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September 12th, 2013

September 12, 2013: 10:38 am: bluemosesErudition

Hebrews 10:32-36 NIV

Remember those earlier days after you had received the light, when you endured in a great conflict full of suffering. Sometimes you were publicly exposed to insult and persecution; at other times you stood side by side with those who were so treated. You suffered along with those in prison and joyfully accepted the confiscation of your property, because you knew that you yourselves had better and lasting possessions. So do not throw away your confidence; it will be richly rewarded. You need to persevere so that when you have done the will of God, you will receive what he has promised.

: 1:04 am: bluemosesErudition

“이석기와 나는 동갑내기다. 만난 적은 없지만 우린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에 초중고를 다녔고 대학에 들어가선 그간 배운 것에 대한 회의와 반감에 자연스레 학생운동에 접어든 사람들이다. 당시엔 주사파는 물론 반미도 없었다. 운동의 목표는 ‘미국 같은 자유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광주학살의 배후가 미국이라는 게 드러나고서야 운동은 미국이라는 성역을 넘어선다. 85년 무렵 반미의 극단화한 형태로 김일성과 북한을 좇는 주체사상파(주사파)가 출현하면서 운동은 크게 둘로 나뉜다. 주사파와 엔엘(민족해방), 그리고 민족보다는 계급적인 문제를 천착하는 피디(민중민주). 2000년 ‘의회를 통한 자본주의 극복’을 표방하는 피디 계열을 중심으로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진다. 민노당 초기에 주사파는 소수 였지만 ‘특유의 생활력’으로 수년 만에 다수파가 되고 결국 당권을 장악한다. 2008년 민노당의 피디 계열은 ‘당권파의 전횡과 패권주의에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다’며 진보신당을 만든다. 2011년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정 두 대표는 탈당하여 민노당 당권파의 통합진보당에 합류한다. 그들의 희한한 행태는 ‘반이명박 연대’의 깃발 아래 덮이고 두 사람은 의회에 진출한다. 이석기와 주사파 동료들도 의회에 진출한다. 그 과정에서 ‘통진당 사태’가 일어난다. 운동권 내부에서나 통용되던 ‘경기동부’가 대중적 시사용어가 되고 ‘타락한 진보’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다. 노회찬, 심상정은 당권파를 비난하며 다시 정의당을 만든다. … 주사파와 함께 못하겠다며 신당을 만들었다가 다시 주사파와 결합해선 국회의원이 되고 여론이 악화되자 ‘비밀리에 활동해서 그런 사람들인지 몰랐다’ 발뺌하는 심상정이나, 주사파와 결합을 반대한 진보신당 당원들을 ‘좌익소아병’이라 비난했다가 이젠 주사파를 ‘정신병자들’이라 비난하는 진중권 같은 딱한 사람들도 있다.”(김규항)

: 12:35 am: bluemosesErudition

“심리전단 사이버 조직은 4팀 70여 명이다. 처장급 4명이 팀장으로 활동했다. 안보 포털 운영(1팀), 국내 포털 담당(2팀), 오늘의 유머·일간베스트 등 인터넷 커뮤니티 담당(3팀), 트위터 등 SNS 선동 대응(4팀) 팀별로 맡은 바를 수행했다. 각 팀은 4~7명 정도로 구성된 파트별로 분장 업무를 수행했다. 사이버팀 직원 1명은 하루 게시글 3~4개 목록을 제출했다. 그렇게 한 달에 게시물 1200~1600건을 올렸다. 이들은 모두 매일 아침 국정원에서 ‘이슈와 논지’를 전달받아 각자에게 하달된 내용을 가지고 카페 등 국정원 바깥에서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이용해 온라인 여론전을 펼쳤다. 각자 쓴 글 등을 일주일 단위로 삭제했고 같은 장소도 계속 이용해서는 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