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삶”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 / 물결처럼 // 우리는 깊고 / 부서지기 쉬운 // 시간은 언제나 한가운데처럼 (김행숙, 「인간의 시간」 전문)
“이번 시집 전반에는 인간이 살아가며 통과하는 시간에 대한 사유가 녹아 있다. 시인에게 시간은 밟으면 그대로 빠져버리는 ‘깊고 부서지기 쉬운 물결’과 같다. 언제나 한가운데처럼 기원도 종말도 없이 일렁인다. 무엇보다 그 시간은 홀로 외롭게 경험하는 존재의 행적이 아니라 인간을 공동의 “우리”로 엮는 ‘관계의 사건’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시간”은 결국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주체성의 얽힘을 가리킨다. 그 속에는 위태롭지만 무한한 “사랑”의 가능성이 깊이 잠재돼 있다.”
<강자와 약자>는 두려움을 밝혀 두 가지 책을 소환한다. 하나는 <안티크리스트>고, 다른 하나는 <죄책감과 은혜>다. 전자가 두려움으로부터 기인한 반응의 측면에서 약자의 원한의식을 권력에의 의지로 치환한다면, 후자는 두려움의 뿌리인 죄의식을 진단하고 치유한다.
“불안에 시달리는 환자가 어떤 장벽 앞에 멈추어 선다. 그 장벽의 일정한 높이까지는 진정한 죄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죄의식의 일부분은 땅속의 보이지 않는 곳에 박혀 있다. 그러나 그가 희생자가 되었던 사건들 때문에 생긴 잘못된 죄의식은 이 불안의 방벽을 더욱 높게 쌓아 버려서 그 장벽을 넘기가 어려워진다. 그는 높이뛰기로라도 그 장벽을 뛰어넘고 싶은 마음에 장벽의 꼭대기에만 시선을 고정시킨다. 이것이 바로 강박적인 잘못된 죄의식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장벽의 기초를 공략하여 그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기초가 폭파되면, 모든 장벽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_ 폴 투르니에, 정동섭(역), <강자와 약자>, IVP, 2000, 2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