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못할 일이 아니면 간여하지 않겠다
1. 월간중앙(2018. 02)
열아홉 살 때 “정결한 사랑, 문학과 나 사이에 어떤 매개항도 두지 말 것. 아름답고 힘 있는 문학을 할 것”을 결심하고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한 그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조차 시신을 붙들고 울면서도 속으론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는 오 작가다. 그의 작품들은 자전적 소설인 듯한 글이 많다. 그는 언젠가 강연에서 “자신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하듯이 써야 하고 남의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하듯 써야 한다”면서 “그래서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면이 보인다. 안쓰러움, 비루함, 자기 목숨을 먼저 챙기는 것. 작가는 이것을 살펴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안 된다. 작가가 자기 내면에 솔직하지 못하면 독자에게 전달이 안 된다. 자기 안에서 글을 끌어내야 한다. 그게 작가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작가에겐 나를 표출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남의 시선이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을 인용해 둘의 차이를 이렇게 말한다. “단편소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라고 묻는 것인데, 콩트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천 개의 고원>에는 이런 말도 있다. “단편소설은 마지막 소식인 반면 콩트는 최초의 이야기이다.”(La nouvelle est une derniere nouvelle, tandis que le conte est un premier conte)
손원일선교센터는 경남 진해에 있는 해군 ‘원일다락방’의 새 이름이다. 2층 건물을 헐고 현대식 4층 건물로 새로 지어 해군·해병대 선교의 신앙훈련장과 선교역사박물관 등으로 사용한다. 연말에 설계를 시작해 내년 중순 착공하고 2020년 말 준공 예정이다.
선교센터 건축을 준비하고 있는 김혁수(대한민국잠수함연맹 회장·예비역 해군준장) 해군중앙교회 장로는 27일 “원일다락방이 낡고 균열이 심해 생활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그런 영향 때문인지 신앙훈련을 받는 장교 등이 20∼30명에서 올해는 7명까지 줄었다. 그래서 연건평 2640㎡ 규모로 새 건물을 지을 것”이라고 기도와 관심을 당부했다.
원일다락방은 1973년 해군장교 예배와 성경공부, 기도모임 등을 했던 옥포선교회로 시작됐다. 1980년 초 대한민국 해군 창설자인 손원일(1909∼1980) 제독의 부인 홍은혜(2017년 4월 작고) 권사가 신앙공동체 시설인 다락방 건축 기도에 적극 참여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등에게 건축 후원을 요청했고 1983년 3월 준공했다.
“예년에 비해 수준이 높은 것 같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작품이 많았다. 최소한 열 명 정도는 누가 당선돼도 놀랍지 않은 수준이었다.”(조재룡) “본심에 올린 작품들이 상당히 수준 높아 본심 심사위원들의 고심이 클 것 같다. 상상력이 탄력 있으면서도 시를 많이 써본 것 같은 솜씨가 여럿 보였다.”(문태준)
“시라는 게 결국 스스로 자기를 정리해가는 말들인데, 당연한 얘기지만 잘 쓴 시, 말과 내용이 따로 돌지 않고 힘찬 말을 잘 쓰는 시를 본심에 올렸다.”(조재룡) “과도하게 사적인 공간 안에 갇혀 있는 작품은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시적 대상이 잘 보이지 않고 세계에 대한 해석 없이 그 자체로 자족적인 것 같은 작품도 제외했다.”(문태준)
3. 나는 일생동안 별 수 없이 이야기 하나를 반복하고 있다. 저자와 독자의 시간을 모두 낭비하는 이 과정이 결국 다시 할 때마다 이야기가 조금씩 명료해질 거라는 비현실적인 기대 때문에 일어난다.
7. 김민형 교수는 … 그것들을 공부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매력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불가능에서 가능을 찾는 ‘애로의 정리’나 세상의 모든 존재를 거시적인 구조로 만드는 ‘오일러의 수’ 같은 것 말입니다.
16. 대수 이론은 19세기에 자리를 잡기까지 수세기 동안 다양한 형태로 연구되어왔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어떤 검색 시스템도, 정보 전송도 이 대수 이론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중요한 수학 이론은 점점 더 심화되고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학에서 배우고 있는 수학, 특히 확률 이론, 정수론, 기하학의 많은 내용을 머지않아 초등학교에서도 가르치게 될 것입니다.
17. 컴퓨터의 능력은 수학 이론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많은 이론가들이 컴퓨터로 순수한 수학 실험을 합니다. ‘버치-스위너턴다이어 추측Birch and Swinnerton-Dyer Conjecture’이나 ‘리만 가설’과 같은 유명한 수학적 문제들은 수많은 컴퓨터 실험으로 뒷받침됩니다.
27. ‘수학은 논리학만은 아니다’라는 사실입니다. 논리라는 건 어떤 실체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논리만으로 실체를 만들 수 없습니다. 순전히 논리적인 개념으로부터 수학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은 그릇된 관점입니다. … 수학을 논리로 정리하기 전까지 많은 단계가 있습니다. 굉장히 많은 사례, 구체적인 사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논리가 필요한 것이지, 처음부터 논리에서 수학을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반론을 할 수 있죠.
38. 막연한 추상적 사고 이상으로 ‘구조’라는 개념의 의미를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 피아제 같은 학자가 쓴 구조주의 입문서를 보면 무슨 이야기를 많이 할까요? 수학 이야기를 합니다. 구조가 무엇인지, 구조적으로 같다는 게 무엇인지를 설명하려면 수학적인 구조, 수체계, 군론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신화와 의미>에 레비스트로스가 구조주의가 무엇인지 짧게 설명을 하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가끔 이(구조주의)를 굉장히 새롭고 혁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이것은 사실은 이중오류다. 첫째, 인문학에서도 구조주의와 같은 것이 르네상스 때부터 굉장히 많았다. 이보다 핵심적인 오류는 언어학이나 인류학 같은 데서 구조주의라고 하는 방법론은 자연과학에서 옛날부터 하던 걸 그대로 가져왔다는 데 있다.” 여기서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자연과학의 방식이 바로 수학적인 방법론을 말하는 거죠. 갈릴레오가 말했던, ‘수학적인 방법론으로 기술하는 것’과 같은 생각인 겁니다. 그렇게 보면 추상적인 개념적 도구를 사용해 세상을 체계적으로, 또 정밀하게 설명하려는 의도가 바로 수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54~57. 빛이 어떻게 판단을 하느냐. 그러니까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최단 거리라는 것을 빛이 알고 간다는 것인데, 어떻게 빛이 아느냐. 이 문제는 철학적인 용어로는 텔로스Telos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텔로스는 목적,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빛이 가장 빠른 경로를 찾기 위해서 이쪽으로 간다’는 설명은 마치 빛이 ‘목적성’, 텔로스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런 설명이 어딘가 비과학적으로 느껴지지요? 현대 과학에서는 이런 종류의 설명과 관점을 전부 부정합니다. (중략) 이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해결한 것이 하위헌스의 원리Huygens’ Principle입니다. 이는 빛이 퍼져나가는 방향에 대해 설명한 원리입니다. 방 안에서 형광등을 켜면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서 방을 다 밝히듯이, 빛은 어느 한쪽 방향으로만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위헌스의 원리는 한 지점에서 빛이 퍼져나가면, 그 퍼져나간 지점에서부터 또 동시에 사방으로 퍼져나간다고 말합니다. 어느 순간이든 빛이 현재 닿아 있는 모든 곳에서 새로운 빛이 다시 나오게 된다는 것이죠. 이를 파면波面이라고 하는데요. 그러니까 빛이 진행한 전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위헌스의 원리에 따르면 빛은 전선에서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파면의 원천이 되고, 또 나아가서 원천이 되는 과정을 거듭하게 됩니다. 앞에서 밝혔듯, 물에서와 공기에서는 빛이 퍼지는 속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파면의 속도가 공기 속보다 물에서 더 느리다는 점을 이용하면 빛의 굴절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수학적으로 정확히 따져보면 빛이 사방으로 퍼진다고 해도 가장 빠른 경로가 아닌 것들은 전부 다 서로 상쇄되어 보이지 않게 됩니다.
60~61. “힘을 가하면 물체가 움직인다”는 표현을 했는데, 이 문장이 틀렸다는 것이 뉴턴의 굉장히 중요한 착안이었습니다. 왜 틀렸는가? … 멈춰 있는 것을 움직이게 하려면 힘이 필요하지만, 이미 움직이고 있는 건 그냥 놔두면 계속 움직이죠. 손으로 잡지 않더라도 멈추는 이유는 마찰의 힘 때문입니다. 뉴턴이 이를 정밀하게 표현한 말이 바로 ‘힘을 가하면 속도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뉴턴의 운동법칙입니다. “힘을 가하면 속도가 바뀐다.” 수수께끼를 푼 것 같은 기분입니다. 속도가 바뀌는 양을 우리는 ‘가속도’라고 배웠습니다. 방금 말한 뉴턴의 운동법칙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A) 힘을 가하면 가속도가 생긴다.
66~67. 뉴턴이 가속도 때문에 발견한 개념이 바로 ‘미분’과 ‘적분’입니다. 이 ‘속도가 변하는 정도’를 정확히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미분입니다. 미분이란 변하는 정도를 재는 것입니다. 속도의 미분은 바로 가속도인 것이죠.
74~75. 과학자들은 지구와 달이 서로 얼마나 강하게 잡아당기고 있는지를 측정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만류인력의 법칙으로도 알기 어려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었는지 짐작하시겠습니까?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재야 할지 몰랐을 것 같아요. 둘 다 구 모양이니 달의 표면 어느 지점부터 지구의 표면 어느 지점까지를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서 거리가 다르게 나올 테니까요. 방향이나 중력도 마찬가지고요. … 지구나 달의 각 표면에 굉장히 연속적으로 분포한 점과 점들끼리 사방에서 끌어당기는 이 모든 중력을 다 더해야겠죠? 양쪽에서 다 똑같이 끌어당기고 있으니까요. 여기에서 ‘연속적으로 더해준다’는 개념이 바로 적분입니다. 정량적으로 모든 등식을 이용해서 중력장 등식과 힘을 재는 등식, 운동법칙 등을 다 감안하여 적분을 해주면, 결국 달의 중간에서 지구의 중간 사이의 거리만 재면 된다는 결과를 도출하게 됩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이 공식을 활용하지만, 처음에는 전혀 당연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거리를 재라는 거냐’ 같은 질문에 먼저 답하지 않으면 지구와 달 사이의 중력법칙을 구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자연스레 적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죠.
78~79. 페르마의 원리에서는 빛이 최단 거리로 간다는 사실을 밝혔지만 ‘왜’를 설명할 때 목적성이 없는 설명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역시 달과 지구가 잡아당긴다고 했는데, 왜 잡아당기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 “왜 잡아당기냐?”와 같은 질문은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 질문을 하면서도 어떤 종류의 답을 원하는지 분명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중략) ‘적당한 답의 틀satisfactory framework for finding the answer’.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에서 어려운 질문들은 다 그런 식의 질문들이에요.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처음에는 답을 모르죠. 이런 종류의 질문은 사실 ‘답을 모르는 것’ 이상으로 더 난해합니다.
81~83. 뉴턴 이론에서 빠진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어떻게 전달되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중략) 힘을 전해줄 물체가 없는데 어떻게 중력이 전달될까요? 우주뿐 아니라 모든 공간 자체를 물질로 생각해야 한다는 관점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공간 자체가 물질이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200여 년이 흐른 뒤에야 아인슈타인은 공간 자체를 물질로 해석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어떻게 전달되느냐, 그러니까 왜 그렇게 됐느냐” 하는 질문이, 아인슈타인 이후 좀 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통해서 전달되느냐”의 문제로 옮겨갔습니다. 더 나아가 중력이 시간차를 두고 전달된다는 사실도 밝혀졌죠.
85~86.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이라는 … 책에 특별한 부록이 3개나 붙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중 하나는 현대 수학의 토대라고 할 만한 중요한 발견을 다룹니다. (중략) 이 3개의 부록 중 하나인 ‘기하학’은 과학사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 아이디어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좌표의 발견이었습니다. 평면상의 점을 설명하기 위해 X축과 Y축이라는 직각선을 그리고, 그 점에서 각 축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수의 쌍으로 위치를 설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 데카르트가 바로 이 표현법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인류의 역사에서, 그리고 수학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기하학을 대수적인 방법, 즉 언어로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이 여기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224. 위상수학이란 모양을 공부하는 수학의 분야 중에서 가장 근본입니다. 점, 선, 삼각면 등 간단한 형태들을 이어 붙여서 만들 수 있는 모양들을 예와 같이 기호화하는 것이지요.
225~226. 위상수학은 보통 거시적인 기하라고 설명합니다. 정밀한 기하는 무시하고, 크게 보았을 때 모양이 어떻게 단순한 형태로 조립되어 있는지가 기호로 저장된다는 뜻입니다. … 18세기 수학자 오일러는 점, 선, 삼각면으로 이루어진 임의의 물체가 있으면 다음과 같은 양이 중요하다는 발견을 했습니다. 면의 갯수 - 선의 갯수 + 점의 갯수. 지금은 이를 물체의 ‘오일러 수’라고 합니다. 정의를 보면 좀 이상할 것입니다. 다 더하는 것도 아니고 뺏다, 더했다. 왜 이렇게 계산할까요? 이 오일러 수는 정말 기발한 정의이며, 수학의 발전에 미친 영향이 너무나도 방대해서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기하는 물론이고, 대수, 정수론, 조합론, 함수론에 이르기까지 오일러 수와 그 개념의 확장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빼고 더하는 양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내는 데는 상당한 천재성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이런 종류의 ‘음양이 엇갈리는 덧셈’이 물리학의 ‘초대칭성supersymmetry’이라는 개념과도 관계가 깊습니다. 어떻게 보면 위상수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오일러 수의 정체를 밝힐 목적으로 개발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228. 오일러 수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모양의 오일러 수가 위상에만 의존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위상이 같은 두 모양은 같은 오일러 수를 가지게 됩니다.
233. 위상은 모양의 거시적인 구조만을 기억하는 개념인 겁니다. 그런데 토끼와 도넛의 예에서 보았듯이 오일러는 거시적 정보를 기호화하고 ‘계산을 해서 모양을 구분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개념이 기하학, 물리학, 우주학 등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235~237. 어떤 형체가 있을 때 빛은 그 물체에 반사되어 눈으로 들어갑니다. 빛이 눈의 망막에 부딪혀 어떤 화학 작용이 일어나면 그 정보가 뇌로 전해지고 전기파로 돌아다니면서 뇌세포의 네트워크를 껐다 켰다 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게 사실 모두 일종의 수학적 작용이라는 겁니다. 피상적으로 묘사했지만 우리 뇌에서는 이런 계산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우주를 감지하고 인식하는 과정은 기하학적인 것이 아니라 대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빛을 다 뇌세포 기호로 바꿔서 계산하고 있는 거죠. 이론물리학자들의 가장 큰 관심 중 하나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것을 넘어서 실제 자체가 대수적이거나 기하적이냐는 질문입니다. 2014년 옥스퍼드대학교의 학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 고등과학원 원장으로 있는 로버트 다이어그라프가 상당히 철학적인 강의를 했습니다. 물리학적 구조와 수학적 구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일종의 명상 같은 강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강의가 끝난 뒤 세르게이 구스코프라는 젊은 물리학자가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그럼 당신은 우주가 대수적이라고 생각합니까, 기하적으로 생각합니까? 내기를 해야 한다면 뭐라고 할 겁니까?” 한참을 망설인 다이어그라프는 “저는 우주가 대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기하라는 건 대수를 표현하는 통계적인 현상이지, 근본적인 우주의 실체는 대수적일 것이라는 말이죠.
237~238. 우리는 흔히 모양이 먼저 있고, 그것을 기호화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반대의 주장을 하는 겁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하학에서 일어났던 혁명적인 사건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17세기 페르마와 데카르트입니다. … x좌표의 제곱 더하기 y좌표의 제곱일 때 더한 값이 모두 1이 되는 점들을 모아놓으면, 이게 원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하를 대수로 바꾸는 것입니다.
238~239. 두 번째 혁명은 18세기 말 19세기 중반에 이루어집니다. 바로 ‘내면기하’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하를 생각할 때 그 물체의 내부의 관점에서 어떤 성질들을 표현하고 측정한다는 것이죠. … 영화 <인터스텔라>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납니다. 영화에 보면 한 공간에서 천장 위에 논밭이 있고 사람들 사는 공간이 마구 휘어져 있습니다. 이 내면기하의 개념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 바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와 베른하르트 리만입니다. 기하의 안에서만 봤을 때 기하가 어떤 모양이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거죠. 예를 들어 종이를 세로로 한 번 휘었다고 가정해보면, 내면기하는 전혀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방향이 아니라 두 방향으로 휜다면 내면기하는 어떻게 될까요? 다음 그림을 볼까요. 뭔가 감자칩처럼 생겼습니다. 이런 종이 같은 것으로는 만들기 어려워보입니다. 면이 조금 늘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 늘어나든 줄어들든 찢어지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런 모양을 만들 수 없습니다. 즉 내면기하를 바꾸지 않으면 만들 수가 없어요. 이처럼 내면기하가 바뀌는 걸 측정하는 것을 리만 곡률이라고 합니다. 내면기하가 바뀐다는 건 내적인 성질이 바뀐다는 겁니다. 우리가 피자를 먹을 때 바로 느낄 수 있지요. 피자를 약간 반으로 접어서 들어올리면 그 상태에서 뒤로는 안 접어지잖아요. 이것도 역시 내면기하가 안 바뀌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겁니다. 물질은 늘어나지 못하게 하는 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에요.
242~243. 일반 상대론에 따르면, 중력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시공간의 곡률을 느끼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시공간이 휘어졌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본적인 착안입니다. 공간이 휘어서, 우주가 휘어서 중력을 느낀다면, 그럼 우주가 휘어졌다는 게 뭘 의미하는가? 이걸 그렇싸하게 말로 표현할 수는 있어도 사실 직관적으로도 알기 어렵습니다. 우주가 휘어졌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이유가 뭘까요? 우리가 우주 안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우주의 밖에서 우주를 들여다볼 수 없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내면기하의 개념 없이 우주가 휘어졌다는 주장을 하기가 불가능한 겁니다. … 아인슈타인에게 리만 기하가 필요했던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기초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면기하의 개념이 없으면 우주의 기하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가우스와 리만의 굉장히 큰 업적이죠.
243~244. 세 번째 혁명은 일반인들한테 거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론입니다. 알렉산더 크로탕디에크라는 희한한 수학자가 있습니다. 195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해서 1960년대에 집중적으로 기하학과 수학 전반에 굉장히 새로운 기초를 제시했죠. 1960년대부터는 계속 프랑스 고등과학원에서 일을 하다가 1970년대에 몽펠리에대학교라는 작은 대학으로 옮겼습니다. 이후 1980년대 중반부터 피레네 성곽의 작은 마을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해 몇 년 전에 죽었습니다. 은둔하는 20여 년 동안 아무도 안 만나고 이상한 글도 많이 쓰고 약간의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했답니다. 그로탕디에크는 순전히 대수로부터 기하를 만드는 과정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 여기서 우리의 이야기는 수의 스토리와 엮어집니다. 왜냐하면 그로탕디에크는 수체계 하나가 주어지면 그 수체계만을 가지고 기하를 만드는 방법을 발견했거든요.
247. 그로탕디에크는 이 과정을 거꾸로 돌려서 임의의 수체계가 주어져도 그것이 어떤 기하를 표현한다는 놀라운 아이디어를 말하고 있습니다. 더하고 빼고 곱할 수 있는 수체계가 주어지면, 그 체계가 어떤 모양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248~250. 20세기 이전까지는 고전적인 기하를 바탕으로 물리학이 발전해왔습니다. 모양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모양의 공간 속에서 물체가 움직이는 과정을 기하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했죠. 하지만 현대 물리학의 경우 그 기하학은 일종의 환상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 우주의 미시적인 구조를 들여다보는 양자역학은 고전 역학에 비해서 훨씬 대수적인 성질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령 시공간이 연속이 아니라는 개념이 있는데 시공간이 연속적이 아니라면 그것은 기하학적 현상인가요? 그것을 묘사하는 데 필요한 방법은 뭘까요? 그런 걸 고민하는 게 물리학자의 과제인 겁니다. 그래서 대수로부터 기하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하신 거군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기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요. 그것을 추상화하여 체계로 표현하는 것이 수학이네요. 이런 상상은 수학이 물리학을 생성한다든지, 어쩌면 물리적 세계가 수학적 구조 그 자체라는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우주의 구조를 설명해주는 대수가 수체계만큼 간단하지는 않겠죠. 지금도 학계에서는 양자장론이나 초끈 이론을 기술하기 위해 복잡한 대수적 구조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가공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어느 것이 시공간의 기반이 될 만큼 핵심적인 구조인가, 이것을 파악하는 작업이 오늘날의 가장 중대한 과학적 과제 중 하나입니다.
257~258. 발명이라고 해서 실제 세상에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수학에서도 그런 것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많은 수체계가 그런 성격을 띠고 있지요. 제 느낌으론 정수, 실수 체계, 복소수 체계는 자연에 있습니다. 나머지 연산까지도 자연에 있는 것 같은데 원소가 0과 1로 이루어진 100단위 수체계는 마치 기계처럼 보입니다. 그러니까 수학적 구조에 대해서도 3가지로 구분해야 하겠습니다. 1. 자연에 있는 구조, 2. 발명되는 기계 같은 구조, 3. 공상이나 언어. 이 분류를 정확하게 적용하는 것은 물론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간단하게 몇 가지만 나열해보면 ‘위상’, ‘군’, ‘벡터’ 이런 것은 1번이고 ‘큰 유한 수체계’, ‘뇌 신경망’은 2번인 것 같습니다. 3번에 속하는 수학은 지속적인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쉽게 떠오르지 않네요. 그리고 책으로 남기면 동료 수학자에게 야단맞을 것이 두려워 3번 이야기는 안 하겠습니다.
265. 수학을 잘하려면, 특히 창조적인 수학을 잘하려면 가설을 세웠을 때 그 가설이 틀릴 수 있는 가능성도 자꾸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 주장이 어떻게 틀릴 수 있는지 자꾸 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고장이 많은 큰 기계를 만들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수학은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인간이 답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 명료한 과정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_ 김민형, <수학이 필요한 순간>, 인플루엔셜, 2018.
The Question that Never Goes Away
44~45. 1755년 만성절(그리스도교의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날)에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지진이 일어난 후 볼테르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가능한 최고의 세상’에 대한 믿음을 버렸다.
52. 프레드릭 뷰크너의 말을 들어보자. “하나님은 설명하지 않으시고 대신 감정을 폭발시키신다. 그분은 욥에게 ‘너는 네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기나 하는 거냐?’라고 물으신다.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욥이 궁금해하는 문제들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대합조개에게 설명하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 하나님은 그분의 큰 계획을 드러내지 않으신다. 다만 그분 자신을 드러내실 뿐이다.”
78. 한 여성이 어머니의 장례식을 도둑맞았다고 분노하며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장례식 직후에 선교사 몇 사람이 내게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장례 예배 중에 한 사람이라도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자매님의 어머니의 죽음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어요.”
91~92. 스레브레니차에서 세르비아인들은 열다섯 살 이상의 남자 8천 명을 체포해 손을 등 뒤로 묶은 채 사살했다. …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나온 목격자들의 증언 기록을 읽으면 너무 끔찍해 더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임신부들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 장총의 개머리판으로 내리치고, 어린 여자아이들을 집단으로 성폭행하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의 머리를 잘라 엄마의 무릎에 놓는 등의 만행이 실려있다.
92~94. 본래 공산주의 유고슬라비아는 공통점이 없는 세 그룹을 강제적으로 연합한 나라였다. 가톨릭 신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크로아티아는 서유럽과 가까웠고,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인들은 동쪽에 있는 러시아와 통했고, 보스니아 무슬림은 다른 무슬림 나라들의 지원을 기대했다. 공산주의 붕괴 후에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될 때 강력한 세르비아 족은 ‘대(大) 세르비아’를 표방하며 팽창주의를 추구했고, 소수 민족들은 그에 대항했다. 크로아티아인들이 제일 먼저 저항한 그룹 중 하나였다. 자체적으로 군대가 없는 그들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쓰던 탱크 몇 대와 농약 살포용 비행기 몇 대가 전부였다. 그들이 임기응변으로 생각해낸 것이 농약 살포용 비행기에서 프로판가스통과 온수기를 세르비아 군대에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국제사회가 무기 금수조치를 취하자 그들은 감옥살이하던 조폭들에게 돈을 가득 실은 트럭을 주면서 무기 암시장에서 무기를 사오라고 시켰다. 그 조폭들 중 일부는 무기 밀매에 성공한 대가로 훗날 정부의 고위직에 오르기도 했다. 유고슬라비아 군대의 대부분을 접수한 세르비아 군인들은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사라예보를 포위한 채 공격을 퍼부었다. 그 도시는 숲이 울창한 산들로 둘러싸인 좁고 긴 땅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적의 포위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천혜의 지형을 갖고 있었다. 세르비아 군대가 도시를 에워싸고 있던 그 야만적인 4년은 현대사에서 최장의 포위 공격 기간으로 기록되었다. 날마다 평균 329개의 로켓 추진식 수류탄과 포탄과 박격포탄이 비 오듯 쏟아졌다. 어떤 날은 이보다 열 배에 달하는 공격이 이어졌다. 세르비아의 소총수들은 마치 연못에서 노는 오리를 사냥하듯 손쉽게 목표물을 조준할 수 있었다. 부상자를 돌보던 의료진, 일곱 살짜리 무슬림 소녀, 그리고 일흔이 넘는 할머니가 그들의 표적이 되었다. 4년 동안 적어도 1만1천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중 1,600명은 어린아이들이었다. 공동묘지에 더 이상 자리가 없자 매장 관계자들은 1984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축구장을 시체 매립지로 사용했다. 이런 일들이 현대 유럽에서 일어났다. 그토록 잔혹한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곳이 바로 유럽 아닌가! 하지만 실제로 일어났다. 전기와 난방과 가스와 전화 서비스가 다 끊긴 한 도시가 쉴 새 없이 포탄 세례를 받는 일이 1443일 동안이나 일어났다. 물을 얻을 수 있는 주요 수원(水源)은 양조장 주인이 인심 좋게 개방한 양조장의 깊은 샘이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총격을 가할 수 있는 세르비아 저격수들에게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한 사람만이 그 샘에 이를 수 있었다. 심지어 지금도 사라예보의 대부분의 건물에는 총알과 포탄 파편 자국들이 남아 있다. 박격포 일제사격에 의해 22명이 죽은 골목과 40명이 목숨을 잃은 보행자전용도로와 70명이 사망한 근처 식료품 시장 등 민간인이 희생된 장소들에는 추념(追念) 동판이 붙어 있다. 나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의 수도원에 머물렀는데 지금은 보수된 그 수도원에도 42발이 명중했다고 한다. 잔학 행위를 가장 많이 저지른 것은 세르비아이지만 모든 종족들이 범죄를 저질렀고, 그들의 지도자들이 전범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결국 전쟁은 1999년에 끝났다. 나토(NATO)의 폭격과 빌 클린턴의 평화조약이 전쟁 종식에 부분적으로 기여했다. 결국 유고슬라비아는 일곱 개의 다른 나라로 나뉘었고, 그들 중 세르비아가 가장 큰 영토를 차지했다.
105. “당신은 나를 쏘지 못할 것이오. 오히려 내게 커피 한 잔을 대접할 것이오.”
114. 앗수르와 바벨론 다음에 페르시아가 쳐들어왔고, 페르시아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패배했다. 알렉산더가 죽자 일련의 후계자들은 그의 영토를 분할했는데, 그들 중 가장 악명 높은 것이 안티오코스 4세(에피파네스, B.C. 175~163 재위)이었다. … 다른 곳에서의 군사적 패배에 좌절한 안티오코스는 유대 종교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다. 하나님의 성전을 제우스 숭배의 중심지로 바꾸고 자신을 ‘육체로 임한 신’이라고 선포했다. 남자 아이들을 상대로 ‘역(逆) 할례’ 수술을 강제로 시행했고, 고령의 제사장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채찍질하여 죽였다. 그의 가장 악독한 행위 중 하나는 지성소의 제단에 부정한 돼지를 희생제물로 바치고, 그 피를 성소 주변에 바른 것이다. 안티오코스의 만행에 격노한 유대인들이 무장봉기를 했다. 마카베오 가문이 주도한 그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것이 유대인의 명절 봉헌절(하누카)이다. 하지만 그들의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안 가 로마의 군대가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와 반란을 진압하고, 헤롯을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했다. 로마에게 정복당한 후 그 땅의 전체가 폐허로 변했다.
132. 이십 년 후 그는 이미 언급한 책(<하나님 앞에서 울다 A Grace Disguised>)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뜻 A Grace Revealed>를 썼다.
133. 고통이 속량되어도 상처는 남는다.
143. 고통의 제거가 아니라 고통의 속량이다.
165~166. 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운동가이자 성공회 주교인 데스몬드 투투가 … 진실화해위원회의 책임자가 되었을 때 그는 자기의 신학이 큰 시험대에 오를 거라고 생각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중략) 남아공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네덜란드개혁교회가 만들어 낸 공식적 정책이었다.
170. 뉴타운에서 나는 ‘고통의 시간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Where is God when it hurts?)라는 익숙한 질문을 살짝 바꾸어 ‘고통의 시간에 무신이 어디에 있는가?’(Where is no-God when it hurts?)라고 물었다.
172~173. 영국의 계관 시인인 알프레드 로드 테니슨은 젊은 친구의 죽음을 본 후 “사랑해본 적이 전혀 없는 것보다 사랑했다가 그 사랑의 대상을 잃는 게 더 낫다”라고 말했다.
177. 슬픔은 사랑과 고통이 만나는 지점이다.
178.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그의 책
189. 찰스 채풋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악함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이 순간부터 다르게 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92~193. 나는 뉴타운 사람들에게 독일의 작가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의 시 한 편을 읽어주었다. 이 사람은 성홍열(세균성 인후염)로 두 자녀를 잃은 후 슬픔이 찾아올 때 428편의 시를 썼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는 그의 시 다섯 편에 곡을 붙여 ‘아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들’을 만들었다. 그것들 중 하나는 “마치 밤 사이에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이제 태양은 밝게 솟아오르려고 한다”라고 시작된다.
199. 죽음의 죽음!
212. 우리가 과거를 돌아볼 때 성 금요일은 우리에게 ‘속량 못할 고통은 없다’라고 말해준다.
214. 목회자이자 신학자로서 나치 정권에 저항했다는 죄목으로 강제수용소에 갇히는 고난을 당한 본회퍼는 이렇게 썼다. (중략) “나는 우리의 실수와 실패조차 헛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실수와 실패를 다루시는 것이 우리의 가장(假裝)된 선행을 다루시는 것보다 더 힘들지 않다고 나는 믿는다.”
_ 필립 얀시,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 규장,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