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성경에서 ‘온유함’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나브’는 ‘대답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 ‘아나’에서 파생한 단어이다. 고대시대 대답하는 사람이란 종을 의미한다. 주인만이 질문할 수 있고 대답은 종에게 주어진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온유함’이란 하나님 앞에서 종으로서 자신을 낮추는 겸허함을 의미한다.”
“우리말 성경에서 ‘온유함’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나브’는 ‘대답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 ‘아나’에서 파생한 단어이다. 고대시대 대답하는 사람이란 종을 의미한다. 주인만이 질문할 수 있고 대답은 종에게 주어진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온유함’이란 하나님 앞에서 종으로서 자신을 낮추는 겸허함을 의미한다.”
“한 권의 사람, 만 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존 웨슬리)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에도 한 권의 책과 한 권의 성서가 있었지요. 그는 성 안토니우스의 전기를 친구의 소개로 읽게 됩니다. 이집트의 수도사가 자신과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버리고 사막으로 들어가 평생을 하나님께 바친 이야기입니다. 그 전기는 자기 안의 욕망을 버리고 더욱 진리의 근원인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부채질하였지요. 결정적인 것은 바울의 로마서였지요. 무화과나무 밑에서 습관적인 자신의 죄로 씨름하며 울던 그에게 아이들의 노래가 들립니다. ‘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 그래서 책상 위에 펼쳐두었던 성경을 집어 들고 읽은 것이 로마서 13:13~14이었어요.”
“오랜 영적 고투 끝에 하나님을 만난 뒤, 영어성경과 헬라어성경을 읽는 동시에 매튜 헨리의 주석을 읽습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무릎을 꿇고 주석을 읽었습니다. 훗날 그는 ‘아 홀로 헨리의 성경 주석을 읽고 기도하노라면 시간이 얼마나 달콤하게 흘러가 버리는지 모른다’(델리모어, <조지 휫필드>, 97쪽).
“다양하고도 상반된 입장의 주석을 한꺼번에 봐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성경의 세계가 깊고 깊어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도 그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이 경우일 것입니다. 다른 학자의 다른 관점을 보면서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청중의 다양성 때문입니다. 신앙적 배경과 입장이 다른 이질적인 청중이 한데 어우러지는 곳이 교회인데다가, 그들 각자의 살아온 이력이 다르고, 정치적, 사회 경제적, 문화적 지위에 따라 보는 시각도 제각각입니다. 특정한 한 가지 입장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다양한 시각을 열어주면서도, 공동체의 리더로서 왜 이런 관점으로 읽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자기 개방을 한다고 해서 무엇이나 털어놓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각자 자신을 비추어 보면 성령이 고백하게 하고 간증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때에 성령께서는 마음을 여는 열쇠로 말씀을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소그룹 안에서 나누는 각자의 말에는 진실과 간절함이 들어 있다.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옥한흠, 2003: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