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February, 2011

February 18, 2011: 12:27 pm: bluemosesErudition

1. 대부분의 과학(사)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과학에 대한 규정은 다음과 같다: “과학은 과학자들이 하는 그 무엇이다.” 과학사학자들은 과학자들이 과학사에 과민반응하는 모습을 외려 ‘과학의 계몽적 정신’을 위반하는 행위라 생각하곤 한다. ‘과학’이 그런 과거를 갖고 있음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 관해 말한 것처럼) 과학적 정신이라는 거다. 이런 맥락에서 블루어 같은 과학사회학자들이 그들의 스트롱 프로그램을 정확히 ‘과학에 관한 과학’이라 부른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 블루어는 과학자들의 과민반응에서 19세기 성서문헌학에 대한 기성신학자들의 과민반응을 떠올린다. 면면한 계몽주의적 정신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른 길을 가려는 인물들이 라투르, 피커링, 해러웨이 같은 이들이다. 혹자는 하버마스 대 푸코의 대결 같은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고 그런 인상이 아주 근거 없는 것은 또 아니다.

2. 라투르는 푸코와의 관계를 명시하지 않지만 ANT를 함께 만든 이들은 푸코의 담론의 물질성, 지식/권력, 장치 개념에서 많은 것을 차용했고 이는 이미 여러차례 지적된 바있다(아감벤이 패러다임과 장치에 관해 쓴글이 있다. 흥미로운 글이다). 과학사학자들 중에서는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에 운집해 있는 일군의 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역사적 인식론/존재론’이라고 부른다. 다스턴, 조르그-라엔버거, 클라인 등등이 대표격이다. 이들 중 중요인물들이 푸코에게서 얼마나 다양한 것을 배웠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다스턴은 푸코에게서 역사적 불연속성 및 일종의 역사주의를 배웠다. 그가 상상력, 호기심, 객관성에도 역사성이 있음을 주장하는 이유다. 과학철학자들 중에서는 … 과학을 사실상 명제 혹은 진술의 집합이라 생각하는 거대한 집단을 제외하고 남는 이들 정도가 될듯하다. 해킹, 카트라이트, 갤리슨 등등(그리고 흥미롭게도 이들 모두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세기말 유럽’을 만나게 된다). 해킹은 선-정상과학(immature science)을 다루는 법, 자연과학/사회과학을 구별하는 법을 [푸코로부터] 배웠다. 예컨대 자연과학이 자연종을 다룬다면 사회과학은 사회적 종을 다룬다. 그러므로 사회과학에서는 지식이 대상에게 영향을 주는 환류효과(looping effect)가 생긴다.

3. 해킹은 자신의 철학을 역동적 유명론이라 지칭한 바 있다. 라투르를 철학적으로 해석한 하만에 따르면 라투르는 세속적 기회원인론자이다. 다스턴은 일종의 신역사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러면 푸코는 이 모든 철학의 종합인가? 그러나 이런 질문은 그리 생산적이지 않다. 푸코 자신이 ‘내가 언제나 그렇게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중요한 것은 푸코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이다. 해킹이 푸코에 “관한” 책을 썼다가 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결론은? 요컨대 이런 역사성을 인지하고 있는 과학사학자, 과학사회학자, 과학철학자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제 이 분야도 ‘패러다임을 갖춘 분과’가 된 것이다. 페미니즘이나 포스트식민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다른 의미에서 비판적 정신을 이어가고는 있다.

: 12:19 pm: bluemosesErudition

범박하다 _ 데면데면하여 구체적이지 못하고 범위가 넓다

February 17, 2011: 9:35 pm: bluemosesErudition

“원래 행복이라는 말은 내면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February 16, 2011: 2:38 pm: bluemosesErudition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 2:28 pm: bluemosesErudition

지식과 인식, 인식론(Epistemology) 공부가 요청된다.

: 1:51 pm: bluemosesErudition

0. <사회를 보는 논리>의 저자 김찬호가 <돈의 인문학>을 출간했다. 목차는 아래와 같다.

서문 _ 돈은 물질이 아니다

제1부 숫자의 현혹: ‘가격’과 ‘가치’ 사이에서

제1장 돈의 매력, 이것이다
1. 힘의 원천 또는 블랙홀
2. 돈이 좋은 일곱 가지 이유
3. 불멸의 환상을 위하여

제2장 화폐의 정체
1. 지폐가 통용되기까지
2. 돈은 어디에도 없다
3. 화폐는 곧 언어다

제3장 가격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1. 달을 분양해 떼돈 번 사나이
2. 사람의 몸값이 천차만별인 까닭은
3. 연봉과 보상금의 계산법은?
4. 가치에 무지한 인간

제4장 숨겨진 비용
1. 엉뚱한 손익 계산
2. 화폐 환상이라는 것
3. 모두가 손해를 보면 괜찮다?
4. 숫자의 함정

제5장 돈이 무용지물이 될 때
1. 재난 상황에서 돈의 운명
2. 통화의 남발과 인플레이션
3. 백만장자들끼리만 모여 사는 세상이라면

제2부 대안 경제의 모색: ‘소유’에서 ‘관계’로

제6장 투기 경제의 사필귀정
1. 금융공학, 위험 전가의 무한 연쇄
2. 부동산, 불패 신화의 종말
3. 파국이 불가피한 까닭

제7장 ‘쩐의 전쟁’에 휘말리는 삶
1. 카지노형 머니게임의 얼개
2. 노동자, 소비자, 투자자 사이의 삼각 충돌
3. 화폐, 또 하나의 ‘이기적 유전자’

제8장 얼굴 있는 돈을 찾아서 : 소액금융과 지역화폐
1. 그라민은행, 빈곤 탈출의 길잡이
2. 미소금융의 결정적인 맹점
3. 레츠(LETS) : 누구나 발행할 수 있는 화폐
4. 부(富)를 매개하는 돈으로

제9장 우애(友愛)의 경제를 디자인하자
1. 시장 규칙과 사회규범
2. 비시장 부문이 탄탄해야 시장도 건실하다
3. ‘돈맹’과 ‘MQ’의 새로운 정의(定義)

제3부 돈의 주인이 되려면

제10장 아이들에게 돈은 무엇인가
1. 일찍 돈맛을 알게 되는 환경
2. 구체적인 경험과 문제 해결 능력
3. 스스로 동기 부여할 수 있는 마음

제11장 남녀 관계를 시험하는 물신(物神)
1. 사랑에 속고 돈에 웃고
2. 경제력, 연애와 결혼의 지렛대
3. 사랑은 가질 수 없는 것을 주는 것

제12장 품위 유지의 비용은 얼마인가
1. 돈을 밝힐 수 없는 인간관계
2. 위세의 두 얼굴 - 위엄과 허세

제13장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1. 타인에게 종속된 욕망
2.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이 하나도 없어도
3. 유능함과 무능함의 다른 기준

제14장 돈과 나, 관계의 리모델링
1. 결핍과 풍요의 역설
2. 노후 준비 자금, 3천만 원이면 된다는데
3. 부(富)의 원천을 찾아서

후기 _ 우리는 다시 존귀해질 수 있다

* 구입할 만한 도서는 아니니, 대여해서 훑어야겠다.

: 1:17 pm: bluemosesErudition

<아모스>를 읽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한다. 공의와 사랑, 이 둘을 일컬어 은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치유하시는 은혜를 사모합니다.’

February 15, 2011: 9:22 pm: bluemosesErudition

“2009년 여름 몽골국제대학교에서 제3회 파우아(PAUA) 모임이 열렸다. 전 세계에 흩어져서 사역하는 선교 대학교 관계자들이 모이는 회의였다. 물론 한국인 선교사들이 세운 선교 대학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서구 선교계가 근 50년간 선교지에 단 하나의 선교 대학도 세우지 않은 반면, 한국은 최근 10여 년 사이에 구 공산권이라 할 수 있는 중국, 몽골, 캄보디아 등지에 선교를 지향하는 대학들을 세워나가고 있다. 파우아 모임은 이 대학 관계자들과 인도네시아에 세워진 기독 대학, 라오스, 미얀마, 아프리카의 가나 등지에 앞으로 대학을 세우기 위해 준비하는 그룹들도 함께한다.”(이용규, 2010: 228~229)

: 3:11 pm: bluemosesErudition

1. 소설가 김영하는 지난 1월 1일 <작가는 언제 작가가 될까>라는 신춘문예에 대한 단상에서 “누군가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긍지”라고 했고, 이에 대해 평론가 조영일은 “외부의 인정과 상관없이 자신의 가치만을 끝까지 고수하는 것을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른다”며 반박했다. 김영하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당분간 오직 우리 자신 뿐”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 내면의 열정”이라고 강조했으나, 조영일은 “자신만 바꾸려고 하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고 재반박했다.

2. “논쟁의 파탄은 다 제 책임”이다. “블로그를 닫고 트위터를 그만두겠다. 이제 가장 사랑하는 책상 앞으로 돌아가 글만 쓸까 한다. 부족한 저는 골방에서 저의 미성숙한 자아와 어두운 욕망을 돌보겠다.” “무엇보다도 죽은 고은이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 사인은 영양실조가 아니라 갑상선기능항진증과 그 합병증으로 인한 발작이라고 고은이의 마지막을 수습한 친구들에게 들었다. 게다가 우울증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진실은 외면한 채 아사로 몰고 가면서 가까웠던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마음의 병이든 몸의 병이든 우리 사회가 서로 살피고 돌보는 계기가 되면 그녀의 죽음이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를 예술의 순교자로 만드는 것도, 알바 하나도 안 한 무책임한 예술가로 만드는 것도 우리 모두가 지양해야 할 양 극단”이다.(김영하)
 
3. “생산적인 논쟁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이 짧았다.” “열심히 소통하려고 노력했는데 독자가 작가에게 원하는 소통은 이런 게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설령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제가 가장 잘 쓰고 독자들이 가장 기다리는 소설을 통해 쓰는 게 맞다.” “그만두게 됐지만 논쟁 자체는 유의미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새로 시작하는 예술가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나는 예술가 개인이 냉철하게 현실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었고, 조영일 씨는 사회를 변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 다 중요한 논점이었다고 생각하며 다른 분들이 생산적인 결론을 내주셨으면 한다.”(김영하)

4. 해묵은 논쟁이, 故 최고은을 향한 대중의 편의적 감정이입으로 달궈졌다. 조영일의 기여는 번역 뿐인가.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에 젖어 있으면서도, 그는 선생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사회를 개혁한 경험이 있는가. 무언가 변혁하려는 자는 어찌 해야 하는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당분간 오직 우리 자신 뿐”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 내면의 열정”이 아닌가. 조영일에게 킹(Ross King)의 <파리의 심판>을 권한다.

: 12:13 pm: bluemosesErudition

영적 하락은 관계 친밀도의 하락을, 그 다음 맡은 일에 의욕하락 증상을 가져옵니다. 맡은 일에 소홀하거나 대충 처리하는 의욕상실은 곧바로 성과하락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실제로 나를 평가하는 ’갑’들에게, 나의 등급하락을 요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론은 내 삶이 좋아지고 나빠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고,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배영진, 110213)

* 1)영적 하락, 2)관계 하락, 3)의욕 하락, 4)성과 하락, 5)등급 하락 _ 우연은 없다. 방관이 있지. 나는 지금 3)과 4) 사이에 있다. 1)의 회복을 전력 다해 추구하자. 오늘 오후 반가를 얻어 피정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