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February 3rd, 2010

February 3, 2010: 8:24 pm: bluemosesErudition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 - 모두가 영향을 받는 공동의 문제에 관한 공동의 의사결정 과정 - 란 시장에 의한 자원 배분이 아니라 권위에 의한 [불균등한] 자원 배분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현대 한국의 사회와 경제를 지배하는 권위는 자본과 (경제관료, 금융경제전문가, 법률전문가 등의) 전문지식에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진정한 고민은 민주적인 자원 배분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민주주의의 실질화 - 형식적인 선거가 아닌 실질적인 국민주권의 행사 - 에” 있다. 물론 “자원을 어느 한 가지 방식에 의해서만 배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예를 들면 모든 것을 국가 관료나 시장에 맡기려고 해도 계획이나 시장을 벗어나는 자원배분은 생기게 마련일 뿐 아니라 이러한 유토피아적 시도는 폴라니가 보여준 대로 엄청난 재앙을 낳을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당신이 만약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면, 다른 여러 가지 권위(자본, 전문지식, 직업정치인 등)와 시장기제를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가장 우위에 서고 지배적이며 가장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자원배분의 원칙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 것을 필요로 할 것이다.”(지주형)

: 5:56 pm: bluemosesErudition

0. 가설을 폐기한다. ‘자아를 반성케 하는 자아’는 영혼이 아니다. 그것은 의식화된 자아일 뿐이다. 의식화는 Spirit와 Body를 경유하여 Heart에 내면화된 ‘닫힌’ 의식을 ‘열린’ 의식으로 변경하는 것으로, 工夫의 발단이다. 서구철학과 달리 동양사상은 진리 탐구 보다는 자연의 이치를 선험적으로 가정하고 그것을 체화하는 工夫를 목적으로 한다. 이는 단점이자 장점이다. 외면에 대한 인식이 미약하나, 내면에 관한 고찰이 탁월하다.

1. <朱子의 工夫論 硏究> 모임 참석동기는, 일단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1) ‘수술 중 각성’이 工夫를 통해 극복될 수 있는가? 2) 工夫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3) 工夫의 목적인 ‘마음의 도야’는 어떠한 과정을 겪는가? 4) 工夫는 超人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혹, 그렇다면 克己란 私事化가 아닌가? 5) 內聖과 [개인에서 사회로 나아가는] 外王 간의 유기적 연관은 존재하는가? 이는 제왕적 관점에서 修己의 道를 통해 治人의 德을 배양하는 것이 아닌가?

2. 朱子는 大學, 論語, 孟子, 中庸 순으로 四書를 접하도록 권하였다. 五經에 속한 禮記의 일부인 大學 - 대학은 明明德, 新民, 止於至善의 ‘三綱領’과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의 ‘八條目’으로 이루어졌다 - 을 朱子는 왜 그토록 중시하였는가? 양명학이 心卽理에 입각하여 ‘우리 마음은 이미 참된 것을 알고 있으니 그것을 행하자’며 知를 강조한 반면, 주자학은 性卽理에 근간하여 마음의 구성을 살피고 居敬窮理를 통하여 天理를 내화하여 그것을 人慾에 구애됨 없이 외화하는 것을 추구한다.

3. 性體情用에 토대하여 마음의 구성을 다음과 같이 임의적으로 정리한다: 心(統性情)은 理와 氣가 융합된 것으로, 理가 내화된 것을 性이라 하고, 性(本然之性 / 氣質之性)의 발현 양태를 情(道心 / 人心)이라 하며, 情은 궁극적으로 氣로서 외화된다. 理의 내화를 靈과 肉의 영향력 수용이라 한다면, 氣의 외화는 魂의 영향력 작용이라 할 수 있다. 내화[Pedagogy, 1차적 학습]와 외화[Andargogy, 2차적 학습]의 用 사이에는 體의 ‘工夫’가 존재하며, 그 수양의 도야에 따라 氣質之性이 약화되고 本然之性이 강화되어 人心이 아닌 道心을 추구하게 된다.

4. 양태의 상태는 未發과 已發의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論語>에 따르면 未發이 思慮未萌, 知覺不昧한 “寂然不動”을 의미하고, 已發은 “感而遂通”을 나타낸다. 延平의 문하생 시절 未發의 氣象을 體認하는 工夫를 靜的이라 비판하였던 朱子는 언제나 이미 마음의 상태가 已發이라 간주하고, 그것으로부터 未發의 (本體 내지) 性의 단서를 살펴서 보존하는 工夫로 전향한다. 그러나 부단한 운동, 즉 已發만을 마음의 상태로 인식하는 전제에 무리가 있음을 깨닫고 未發을 ‘마음 공부’의 영역으로 복원한다. 朱子는 <中庸>의 “喜怒愛樂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에서 착안하여 已發을 중시한 전기의 입장을 中和舊說이라 하고, 未發과 已發을 모두 수긍한 후기의 사상을 中和新說이라 하였다.

5. 工夫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朱子는 敬을 근간으로 知와 行의 수양을 제기하였다. 知와 行은 先知後行이나 行重知輕이기에 竝進하며 互發한다.우선 敬 工夫는 心의 主宰性에 의거하여 本心을 유지함으로써 항시 理를 드러낼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갖추는 常惺惺의 태도를 뜻한다. 풀어 말하면, 事이 없을 때는 고요함 속에서 마음의 理를 체인하고, 事이 있을 때는 그것에 집중함으로써 마음의 理를 발현하는, 일종의 각성이다. 다음으로 知 工夫는 格物致知를 통해 萬事萬物을 궁리하여 궁극적으로 마음의 體用를 변혁(Regime Change)하는 切己이다. 格物이 대상의 관점에서 事物의 理가 궁구되는 현상을 일컫는다면, 致知는 주체의 관점에서 마음의 理가 구축되는 현상을 지칭하는데, 範例로서 讀書法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行 工夫는 格物致知에 의해 인식한 理를 일상에 구현하는 것으로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로 확장된다. 이는 소외되지 않는 제3의 학습으로서 工夫가 지향하는 爲己之學에 관해 재고하도록 한다. 그것은 전체로서의 진리를 포용함으로써 正體 즉 자아의 경계를 세상의 경계 즉 世界로까지 확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