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February 14th, 2010

February 14, 2010: 4:54 pm: bluemosesErudition

B.C. 722, 586, 509, 492~448, 431~404, 338, 264~241, 27

A.D. 395, 476, 1453, 1517, 1648, 1687, 1789, 1848, 1859, 1867, 1905(~1917), 1914~1918, 1929, 1939~1945, 1949, 1990, 2008

: 4:36 pm: bluemosesErudition

“미디어의 임무는 중요한 이야기를 인민에게 알리는 것이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중요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김규항) _ 아포리즘은 그를 ‘비판적 지지’하게 만드는 힘이다. 예컨대, “고래동무는 불쌍한 아이들을 돕는 운동이 아니라 아이들이 당연히 누릴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회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운동이다”와 같은 문장이 그러하다.

: 4:36 am: bluemosesErudition

“교육은 사회의 변화를 추동하는 영향력의 작용과 그것의 수용을 매개하는 기제”이고, 학습은 영향력의 작용과 수용 사이에서 리더십과 팔로워십의 일치를 수반한다. 용례는 다음과 같다: Pedagogy(peda=child, gogy=leading), Andragogy(andro=man, gogy=leading). 교육을 리더십의 측면에서 고찰한 것은 옳았다. 소외를 낳는 외면의 학습과 수술 중 각성을 극복하는 내면의 구축을 감안할 때, 이제 고민은 ‘工夫를 제3의 학습으로 설정하느냐’에 있다. 그것은 學習이 아닐지도 모른다.

: 12:45 am: bluemosesErudition

0. “진리는 대결을 동반한다.” 딴지담임목사 Mishipat의 변증을 발췌, 정리한다.

1. 성경: “성경의 권위를 어디까지 인정하는가 하는 것이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많은 이단들이 … 책 자체를 신성시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기 보다는 - 내러티브(설화구조)와 디스커스(강화 혹은 주석)로 구성된 -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책’”이다. “bible의 어원인 헬라어 biblos는 문자 그대로 ‘책’”을 뜻한다. “성경 중에서 정경으로 인정된 것과 외경으로 인정된 것의 기준은 다름 아닌 구속사”이다. “성경무오설은 성경을 기록하신 하나님의 뜻과 진리가 변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며 그분이 계시하신 구속사가 성취된다는 것이지, 그 속에 쓰여진 글자 하나하나가 신적 권위를 지닌다는 것이” 아니다. _ 성경은 복음(Gospel) 즉, 구원의 언약(Old & New testament)을 기록한 책이다. 이것은 숭배의 대상이 아닌 신앙 지침서이다.

2. 헌금: “[자발적] 신앙에 따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명하신 대로 … 자신의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지출”하는 것이 헌금의 정신이다. 그러나 대개의 헌금이 “외부의 구제나 선한 일에 쓰이는 것은 고사하고 무리하게 올린 교회건물 건축 대출금 갚는데 허덕거리게 된다. 일례로 20억 정도만 대출해서 연 5% 정도의 이자로 원리금을 갚아 나간다고 생각해 보자. 보통 10년이나 20년 상환인데 … 한달에 최소한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을 갚아 나가려면 온갖 명목의 헌금을 거둘 수 밖에” 없다. ”한국교회가 ‘대형교회=하나님의 축복’ 이라는 말도 안되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헌금문제 역시 해결될 수” 없다. “교회가 말도 안되는 건축 경쟁을 포기하고 …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리고 구제하는데 모든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_ 헌금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고백으로서 전하는 이웃사랑’(Thanks Giving)이다.

3. 교회: 세계 기독교 인구 12억 중에 ”불과 7백만에 불과한 개신교 인구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대형교회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이 현상은 분명 특별”한 것이다. “대형교회는 - 무슨 일을 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 그 자체로 이미 잘못된 것”이다. “우선 교회는 ‘무슨 일’을 하기 위한 단체가 아니라 …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곳이다. 여기에 규모는 아무런 존재의의가 없다.” 선교는 사업이 아니다. “전도는 삶을 통한 자연스러운 결과이지 교회의 전략적 목표가 될 수 없다.” “케리그마(선포)의 교회, 그것은 예수님과 사도시대에서 마감”되었다. “이제 교회의 가장 큰 존재의 이유는 디다케(교육)”이다. _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며, 교회의 존재이유는 그것을 교육하며 실천하는 것이다.

4. 구원: “예수님이 인간의 구원의 길이 되셨고 누구에게나 그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기쁜 소식이, 예수 안 믿으면 이교도고 사탄이고 죽여야 할 대상으로 [해석하는 악한 교설로] 바뀌었다.” “예수=천국이 아닌 예수=구원”이다. “신구약 성경에서 나타나는 구원은 인간의 내면에 관련된 것이다.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와 이로 인한 고통의 문제에서 건짐을 받는 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한편 천국, 즉 “복음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는 … 세상에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는 구약의 율법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한다. “성도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고(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섬기는) 삶”이다. “구원의 길이 분명한 것과 [천국을 구현하는 도정이] 쉬운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이땅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법칙대로 살면 그 사람은 이미 구원받고 천국(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_ 그리스도인(Christian)은 예수를 따라 성경적 세계관에 의거하여 사는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5. 직분: “오늘날 목사를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완전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목사는 … 장로이면서도 - 목사는 [장로들의 모임인] 당회의 일원으로서, 당회장 직을 수행한다 - 특별히 가르치는 일에 특화된” 자이다(엡4:11, 딤전5:17, 딤후2:2). ”원어상 어원(헬 poimen)도 목사와 교사는” 동일하다. ”현재 교회의 직분은 계급”이다. 그러나 ”성경의 세계관, 즉 성경의 사회적 구조는 역피라미드” 형태이다.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하고 존중해야 하며 특히 사회적인 약자들을 더욱 귀하게 대접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줘야” 한다. 그것이 “많은 것을 받은 사람들이 행해야 할 의무이자 … 특권”이며,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시는” 이유이다. “현대 개신교회는 모든 권력화되고 제도화된 직제들을 다시 성경대로” 복원해야 한다: ”목사(가르치는 자), 장로(지도하는 자), 권사(권면하고 격려하는 자), 집사(구제와 봉사를 담당하는 자).” _ 교권주의 성행의 1차적 원인은 성경 - 특히, 교리 - 에 대한 신도의 무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