 쉽고 동일시가 잘 돼서 ‘곁에 두고 싶은 캐릭터’일 수 있는 거죠. 반면 서양 아이들이 보기에 헬로키티는 기괴한 캐릭터입니다. 그들에겐 감정을 읽을 만한 실마리인 입이 없다는 것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헬로키티의 얼굴이 매우 불완전하다고 여겼을 거예요. 우리로 따지면 ‘눈이 없는 고양이’라고나 할까요? 섬뜩하겠죠? 그래서 곁에 두고 싶거나 동일시가 쉬운 캐릭터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199. 창의적인 사람은 암기를 안 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습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지식을 머리에 저장하고 중요한 기술은 몸에 체화하면서 기본적인 것을 훈련을 통해 학습해야, 매우 중요한 순간에 인지적인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는 수학 영재들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수준의 문제를 풀 때 뇌 활동이 크게 늘어나지 않습니다. 수학 올림피아드 출제 문제 정도가 나오면 그제야 뇌의 여러 영역이 서로 활발히 신호를 주고 받지요. 반면 평범한 중학생들은 중간고사 수준의 수학 문제만 줘도 뇌에서 불이 납니다. 훈련이 충분하지 않아 그 정도 수준의 문제를 푸는데도 많은 인지적 노력이 필요한 거죠. 반면 그들에게 수학 올림피아드 수준 문제를 주면, 뇌에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200~20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예술이 가진 창조성의 근원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그것을 ‘은유’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눈동자는 맑은 호수다’처럼, 전혀 상관없는 것인 눈동자와 호수를 연결하여 새로운 등식을 만들어내는 은유 말입니다. ‘A는 B다’에서, 훌륭한 은유일수록 A와 B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지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서로 연결하는 능력, 이것이 실제로 창의적인 사람의 뇌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21세기 신경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알아내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2000년 전에 얻은 통찰을 말이지요. …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순간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현상이 벌어지더라는 겁니다. 전두엽과 후두엽이, 측두엽과 두정엽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정보를 처리할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온다는 거죠. 창의성은 전전두엽 같은 가장 고등한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기능이 아니라, 뇌 전체를 두루 사용해야 만들어지는 능력이라는 겁니다. 평소 연결되지 않는, 멀리 떨어져 잇는 영역끼리 신호를 주고받고 연결된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건 연구자들의 해석입니다만, 추상적인 두 개념을 잇는 일이 그들의 뇌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뮤즈가 우리의 뇌에 영감을 제공할 때, 이렇게 뇌에서는 온 영역들의 파티가 벌어지는 모양입니다.

203. 저도 글을 쓸 때 비슷한 원리를 사용합니다. 만약 DNA에 관한 글을 써야 한다면 DNA에 관한 책들은 별로 뒤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학 서적을 뒤적거리죠. 그런데 그곳에서 DNA를 설명할 수 있는 절묘한 예제나 비유를 찾게 되면, 그때부터 글일 저절로 술술 풀립니다. DNA에 관한 책들을 뒤적거린다면, 기존의 글들과 유사한 글이 나오겠지요.

215~217. 러시아 출신 유대인인 미국의 바이러스학자 조너스 소크(Jonas Edward Salk)는 폴리오(polio), 즉 소아마비 백신을 만든 연구자입니다. … 그가 이끄는 프로젝트 팀은 주말에도 쉬지 않고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애썼지만 도무지 좋은 해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배낭 하나만 메고 이탈리아 아시시라는 마을에 있는 수도원으로 들어갑니다. 휴가를 온 듯 머리를 비우고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 13세기에 지어진 수도원 성당 안에서 불현듯 백신에 관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것을 종이에 미친 듯이 메모했습니다. 그 길로 미국으로 돌아와서 쥐 실험, 원숭이 실험, 인체 실험까지 연속으로 진행하면서 백신 개발에 성공합니다. 대개 과학자들은 이렇게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자신의 특허를 제약회사에 팔아 엄청난 돈을 버는데, 그는 백신 제작 과정을 전 세계에 무료로 공개했어요. 그러니까 모든 제약회사가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 수 있게 된 거예요. 그 바람에 가격이 아주 싸졌죠. 지금도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1달러 이하의 가격으로 소아마비 백신을 맞을 수 있습니다. 결국 그는 지구상에서 소아마비 환자를 거의 사라지게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합니다. 이후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소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소크생물학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ciences)를 짓게 됩니다. 그리고 그 건축 설계를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루이스 칸에게 맡깁니다. … 그때 소크는 이런 부탁을 합니다. “내가 연구실에서 쉬지 않고 일만 할 때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던 아이디어가 13세기에 지어진 성당에서 떠올랐다. 수도원 성당 천장의 높이가 무척 높아 그 안에서 내 사고 공간이 무척 넓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 이름을 딴 연구소의 모든 공간은 천장이 매우 높았으면 좋겠다.” 칸이 그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죠. 1959년에 설립된 소크생물학연구소는 약 700명의 연구원이 일하는 작은 연구소이지만, 여기서 지난 50년간 노벨상 수상자가 12명이나 배출됐습니다. 단숨에 최고의 연구소로 자리 잡은 이곳을 두고 ‘소크연구소는 천장이 높아서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라는 일종의 도시전설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신화를 신화로 남겨두지 않는 연구자들은 정말로 천장이 높아서 이곳에서 창의적인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는지 확인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실험 공간을 만들고 천장 높이를 조절할 수 있게 한 다음에, 실험참가자들을 데려다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한 문제와 단순히 집중력만 필요한 문제들을 풀게 해봤습니다. 천장의 높이를 달리함에 따라 그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본 거예요. 놀랍게도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단순 문제를 풀 때는 천장의 높이가 가장 낮은 2.4미터였을 때 성과가 가장 높았습니다. 반면, 추상적인 두 개념을 이어야 하거나 어떤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봐야 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는 천장의 높이가 가장 높았던 3.3미터에서 가장 좋은 성과가 나왔습니다. 보통 회사의 사무 공간의 천장이 높아도 2,7~3미터 사이인데, 소트연구소는 천장의 높이가 3.3미터가 약간 넘습니다. 천장의 높이가 높을 때 정말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는 걸 신경건축학 실험으로 알 수 있었던 거죠.

219~220.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독서, 여행, 사람 만나기입니다.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하는, 특히 평생에 거쳐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이 바로 독서, 여행, 사람들과의 지적 대화입니다. 다시 말해 끊임없이 세상으로부터 자극을 받으시라는 겁니다. 의미 있는 세상과의 충돌, 이것이 우리의 인생을 바꿉니다.

242. 이제 우리나라도 정답을 찾는 교육이 아니라, 좋은 문제를 정의하는 교육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정해진 답을 남들보다 먼저 찾는 교육이 아니라 나만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능력이 더 존중받아야 합니다. 높은 수준의 수학적 추론을 가르치고, 틀에 박힌 언어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언어교육이 곧 사고와 철학 교육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49. 증강현실이야말로 현실 세계를 이루는 ‘아톰’과 가상 세계를 이루는 ‘비트’를 섞어 부드럽게 상호작용하도록 도와주는 일상몰입 기술의 핵심이지요. 증강현실이 강화된 스마트기기가 앞으로 스마트폰을 대체하고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으로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믿는 회사 중 하나가 페이스북입니다. 페이스북은 그동안 비트 세계 안에서 소셜미디어 서비스만 제공했는데, 더 큰 수익을 내려면 애플이나 샤오미, 삼성처럼 스마트기기 자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매년 5000억 원씩 10년간 총 5조 원 이상을 증강현실을 기반으로 한 새 플랫폼에 투자해오고 있습니다.

250. 일상몰입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기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이런 기기가 실혀 가능해지려면, 기기를 사용하는 동안 사용자 주변의 아톰 세계에 대한 정보들을 모두 비트화해서 비트 세계로 보내줘야 합니다. 그래야 도로 위의 장애물 정보를 파악해서 내가 부딪히지 않도록 알려준다거나 다른 사람이 가상 공가에서 나를 인식하게 만들 수 있죠. 이를 위해서는 아톰 세계의 상황을 전부 비트화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이 필수적입니다.

251. 제4차 산업혁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물인터넷을 통해 아톰 세계를 고스란히 비트화해서 비트 세계와 일치시키면 이 빅데이터를 클라우드 시스템 안에 저장해서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아톰 세계에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산업으로의 전환을 말합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제안한 세계경제포럼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아톰 세계와 비트 세계가 일치하는 것을 ‘가상 물리 시스템(CPS, Cyber-Physical System)’이라고 불렀습니다.

253. ‘아톰 세계와 비트 세계의 일치를 바탕으로 한 제조업과 유통업의 혁신’이 바로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방금 말씀드렸는데요, 여기에는 웨이러블 기기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스마트폰 다음에 나올 미디어 플랫폼은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는 데도 웨어러블 기기는 큰 도움이 됩니다. 사물인터넷을 이용해 아톰 세계의 정보를 모두 비트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몸이 만들어내는 바이오 정보까지도 비트 세계로 옮기려면 웨어러블 기기는 필수적입니다.

261. 지금은 사람들이 ‘제4차 산업혁명’과 함께 사물인터넷이니 인공지능, 빅데이터, 블록체인을 열심히 언급하지만 이런 기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빅데이터 전문가들은 ‘앞으로 미래에 사라질 직업 중 하나가 ‘빅데이터 전문가’입니다. 그것은 마치 엑셀 전문가, C언어 전문가와 비슷합니다. 앞으로 많은 대학생들이 일상적으로 C언어나 자바, 파이썬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고 포토샵으로 그림을 그리듯 하둡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해 빅데이터를 관리하고 분석할 겁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공지능 전문가라는 건 ‘워드프로세서 자격증’만큼이나 쓸데없고 우스꽝스러운 단어가 될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누구나 사용하기 편리하게 인공지능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가 공유될 텐데, 정말 중요한 건 그걸 이용해서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냐 하는 겁니다. 이 질문에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미래를 이끌 겁니다. 바로 여기에 미래의 기회가 있습니다.

262. 이제는 사물인터넷을 통해 사물들끼리 소통이 가능해지게 될 텐데, 우리를 둘러싼 물건들끼리 조합된 ‘경우의 수’는 약 1000만 배 이상 될 겁니다. 예를 들어 독거노인이 하루 종일 냉장고나 수돗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자식들에게 ‘오늘 부모님께 안부 전화 드려보세요’라고 문자를 통보하는 시스템도 가능합니다. 저희 집 체중계가 저희 집 냉장고에게 제 몸무게 정보를 보내서, 저에게만은 밤 10시 이후에 냉장고 문을 안 열어주는 서비스가 생길 수 있겠죠. 주인이 기대할 법한 서비스를 물건들끼리 커뮤니케이션해서 제공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내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를 더 많이 이해해서, 내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겁니다. 스마트 카, 스마트 홈, 더 나아가 스마트 도시로 말이죠.

263. 2014년 아마존이 인공지능 플랫폼 알렉사를 탑재해 출시한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의 경우, 처음에는 사용자의 명령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동안 500만 명이 사용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꾸준히 업데이트되어, 이제는 사투리 섞인 영어 발음도 다 알아듣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지요. 시장에 먼저 뛰어든 아마존은 고객들의 데이터로 성장시킨 제품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평정해버렸습니다. 먼저 뛰어드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큰 물고기가 강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빠른 물고기가 더 강하다’는 슈밥 회장의 메세지는 의미심장합니다.

268. 기계 번역이 전문번역가를 넘어설 수 있는가 없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구글 번역기가 93퍼센트 수준의 정확도만 낼 수 있어도 통번역 일자리 지형도는 완전히 바뀝니다. 그런 세상이 오면, 이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뉴욕 타임스> 웹사이트 모든 기사를 한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7퍼센트 정도의 어색한 문장이 있어도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게 됩니다.

270. 직업이 아니라 작업이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가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이슈는 과학기술을 잘 이해하고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사람들과 기술을 두려워하고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입니다. 이른바 ‘기술 계급 사회’가 저는 가장 두렵습니다. 데이터 과학자의 일자리는 늘어나고 연봉은 크게 오르겠지만, 단순노무자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연봉 또한 낮아지겠지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기술 관련 직종이지만 사라지는 일자리는 단순 업무라서, 사라진 일자리에 종사한 사람들이 새로 생긴 일자리로 옮겨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없어지는 일자리만큼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많다는 말은 공허합니다.

293~294. ‘테크 이상주의자’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스튜어트 브랜드입니다. 캘리포니아대학교(버클리 캠퍼스)에서 생물학 전공하고 환경운동을 했던 그는 <홀 어스 카달로그 Whole Earth Catalog>라는 잡지를 창간합니다. … 이 잡지에 열광했던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1960~7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낸 미국 캘리포니아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테크놀로지에 심취핶고, 이들 정신을 통해 히피 정신을 구현해보면 멋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97. 그가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에게 들려준 연설 중에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경구가 있습니다. 이 경구는 1974년 잠시 폐간한 <홀 어스 카달로그>의 폐간호 맨 마지막 페이지에 있던 문구였습니다. 다시 말해, 잡스는 젊은 시절 그가 히피로부터 얻은 가르침을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려 했던 겁니다. … 애플을 만든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구글의 에릭 슈미트,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위키피디아의 웨일스. 그들은 모두 <홀 어스 카달로그>의 열렬한 애독자였으며, 히피 정신을 테크놀로지로 구현해보고 싶어 했던 브랜드의 정신적 추종자들이었습니다. 혁명은 이상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입니다.

311. 혁명이 오려면 그 아이디어 자체가 너무나도 혁명적으로 아름다워야 합니다. 미숙한 아이디어로는 혁명을 만들 수 없습니다. 보어가 양자역학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양자역학 아이디어는 크레이지하다.” 그런데 모든 미친 아이디어들이 혁명을 만들진 못합니다. 혁명을 만드는 아이디어는 그저 미친 생각이 아니라 미치도록 아름다운, 그래서 진실에 가까운 아이디어라야 세상을 바꿉니다.

312. 우리에겐 ‘인지적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상황이 바뀌었을 때 나의 전략을 바꾸는 능력’을 말합니다. 가진 것이 망치뿐인 사람은 세상의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입니다. 내 앞에 놓인 모든 문제를 망치질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죠. 그렇지만 상황이 바뀌고 문제가 바뀔 때 내 연장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인지적 유연성입니다.

313~314. 혁명은 어떻게 시작될까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오기를 바라는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서 시작됩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혁명을 꿈꾸죠. 그래서 돈키호테도 이런 말을 하죠. “현실은 진실의 적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 누구를 미치광이라 부를 수 있겠소? 꿈을 포기하고 이성적으로 사는 것이 미친 것이겠죠. 쓰레기 더미에서 보물을 찾는 것이 미쳐 보이나요? 아뇨! 너무 똑바른 정신을 가진 것이 미친 것이오! 그중에서도 가장 미친 것은 이상을 외면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오.”

323. 게이츠는 실제로는 위험 감수 성향이 그다지 높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학교를 중퇴하지 않고 장기휴학을 했으며, 학교와 부모에게 미리 허락을 받았습니다. 휴학도 회사를 창업하고 1년 뒤에 했고요. 자기가 회사를 창업하고 계속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게다가 학교도 나중에 복귀할 수 있는 휴학 상태에서 본격적인 창업을 시작한 겁니다. 게이츠는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처럼 위험 감수자로 인용되기보다는 위험을 잘 관리하는 사람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합니다.

324~325. 과학사회학자들이 ‘지난 100년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노벨상 수상 업적을 처음 생각해낸 시기’를 조사해보았더니, 평균적으로 약 41세였습니다. 화학과 생물학은 좀 더 늦었습니다. 사회적 성취를 이룰법한 혁신, 혹은 창의적 성과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늦게 인생에서 탄생합니다. 다시 말해, 그 분야에 대한 충분한 기간 동안의 학습, 경험,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343. 실리콘밸리에서는 ‘대박을 터트리기까지 평균 4회 가까이 실패한다’는 통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패를 격려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355. 일명 ‘칼 세이건 이펙트(Carl Sagan Effect)’였습니다. 대중적 관계 맺기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그의 학문적 성취는 과소평가되거나 폄하되는 효과입니다. 칼 세이건의 학문적 성취는 그의 대중성에 못지않습니다. 뛰어난 학자임에도 학계의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칼 세이건. “우리 인간은 모두 별빛을 쏟아냈던 별가루로 만들어진 단일종족이다.”(We are one species. We are star stuff harvesting star light.)

356.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견한 1905년이 아니라 ‘시간과 우주 공간의 상대성, 시간과 공간이 하나라는 걸 인류 전체가 이해한 순간’이 진정한 인류의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358. “여기에서 말하는 용은 제대로 인간이 되기 전의 모습, 에덴은 인류 최초의 환경을 말하는 거죠. 용이 에덴을 나와 어떻게 지금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되었는가에 관한, 인간 지성 진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365~366. 캘리포니아대학교(버클리캠퍼스)에 있는 신경과학자 잭 갤런트 교수의 연구입니다. “fMRI 기계 장치 안에 사람을 눕혀놓고 동영상을 보여줘요. 사람이 동영상을 보는 동안 그의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 시각피질과 인근 영역을 촬영합니다. 그 데이터를 분석해서 이 사람이 무슨 동영상을 보았는지 뇌 활동만으로 영상을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꿈을 저장하는 상상, 이것은 더 이상 상상에 머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꿈에 관한 연구의 지평을 열 것”이라는 사실에 몇 편의 소설과 영화가 떠오릅니다. 저장된 꿈을 재생할 수 있는 세상은 소설의 그곳처럼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겠지요. 갤런트 교수는 2016년 4월, 또 하나의 놀라운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고해상도의 fMRI에 사람을 눕히고 이번에는 라디오를 들려주는 겁니다. 소설을 읽어줘요. 말을 듣는 동안 뇌를 계속 모니터링합니다. 가령 ‘그는 칼 세이건의 진정한 팬은 아니었다’라는 문장을 들려줬더니 ‘칼 세이건’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특정 영역이 갑자기 활발한 반응을 보여요. 그렇다면 ‘칼 세이건’이라는 단어가 이 사람에게는 이곳에 저장되어 있다고 간주할 수 있겠죠.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단어가 뇌 어느 곳에 저장되어 있는지 지도를 그려본 거예요.” 조금 상상력을 보태자면, 앞으로 수십 년 후에는 이런 연구를 이용해 쓰거나 타자를 치지 않고도 글을 쓰고, 생각이 바로 글이 되도록 할지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단어 지도를 잘 분석해 인간의 사고 과정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도 잇을 겁니다. … 생각만으로 로봇의 움직임을 조종하는 실험은 또 어떤가요. 앞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움직이는 기계가 등장하리라는 전망도 가능해졌습니다.

367. 지금 기술로도 공포 기억을 지우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예 기억이 저장된 영역을 망가뜨려 기억을 지우기도 하고요. 앞으로는 기억의 원리를 바탕으로 특정 영역의 특정 기억만 정교하게 지울 수 있을 겁니다.

371. 컴퓨터에 넣은 기능은 언어나 수학, 다시 말해 최근 1만 년간 발달한 뇌 기능인데요. 이것은 최신 기능이기 때문에 잘 이해되고 있는 걸 컴퓨터에 놓은 거예요. 그런데 의식과 감정은 진화적으로 몇십만 년 동안 서서히 뇌를 바꿔가며 만든 거라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너무 고등한, 짐작조차 못 하는 것이거든요. 우리 살아생전에 그 기능이 이해돼서 컴퓨터에 들어가는 상황이 온다는 보장이 없어요. 강인공지능이 우리를 위협할 불안 때문에 인공지능 시대를 불안해하는 건 너무 과한 반응 같고요. 오히려 인공지능에게 시키면 웬만한 일은 다 하는 시대에 왜 학교는 우리를 자꾸 인공지능 수준으로 머릿속에 똑같은 것만 넣으려고 하는지, 인공지능에 우리 뇌를 넣어도 시원찮을 판에 왜 인공지능 대하듯 우리 뇌를 인공지능화하는지,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377. 미움받을 각오를 하고 대부분의 회식에 가지 않는다. 술, 담배, 골프도 안 한다. 혼자 빈둥거리면서 노는 시간이 많다. 여럿이 보내는 시간은 계획을 하고 보낸다. 월, 화, 수, 목요일에는 대전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연구에 집중한다. 그중 하루는 아무 스케줄 없이 혼자 논문을 읽고 논문을 쓴다. 그리고 금, 토, 일요일 사흘에 세상살이를 한다. 그 시간의 상당 부분은 사실 가족들과 보낸다. 딸아이 셋의 귀여움이 최고에 달해 있어 그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한없이 좋기 때문이다.

378. 아침잠이 엄청 많았다. 그래서 생활 패턴을 바꾸었다. 5년 전부터 저녁 10시에 자기 시작했는데 그러면 새벽 4시쯤 일어난다. 이때부터 아침 9시까지 집중해서 한 가지 일을 한다. 이 시간이 있어서 낮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가지 일을 해도 채워지는 부분이 있다. 이런 시간이 진짜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한 가지 생각만 하는 것도 좋다. 그러면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 밤늦게 대전에서 서울로 올 때 운전하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는데 그런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신경과학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 뇌는 체중의 2퍼센트를 차지하지만 에너지의 23퍼센트를 쓴다. 뇌를 쓴다는 것은 에너지를 많이 쓴다는 얘기다. 따라서 뇌를 쓰는 일은 에너지가 있을 때 해야 한다. 스티븐 코비가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을 나눠서 하라고 했는데 뇌를 많이 쓰는 일은 뇌에 에너지가 충만할 때 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은 회사에 가서 신문도 보고 커피도 마시며 아침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퍼져 있을 때 진짜 해야 할 일을 시작한다. 능률이 오를 수 없다. 하루 중에 뇌의 인지적 에너지가 충만할 때를 판단해서 가장 창조적인 일을 그때 해야 한다.

384. 사실 전 책보다 정말 많은 영감을 주는 게 따로 있어요. 저녁을 먹고 나서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캠퍼스를 산책하는 시간이에요. 몽상하기에 좋은 시간이죠. 대전 캠퍼스에서 일을 마치고 목요일 바에 운전하여 서울로 올라오는 시간 역시 완전히 혼자가 되는 시간이에요. 특히 조용한 밤길을 운전할 때면 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 제가 쓴 논문 대부분의 단초는 새벽 운전을 할 때 떠오른 거예요. 완전히 혼자 있는 시간, 누군가에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필요한데, 가족이 있고 사회생활을 하면 그런 시간을 갖기란 쉽지 않죠. … 미국에서 통계 낸 것을 봤더니 [영감을 주는 시간이] 주로 운전 시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샤워 시간.

388. 아인슈타인과 피카소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았어요. 아인슈타인은 평생 발표한 논문이 23편입니다. 제가 이미 쓴 논문만도 50편이 넘으니, 논문 개수로만 본다면 아인슈타인은 무능한 과학자죠. 하지만 그의 논문 23편 중 노벨상을 받을 만한 게 6편이래요. 세상에 내놓은 것이 많지 않지만 하나하나 내놓을 때마다 심사숙고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걸출한 논문을 쓴 거죠. 반면에 피카소는 손대지 않은 미술 장르가 없어요. 그의 작품 수는 4000점이 넘는대요. 하지만 비평가들이 냉정하게 평가해 피카소의 이름에 걸맞은 작품이라고 선정한 건 40점 정도래요. 4000점 중 40점. 1퍼센트밖에 안 돼요. 그런데 그 40점이 아주 훌륭한 거죠. 정리해보면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창조적 업적을 시도하지만 가끔 좋은 게 나오고, 어떤 사람은 심사숙고해서 몇 작품만 내놓지만 그게 다 수작으로 평가받는 거예요. 단순히 결과물만 보고 “저 사람은 천재야. 정말 창의적이야”라고 말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스쳐 지나간 일에서 저 사람은 어떻게 저걸 발견하고 해석했을까’에 중점을 두어야 해요.

392. 아티스트는 상상력을 확장하는 사람이고, 디자이너는 상상력을 구현하는 사람, 그리고 과학자는 상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_ 정재승, <열두 발자국>, 어크로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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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공시생의 증가는 곧 사회적 낭비로 연결되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공시생 양산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연간 17조 원이 넘는다고 분석했다. 분석에 따르면 공시생 때문에 사라진 생산 효과는 15조 4,441억 원, 줄어든 소비 효과는 1조 6,989억 원이다.

12.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연설 맺음말이다. 그의 많은 추종자들이 자신의 신조로 삼고 있다고 말하는 이 문장은, 사실 스티브 잡스 본인이 만든 말이 아니라 그가 어렸을 때 읽은 스튜어트 브랜드의 <지구 백과 The Whole Earth Catalog>에 적혀 있던 문장이다.

31.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에서 리카르도 마체오는 소아 혐오(Paedophobia)라는 표현을 썼다. 여기에서 젊은이에 대한 공포는 그들을 혐오하거나 두려워한다는 뜻이라기보다, 개인의 생존도 버거운 마당에 사회가 그들을 배려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곳에서 바우만은 젊은이에 대한 공포를 ‘절은이들을 또 다른 사회적 부담으로 여기는 시각’으로 풀어냔다.

32. 장기적인 경영 실적보다 단기적 성과를 원하는 일명 성마른 자본(Impatient Capital) … 이러한 조급함은 학교로 전달됐다. 예를 들어 반도체학과처럼 몇몇 대학에 설치된 주문형 학과의 경우, 기업은 자신들이 원하는 상품을 학교에 구체적으로 주문하고 힉교는 그에 부응하여 맞춤형 인재를 생산한다. 조급해진 학교는 학생에게 더 이상 준비와 실험과 미래의 모색 따위를 허락하지 않는다. 성마른 자본과 기업은 노동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즉시 전력을 원한다.

39~40. 2016년 기준 20대 1인당 평균 가계 부채는 약 2,400만 원이었다. 갈수록 낮아지는 취업률도 대학 진학을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빚을 안고, 나와도 취업이 안 될 바에는 다른 길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중 하나는 바로 이들이 장래 희망으로 꼽은 공무원 준비다. 어차피 최종 목표가 9급 공무원이라면 헛되이 대학에서 시간과 돈을 낭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일찌감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교생은 부쩍 늘어났다. 인터넷에서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 및 재수생’을 이르는 ‘공딩족’이란 신조어도 생겨날 정도이다. 이러한 공딩족 증가에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2013년 9급 공무원 시험 개정이었다. 필수과목이었던 행정법총론과 행정학개론이 선택과목으로 바뀌었고, 고등학교 교과목인 사회, 과학, 수학 등이 선택과목에 추가됐다. 학교 수업과 중복되는 과목이 늘어나면서 고교생들의 9급 공무원 시험 준비가 더욱 용이해진 것이다.

58. 쥬링허우90后는 1990년대 출생자들로 제2기 소황제 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중국의 제6차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쥬링허우의 인구는 약 1억 7,400만 명으로 바링허우(약 2억 2,800만 명)의 76퍼센트 정도다. 이는 중국 내 두 번째 규모의 인구군이며, 2014년 ComScore가 발표한 ‘중국 쥬링허우 인터넷행위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생산가능 인구(15~60세) 내에서 쥬링허우가 차지하는 비중은 29.5퍼센트로 세계 평균보다 약 2.8퍼센트가 놓은 수준이다. 이는 쥬링허우 또한 거대한 소비력을 지닌 소비층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85. 아일랜드 출신 경영컨설턴트 찰스 핸디는 그의 저서 <코끼리와 벼룩 The Elephant and the Flea>에서 “신기술의 변화는 35세가 되기 전까지는 우리를 흥분시키는 데 반해 35세 이상에겐 당화하고 난처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91. 초단편소설의 대표 작가로 일본에서 쇼트-쇼트short-short를 유행시키고 발전시킨 호시 신이치를 들 수 있다. 쇼트-쇼트란 원고지 10매 안팎의 아주 짧은 소설을 일컫는 말이다. 기존 단편소설의 분량이 200자 원고지 50~100매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짧은 분량이다. 쇼트-쇼트의 특징은 주로 짧은 한 가지 사건을 통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이나 고뇌보다는 하나의 짧은 사건이 던져주는 상징에 더 많은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

121. “한 대기업에서 역량 면접이란 이름으로 되어 있는 구조화 면접을 봤는데, 역량을 기반으로 한 상황 대응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다 보니, 다른 기업에서 본 압박 면접보다 실제 압박을 더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압박은 기분이 나쁘지 않더라고요. 사실을 기반으로 말하는 데 어려울 뿐이죠. 하지만 압박면접을 한 다른 기업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내용으로 꼬투리를 잡는 질문이 많아서 해당 기업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습니다.”

122. 이제 기업들은 구직자들에게 성적표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롯데가 가장 대표적이다. 면접 불합격자들을 대상으로 전형별 평가 결과 피드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역량 면접, PT 면접, 토론 면접, 임원 면접 등 지원자의 면접 전형별 점수 수준을 도식화해 피드백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지원자가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164~165. 한국-호주 비즈니스 컨설팅사 창립자인 마이클 코켄이 2014년 5월 <허핑턴포스트>에 올린 “우선 칼퇴라는 말부터 버립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참조해보자. 그는 이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6시 30분에 퇴근 보고를 하면, 항상 팀장이 “벌써? 칼퇴하는 거야?” 혹은 “어디 가니?”라며 되물었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회사와 개인이 맺는 계약서에는 출근과 퇴근 시간이 명백하게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비록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시간으로 명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6시 30분에 퇴근하는 것조차 ‘칼퇴’라고 인식한다. … 많은 대기업들은 이러한 야근 문화를 없애려고 일명 ‘칼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보통 이러한 칼퇴 프로그램들은 한 달에 한 번 일찍 퇴근을 하여, 그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라는 취지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찍’은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바로 그 시간이다. 이런 식의 패밀리데이 운영은 임직원에게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퇴근 시간에 퇴근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라거나, 어차피 계약서는 형식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174. LG경제연구원 강승훈 책임연구원은 2014년 7월 <헛손질 많은 우리 기업들 문제는 부지러한 비효율이다>라는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성과 창출보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보여주기는 부지런한 비효율의 대표주자다.

176~177. 조직학의 대가 아미타이 에치오니가 지적했듯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사결정을 방어적으로 회피하거나 필요 이상의 정보를 수집하며 시간을 끄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의도적인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책임 회피를 위해 꼭 필요한 의사결정을 미루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대안을 검토하는 하급자는 보고서를 만들고 희의를 거듭하며 불확실성이 사라지길 기다린다. 필요 이상의 복잡한 결재 단계에서 시간을 끌기도 한다. 이는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급자도 마찬가지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 보고서의 사소한 오류나 정보 부족을 탓하며 재작업을 지시해 시간을 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격언이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의사결정은 없다’라는 격언을 압도하는 것이다. … 20세기 초 프랑스의 농업공학자 막스 링겔만의 실험 이후 널리 알려진 ‘사회적 태만’은 협업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개인별 노력의 최대량이 줄어드는 경향을 말한다. 책임을 분산하고픈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조직은 구성원의 임무를 명확히 분배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권한과 책임의 선이 희미해지면 책임을 분산하려는 욕구가 조직에 비효율을 일으킬 수 있다. 불필요한 이메일의 남발이나 안건과 관련이 없는 사람까지 참석시키는 회의가 대표적이다.

181. ‘주 52시간 근무 시대’가 개막했다. 2018년 2월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2018년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된 것이다. 이제는 하루 8시간씩 5일, 여기에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한 52시간이 1주에 일할 수 있는 최대 근로시간이 된다. 기존 68시간에서 16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184~185. 윤정구 이화여대 교수는 2018년 6월 본인의 페이스북에 “쓰나미가 HRD를 덮치다. HRD업의 사형선고”라는 글을 썼다. 그는 주 40시간 혹은 주 52시간 근무가 제도화된다면 가장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업계가 인적자원개발 업계이며, 회사는 교육 시간도 당연히 근로시간에 포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시간을 내야 한느 기존의 교육은 자연히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과 같이 52시간 근무제도가 전통 HRD를 붕괴시킬지는 모르지만, HRD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제 회사는 퇴근 후의 직장인들의 시간을 구매해야 할지도 모른다. … 개인의 커리어 개발을 통하여 회사의 생산성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카데미 등록 혹은 외국어 능력 등 경력개발을 위한 프로그램 등록을 지원하는 방식이 늘어날 것이다. 기존보다 근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여가 시간 활용을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220~221. “회사에서도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회식 시간에 팀원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대리님이 ‘즐거움은 돈을 내고 찾아. 회사는 엄연히 돈을 받고 있을 하러 오는 곳이야. 그런 곳에서 즐거움을 찾는 게 말이 되니?’라고 답하더군요. 회사에서 일을 안 하고 놀고 싶다는 뜻이 아니에요. 단지 어차피 할 일이면, 즐겁게 하고 싶다는 말이죠. ‘열심히 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잘도 하면서 왜 회사를 즐겁게 만들려는 생각은 안 하는 거죠?”

226. 연세대 교육학과 장원섭 교수는 <다시 장인이다>에서 일의 의미를 상실한 시대의 해법은 ‘장인匠人’이라고 강조한다. … 일주일에 이틀뿐인 주말만을 바라보고 5일을 지옥 속에서 견디고 살 것인지, 아니면 자기 계발과 자기 실현을 근무시간에서 구현할 것인지는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90년대생들을 다루는 조직의 문제이기도 하다. 흥미 있고, 의미 있고, 균형 잡힌 일을 부여하면 인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27~228. 기존 세대의 인재들이 최소 3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다음에 기회를 찾았던 것에 반해, 90년대생들은 경력의 유무와 관계없이 해당 조직에 남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면 언제든 조직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체득하게 되었다. 이제 관리자들은 90년대생들의 이직을 강제로 막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역설적으로 그들의 이직을 막는 방법은 ‘그들의 성장을 좁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 1980년에서 1995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직장인을 대상으로 ‘성장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 만족하고 있는지’를 묻는 설문에서 스페인, 멕시코, 프랑스, 브라질, 네덜란드, 미국 등 주요 국가는 70퍼센트 이상이 자신의 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 만족감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한 반면, 한국의 경우 29퍼센트의 응답자만이 만족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는 일본과 함께 전 세계 최저 수치다. 제너럴일레트릭의 잭 웰치가 ‘종신고용Lifetime Employment’ 대신 ‘종신취업능력 Lifetime Employability’을 보장한다고 말했듯, 90년대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년 보장처럼 신뢰할 수 없는 말이 아니라 경력 개발을 위한 교육과 훈련이다.

246~247. 고객만족도가 곧바로 고객충성도로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75,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매튜 딕슨, 캐런 프리먼, 니컬러스 토먼의 2010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객만족과 브랜드 로열티는 상관관계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고객의 넘어서기 위한 각종 서비스는 충성도 제고에 기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과할 경우 오히려 고객의 기대수준을 높여 충성도를 약화할 수 있다. … 연구자들은 2010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글 “고객을 기쁘게 하기 위한 노력을 그만두라 Stop Trying to Delight Your Customers”에서 고객충성도 제고를 위한 새로운 측정 지표로 ‘고객노력지수 Customer Effort Scores, CES’를 제안했다. CES는 ‘당신이 처한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느냐?’라는 질문의 답을 5점 척도로 측정해서 관리한다. ‘거의 노력이 들지 않았다’면 1점을, ‘매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면 5점을 체크한다. 점수가 낮으면 낮을수록 고객이 브랜드와 관련하여 불필요하게 소모하는 노력이 적은 것이다. 이는 고객충성도 제고에 이바지하게 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력을 적게 들인 사람들의 94퍼센트가 재구매 의향을 드러냈다고 하니, 고객충성도에 대한 예측력이 꽤 높은 지표라 할 수 있겠다.

252~254. 120다산콜센터는 설립 이전 실무진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만 건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고객들이 단 한 통의 전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해 오늘의 성공에 이르렀다. … 2006년 11월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시민이 민원상담을 하기 위해 해당 공무원과 통화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70.7분으로 조사됐다. 또 바쁜 업무시간에 수시로 걸려 오는 민원전화를 받느라 공무원들 역시 불만이 많았다. 전화 때문에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겠다는 볼멘 소리가 나왔다. 당시 시민들이 체감하는 민원전화만족도는 41점이었다. 서울시는 이러한 민원서비스 개선을 위해 120다산콜센터를 출범시켰다. … 120다산콜센터의 성공 요인으로 방대한 표준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함께 상담원 개개인의 역량이 꼽힌다. 서울시는 고객의 문의 사항을 신속히 검색해 정확히 답변하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전문상담원 육성에 힘쓰고 있다. 120다산콜센터 상담원들은 전부 정규직이다. 신규 상담원은 시정/구정 업무, 고객만족교육, 자치구 현장학습, 응대 실급 등 연간 240시간의 교육을 받는다. 기존 상담원 역시 상담 업무, 보수 교육, Q&A 개인별 코칭, 보안 교육 등 연간 144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실제로 민원 부서를 방문해 현장에서 공무원들이 민원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직접 살펴본다.

_ 임홍택, <90년생이 온다>, 웨일북, 2018.

December 16, 2019: 3:34 pm: bluemosesErudition

문화, 서울, 조선, 한국, 시인동네

December 13, 2019: 2:33 pm: bluemosesErudition

양자(量子). 상호작용과 관련된 모든 물리적 독립체의 최소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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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以此物之故, 受此困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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