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February 8th, 2011

February 8, 2011: 10:52 pm: bluemosesErudition

1.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힘에 겹게 너무 짓눌려서, 마침내 살 희망마저 잃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이미 죽음을 선고받은 몸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고린도후서 1:8~9)

2. 은송림 이후 ‘수술 중 각성’을 극복 방안을 찾던 중에 임한 하나님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종복은 말이 없다. 침묵의 섬김이 절실하다. 치밀한 조치를 통해 상황을 통제하기 원하나, 이는 불가하다. 변인은 바다의 모래알 보다 많다. 기도의 또 다른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째는 영혼이 쓸려가지 않기 위해, 둘째는 진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결국 두 가지 모두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주를 따르기 위함이다. 요컨대 순종이 관건이다.

3.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는 일에 대해서조차 떼를 쓰고 간절히 기도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좋은 기도라고 생각한다. 또 많은 경우 그렇게 할 것을 권장하기도 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킨 기도의 예로 히스기야의 기도를 많이 언급한다. 히스기야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히스기야는 눈물로 하나님께 간주하여 15년의 생명을 연장받았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병을 낫게 하신다는 확증으로 그의 요청에 따라 해시계에서 해의 그림자를 십 도 물러가게 하는 이적을 보이셨다(왕하 20:1~11). 하지만 그 후 히스기야는 바벨론에서 온 사자에게 자신의 보물고와 군기고의 모든 것을 자랑하며 보여주는 큰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하여 비록 히스기야 때에는 유보되었지만, 궁극적으로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더군다나 그의 생명이 연장되어 아들 므낫세가 태어났다. … 히스기야의 생명 연장은 결국 유다 백성들을 55년간 악한 왕 므낫세의 통치 하에서 신음하게 했다.”(이용규, 2010: 48~49)

: 9:36 pm: bluemosesErudition

문화적 병폐를 치유하는 것은 사람을 세우는 일이기에 ‘연극에서 교육을’ 추구하고, 인간의 도야는 인지-정서-심동의 총체적 변혁과 연계되기에 ‘교육에서 연극을’ 지향한다. 양자의 연합은 치유 즉, 인격의 성화를 목적으로 한다.

* ‘듬직이’의 서울교대 대학원 입학을, 주께 진정 감사드린다. _ 2011. 2. 11(금)

: 5:06 pm: bluemosesErudition

1. “자아는 내 경험의 역사가 만들어가는 스토리텔링이 아닐지. 스토리는 내가 만들 나름. 그래서 인문학이 필요할께지.” “고등사고는 반사적 행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 자극뉴런의 신호에 대해 즉시 반응하는 건 하등동물의 흔적. … 자극을 제어하고, 모으고, 묶고, 종합평가해서 반응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법. 이걸 ‘생각’이라고 하지 않을까?” “자극과 반응은 주로 무의식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wait a minute’을 외치는 생각은 의식의 테이블 위에서 이루어짐. 학교학습의 대부분은 무의식적 자극들을 의식의 테이블 위로 옮겨 놓는 특징을 가지지 않을까?” “학습을 탐색할 때 ‘자아’와 ‘의식’이라는 두 키워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 내가 볼 때 지금까지의 교육연구는 이 두 개념을 성공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100718)

2.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은 곧 지금의 학교 내신제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점수 부풀리기를 막기 위한 상대평가 제도는 1등급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에게 깊은 좌절감과 절망감만 심어준다. 해도 안되는 것을.”(100720) “양극화로 치닫는 우리 사회는 중산층 살리기. 1등만 알아주는 우리 학교에서는 중간층 살리기. 4~5등급 아이들이 존중받는 학교문화가 필요하다. 중간층 아이들을 위한 특별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들이 곧 우리 사회 중산층이 될 것이기 때문에.”(100825)

3. “2009년 교육과정 개정 및 2014년 수능 개정이 교육계를 또 한번 들쑤셔놓고 있습니다. 밀실기획과 MB식 밀어부치기가 거의 4대강 사업을 능가합니다. 특히 영수를 제외한 모든 교사들이 허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학들이 남아돈다는데, 정말 대학 수준의 고등학교를 만들어서 우리 아이들을 보낼 수는 없을까요. 과목도 골라서 듣고, 수준 높은 강의도 듣고, 캠퍼스도 거닐고 말이지요. 고등학교는 이제 칼리지 개념으로 확 바꿔버렸으면. 투자도 왕창 하고.”(101113)

* 문득 ‘제한된 합리성’(Herbert Simon)과 ‘인지적 무의식’(George Lakoff)이 연상되었다.

: 4:52 pm: bluemosesErudition

기분파는 간사하다.

: 4:38 pm: bluemosesErudition

“위대한 지도자가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정치철학 용어로는 ‘결단주의’라고 하는데, 이는 정치적 행위가 개개인의 일상에서 멀어져서 무력감을 느낄 때 흔히 발생합니다. 자신의 의지에 따른 행위로 정치를 바꿀 수 없다고 느낄 때, 정치가 더 이상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일종의 볼거리로 전락할 때, 사람들은 결단주의에 빠져 메시아를 기다립니다.”(강유원, 2010: 150) _ Karl Schmitt(1934)《Über die drei Arten des rechtswissenschaftlichen Denkens》

* 무력감에 침륜해 있을 때, 결단주의 외에 무엇을 추구할 수 있을까. “시편은 좌절을 몰아내는 방법을 말합니다. … 비결은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는 것입니다.”(배영진, 2011. 02. 06) 결단주의가 ‘기계장치의 신’(Deux ex Machina)에게 현실의 지양을 호소한다면, 복음주의는 구조와 행위를 주관하시는 그리스도께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