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30년 동안, 즉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에 … 우리는 여러 형태의 정치 사상에 있어서의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였다. 새로운 물음들이 제기되고 새로운 해답들이 나왔다. 18세기와 19세기의 정치 사상가들이 알지 못했던 문제들이 갑자기 전면에나타났다. 현대 정치사상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두려운 양상은 아마도 한 새로운 세력, 즉 신화적 사고의 세력의 출현일 것이다. 신화적 사고가 이성적 사고에 대해서 우세함은 자못 명백하다. 단기간의 격렬한 투쟁이 있은 후 신화적 사고는 명백하고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것같이 보였다. 어떻게 이 승리는 가능하였던가? 그토록 갑자기 우리의 정치적 지평선에 나타난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 이전의 모든 관념을 송두리째 뒤집어 엎은 듯이 보이는 이 새로운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19쪽)

2. Ernst Cassirer(1874~1945)는 <국가와 신화> “제1부 신화란 무엇인가”에서 신화의 구조와 기능 등을 고찰하고, “제2부 정치학설사에서의 신화 반대의 투쟁”에서 ‘초기 그리스 철학’과 ‘중세 철학’을 경유하여 ’계몽주의 철학과 그 낭만주의 비판자들’을 일별한다. 그리고 문제의식이 집약된 “제3부 20세기의 신화”에서는  Ch.15 ‘준비: 칼라일’, Ch.16 ‘영웅숭배에서 인종숭배로(고비노)’, Ch.17 ‘헤겔’, Ch.18 ‘현대의 정치적 신화의 수법’ 순으로 파시즘의 사상적 편린을 검토 및 평가함으로써 그 신화적 본질을 파악한다.

3. 자신의 주의주장에 입각하여 파시즘을 ‘도구적 이성의 귀결’ 내지 ’반동적 모더니즘’으로 해명한 Theodor Adorno나 Mark Neocleous의 논설과 달리, Ernst Cassirer는 그것을 신화적 사고로 치부하여 정치사상적 비판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국가의 신화>는 - 미완성 유작이란 한계를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 담론환원적 접근방식을 취함에 따라 ‘영웅숭배’에서 ‘인종숭배’를 거쳐 ’국가숭배’에 이르는 신화의 파편들을 여러 정치사상에서 채집하는 것으로 그친다.

4. 정치사상에 입각한 신화의 심층적 검토는 실상 부질없는 짓이다. Neil Gregor는 <히틀러를 읽는 법(How to Read Adolf Hitler)>에서 이점을 명료하게 제시한다. “히틀러의 글에서 [우리는] 19세기와 20세기의 여러 작가, 정치가, 철학자의 사상의 메아리를 힘들지 않게 찾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메아리들은 언제나 공허하고 절반만 이해된 것”이다. 히틀러는 “팸플릿이나 신문, 강연, 대화 등에서 간접적으로 지식”을 얻었고, 그것조차 “자기가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만 읽었다.” 파시즘이란 신화는 사상의 잡동사니였던 것이다. 관건은 신화 그 자체의 분석이 아니었다.

5. 어설픈 신화의 실존은 파괴적이었다. 제3제국은 ‘합의된 전제’(illusio)로서 무의식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중의 사회적 행위는 그것에 토대하여 전개되었다. 신화의 권능은 어디서 기원하였는가. 다시 말해 ‘파시즘은 어떻게 득세하였는가?’ 기실 카시러의 연구문제도 바로 이것이었다. “어떻게 이 승리는 가능하였던가? 그토록 갑자기 우리의 정치적 지평선에 나타난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 이전의 모든 관념을 송두리째 뒤집어 엎은 듯이 보이는 이 새로운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Ian Kershaw가 제기한 ‘Hitler Myth’는 하나의 대안적 논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