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February 20th, 2010

February 20, 2010: 12:02 pm: bluemosesErudition

“우리가 마음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세상에 뿌리를 박고 미세한 뿌리털을 통해 그 세상의 지식과 정보를 빨아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으로부터 들어온 지식과 정보를 … 우리의 머리에 집어넣고, [그것에 의거하여 마음 속에 구축된] 육신의 사고 체계를 통해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경험한 것을 보관했다가 다시 그것에 비추어 판단하는 데 사용해가면서 살아오지 않았습니까?”(손기철)

: 11:29 am: bluemosesErudition

“이 논문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회이론을 종교, 특히 한국 개신교 분석에 적용해 봄으로써, 이에 대한 부르디외 사회이론의 설명력과 주요 개념들의 활용성을 가늠해 보고자 하는 의도를 갖는다. 먼저 부르디외의 사회이론을 정리하고, 개신교장이 기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내기물들(stakes)과 유희(play)를 할 준비가 된 사람들, 즉 유희의 내재적 법칙들과 내기물들에 대한 지식, 그리고 내기물들이 지닌 사회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아비투스의 보유자들인 주요 행위자들(신자)을 살펴 본 후에, 개신교장의 거시적 구조를 개괄한다. 그 다음으로 종교아비투스 개념에 개신교인의 종교성을 대입해 봄으로써 복음주의적이고 기복주의적인 성향을 재생산하는 개신교의 공리주의적인 아비투스를 규명한다. 마지막으로 개신교장의 내기물인 종교자본을 놓고 행위자들 간에 벌어지는 이중게임 전략과 상징재 시장의 메커니즘을 살펴봄으로써 복음과 구원, 복에 대한 정의를 둘러싼 투쟁과 개신교 장의 게임규칙을 서술한다. 결론적으로 한국 개신교의 종교성이나 개신교적인 실천의 표출적 차원인 복음주의 및 기복신앙은 독재‧권위주의 정권의 정치적 압력과 이에 대한 저항 전략이라는 사회적 맥락을 복음과 구원에 대한 입장차, 특히 진보 개신교와의 관계 하에서 해소함으로써 사회적 압력을 완화시키고 또한 저항담론들을 번역내지는 재해석시킴으로 형성된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종교아비투스의 산물이다. 또한 개신교의 진보신학 대 보수신학의 대립이나 사회선교 대 복음주의의 대립, 사회운동 대 개인주의적 종교생활양식의 대립은 사회공간의 정치적 영향을 개신교장 내의 특수한 내기물을 놓고 상징투쟁으로 변환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_ 일루지오(illusio) 형성의 역사적 고찰이 결여되어 표면 양상에 대한 이론적 기술에 머물고 말았다. 왜(why) 혹은 어떻게(how)를 사상한 채 이론에 현실을 맞추는 논문을 과연 ‘연구’라고 할 수 있는가? “이론을 충실하게만 따라서 분석해도 일종의 성취”라 한다면, 그것은 [학위논문이 아닌] ‘레포트’가 아닐까?

: 4:23 am: bluemosesErudition

0. 전국시대는 격동하는 역사의 전환기”였으며, “전 중국의 통일과 평화와 민생의 안정을 위해 새로운 시대정신이 간절히 필요하였다.” “당시의 지식인 집단인 제자백가 사상가들은 처한 입장에 따라 시대를 달리 진단하였다. 진단한 내용이 달랐으므로 당연히 처방의 내용도 달랐다.” “하나의 독특한 계층을 형성”한 지식인들은 “어느 특정한 계급 속성을 지닌 것이 아니고 어떤 계급에 복무하는가에 따라 계급 속성이 결정되었다.”

1. 맹자는 “토지를 생산자에게 고르게 분배하고 벼슬하는 자의 봉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방책으로 정전제(井田制)를 주장한다. 이는 “민생을 위한 일정한 생업의 확보 - 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 - 이자 맹자의 사(士)로서의 현실적 자기확보”이기도 하다. … 즉 “군주에게 등용되어 그를 보좌하고 민에게는 도덕을 교육하여 물질적 재화를 공급”받는 맹자의 처지가 여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맹자의 계급의식의 소산만은 아니다. 계급모순을 기초로 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의 반영”인 것이다.

2. 장자의 사상은 “구질서에서 신질서로 개편되어 가는 과정에서 소외된 일군의 몰락귀족, 소사유 농민 등 일종의 자유민 계층의 현실관이 반영”된 것이다. … “소생산자 계층의 첨예한 비판의식은 그들이 지니는 계급적 기반과 역량으로는 현실을 개혁할 수 없었다는 한계성 때문에 결국 현실에는 소극적이면서도 개인의 정신적 자유에 적극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3. 묵가는 “소외대중의 입장에서 정치참여 기회의 균등과 경제적 이익의 균분을 주장하였다.” 한편 순자는 “당시 강화되어가던 군주의 권력, 중국의 통일 전망이라는 현실을 반영해서 예를 실천하는 군주를 통해 민생의 안정과 계층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안정된 사회의 질서를 바랐지만 … 역사적으로 결국은 억압의 구도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 1:10 am: bluemosesErudition

1.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의주에서 ‘묵’이란 생선을 접했다. 선조는 그 이름이 맛에 비해 하잘 것 없다 여겨 ‘은’이라 개칭하였다. 그러나 훗날 수라상에 오른 ‘은’의 맛이 전 같지 않자 “도로 ‘묵’”으로 부르도록 하였다.

2.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선조의 질문에 광해군은 ‘소금’이라 답하였다. 모든 음식은 소금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나기 때문이었다. 광해군은 맛의 근본을 꿰뚫어 보았고, 선조는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 12:10 am: bluemosesErudition

1. “여기서 말하는 보수성이란 정치적인 진보-보수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변화하기는 죽기보다 싫고, 그러면서도 더 많은 월급은 받고 싶고, 기자로서 어디 가서 폼도 잡고 싶고, 기존에 누리던 익숙함과 편안함도 절대 포기하기 싫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 종이신문, 특히 지역신문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그대로 하면 100% 죽습니다. 지금도 이미 근근이 ‘연명’하는 수준입니다. 서서히 죽어가고 있지만, 그걸 자각하는 사람은 적고 월급만 많이 받고 싶은 사람은 늘어만 갑니다. 자각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누군가 몇 십 억 들고 와서 구원해주기만을 바라는 이들이 도민일보 내에 적지 않습니다.”(김주완)

2. ‘소외를 전제한 학습’의 폐해가 심각하다. 그러한 학습은 목표에 이르는 사다리와 같기에 정상에 도달하면 폐기된다. 익숙한 것에만 매진하는 것도 학습기피증의 일종이다. 스펙 경쟁의 생존자들이 무능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학습력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쩌면 변화를 거스르며 안주를 추구하는 가장 ‘보수적인’ 대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