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y, 2016

May 20, 2016: 11:46 am: bluemosesErudition

에도 시대 풍속화 우키요에와 인상파, 19세기

: 11:30 am: bluemosesErudition

寫生(喜怒哀樂), 形思(仁義禮智)

: 11:17 am: bluemosesErudition

자기china, 칠기japan

: 11:11 am: bluemosesErudition

중체서용, 화혼양재, 동도서기

: 10:22 am: bluemosesErudition

“Saul had to realize that there were no urgent circumstances that could overlook obedience, and that it was not Samuel he had to wait for to offer burnt offerings, but God himself. Waiting is faith and belief.”

May 19, 2016: 11:05 pm: bluemosesErudition

“Therefore, my beloved, as you have always obeyed, so now, not only as in my presence but much more in my absence, 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for it is God who works in you, both to will and to work for his good pleasure.”(Philippians 2:12‭-‬13)

“디트리히 본회퍼의 사례를 보자. 그는 키에르케고어와 그의 작품 <공포와 전율>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가 히틀러 암살 모의에 가담하고자 결심했던 데에도 부분적으로는 키에르케고어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 10:33 pm: bluemosesErudition

“무한한 체념의 기사는 신앙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자신에게 안도감을 주는 자신의 이성과 사이비-실재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강건함과 안전함을 스스로 지켜나간다. 그러한 의미에서 무한한 체념의 기사가 행한 순종은 계속해서 하느님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이성 작용에 따른 ‘순수한 철학적 운동’이다. … 개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만, 자신의 능력에서 비롯한 모든 강건함과 안전함을 내려놓을 때만 하느님에게 온전히 자신을 바칠 수 있다. 오로지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만 하느님은 인간의 환영으로 변형된 자신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시고, 인간은 하느님이 놓여야 할 자리에 대신 세웠던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체계들을 폐기할 것이다.”

: 2:05 am: bluemosesErudition

“원래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국가나 네이션을 경제적 하부구조에 의해 규정되는 상부구조로 다뤄왔습니다. 그러나 파시즘 이후에는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정신분석을 도입했으며, 일본에서는 마루야마 마사오가 사회학을 도입했습니다. 게다가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공동환상론’ 같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또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로서 고찰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닙니다. 국가나 네이션을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보는 점에서는 말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항상 국가와 네이션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즉 스탈린주의나 파시즘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반성에서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을 말하게 되고, 또 고유한 차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정신분석을 도입했습니다. 다양한 신화론적ㆍ기호론적 시점도 더했습니다. ‘공동환상’(요시모토 다카아키)이나 ‘상상의 공동체’(앤더슨) 등도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의는 국가나 네이션을 표상이나 환상으로 정리하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정치적 좌절ㆍ불가능성에서 문학으로 향하는 것은 특별히 진기하지 않습니다. 그 경우 언어의 힘에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 어쨌든 이런 사상이 유행할 때는 현실의 정치적 좌절이 있습니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보여도, 그 근본에 무력감이 있습니다. 실제 미소 냉전구조 안에서 그것을 넘어설 가능성은 없습니다. 때문에 그것을 사변적인 상상력에서 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철학이든 무엇이든 그것은 문학적인 것인 됩니다. 일본에 1970년 이후 요시모토 다카아키가 우위에 서게 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때 나는 60년대부터 통용되어온 익숙한 방식이나 사고방식이 통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문학자의 집회’를 한 것은 문학자를 특권화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문학은 정치로부터 자립한 입장이라는 통념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문학자의 집회를 열었던 것입니다. 문학자가 집회를 하고 서명을 하고 ‘일본의 참전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는 것이 부정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60년까지는 매우 흔하게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것이 부정되게 된 것은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영향이지요. 또 그 영향 아래에 있었던 전공투 출신 작가가 문학자의 정치적 개입에 대한 터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파괴하자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전공투 출신 작가(가토 노리히로 등)가 그것과 관련하여 나에 대한 비판을 수년에 걸쳐 하거나, 책을 냈습니다. 뭐랄까 불모의, 엉뚱한 열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ay 18, 2016: 11:21 pm: bluemosesErudition

1848, 1968 이후의 보수혁명 _ 자유주의 단계(월러스틴) 반시스템 운동에 대한 자본=국가의 반격

: 12:19 pm: bluemosesErudition

모든 계급·계층의 욕망에 영합하면 결국 네이션 내부의 모순을 외부에 투사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