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국가나 네이션을 경제적 하부구조에 의해 규정되는 상부구조로 다뤄왔습니다. 그러나 파시즘 이후에는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정신분석을 도입했으며, 일본에서는 마루야마 마사오가 사회학을 도입했습니다. 게다가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공동환상론’ 같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또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로서 고찰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닙니다. 국가나 네이션을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보는 점에서는 말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항상 국가와 네이션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즉 스탈린주의나 파시즘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반성에서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을 말하게 되고, 또 고유한 차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정신분석을 도입했습니다. 다양한 신화론적ㆍ기호론적 시점도 더했습니다. ‘공동환상’(요시모토 다카아키)이나 ‘상상의 공동체’(앤더슨) 등도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의는 국가나 네이션을 표상이나 환상으로 정리하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정치적 좌절ㆍ불가능성에서 문학으로 향하는 것은 특별히 진기하지 않습니다. 그 경우 언어의 힘에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 어쨌든 이런 사상이 유행할 때는 현실의 정치적 좌절이 있습니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보여도, 그 근본에 무력감이 있습니다. 실제 미소 냉전구조 안에서 그것을 넘어설 가능성은 없습니다. 때문에 그것을 사변적인 상상력에서 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철학이든 무엇이든 그것은 문학적인 것인 됩니다. 일본에 1970년 이후 요시모토 다카아키가 우위에 서게 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때 나는 60년대부터 통용되어온 익숙한 방식이나 사고방식이 통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문학자의 집회’를 한 것은 문학자를 특권화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문학은 정치로부터 자립한 입장이라는 통념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문학자의 집회를 열었던 것입니다. 문학자가 집회를 하고 서명을 하고 ‘일본의 참전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는 것이 부정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60년까지는 매우 흔하게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것이 부정되게 된 것은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영향이지요. 또 그 영향 아래에 있었던 전공투 출신 작가가 문학자의 정치적 개입에 대한 터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파괴하자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전공투 출신 작가(가토 노리히로 등)가 그것과 관련하여 나에 대한 비판을 수년에 걸쳐 하거나, 책을 냈습니다. 뭐랄까 불모의, 엉뚱한 열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