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September 12th, 2011

September 12, 2011: 12:20 pm: bluemosesErudition

- http://www.gse.harvard.edu/directory/faculty/?flt=c&sub=edc

- http://www.educ.cam.ac.uk/people/acadstaff/ _  John MacBeath, Rob Moore

: 12:01 pm: bluemosesErudition

엊저녁 <역사고전강의>로 인해 씁쓸했다. 영과 육이 고갈되는 와중에, 혼의 지적 기근마저 대면하여 애통했다. 그러나 시선이 분산되어서는 안된다. “관심의 원”에서 “영향력의 원”으로, 이것이 자족의 평안이자 개혁의 용기이며 현재의 행복이다. 폴리스를 잃은 자의 安心立命일까. 디오게네스가 될 수도 없고, 아타락시아를 추구할 형편도 못되니, 명상록을 적으며 부동심을 연습하자.

: 11:54 am: bluemosesErudition

“번역이란 글쓰기입니다. 루이스가 글쓰기에 대해 조언한 것이 있는데, 그 핵심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분명히 하고 그것이 전달될 수 있게 글을 쓰라고 했습니다. 번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번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글쓰기입니다.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번역을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어와 한국어가 만나는 접점에서 그 내용을 잘 설명해주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번역이란 저자의 말을 가능한 정확하게, 무엇보다 이해하기 쉽게, 최대한 간결하면서도 유려한 우리말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TV에서 송창식 씨가 기자의 질문에, ‘노래라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봤습니다. 사람들은 노래는 목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노래하는데 그만큼 잘하는 사람은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잘하려면 그 다음부터가 필요한데 그것은 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재주로 할 때는 차이가 조금 나지만 3, 4년 지나면 차이가 안 나기 시작하고 5, 6년 지나면 먼저 소질 있는 것은 다 무효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재주가 아니라 몸의 꾸준한 연습으로 하는 거라는 말이 번역으로 먹고 사는 제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번역도 기실 몸으로 하는 까닭입니다. 먼저 본문을 꼼꼼히 읽어 그 의미를 충실히 파악한 후에, 작은 것 하나라도 미루어 짐작하지 않고 인명이나 지명부터 인용되는 책 제목에 이르기 까지 사전 찾기는 기본이고 참고자료를 최대한 찾아 확인합니다. 그리고 유려한 우리말이 나올 때까지 궁리하면서 고치고 또 고치는 작업을 하는데, 이 모두 내 손과 발을 움직여 머리를 굴려서 하는, 몸의 작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언어를 번역하는 번역가라 할 수 있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 표정, 자녀교육 방식, 삶의 방향, 지향성, 습관, 취미 등 총체적으로 하나님을 번역하는 삶을 사는 겁니다. 이는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오역을 조금이라도 줄여나가고, 괜찮은 번역을 할 수 있는 소양과 실력을 키워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을 뿐이지요.”

_ 홍종락(매일성경, 2011. 09+10)

* 2011년 9월 현재, 82권을 번역한 홍종락이 추천한 두 권의 책은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와 <꿈꾸는 인생>이다. 축복과 위로와 간증을 몸으로 번역하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 1:35 am: bluemosesErudition

“저는 인생마다 환승하는 나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을 처음 만난 그때가 가장 중요한 환승이었고, 그 다음 대학을 졸업하고 시민운동을 시작했던 24세, 그리고 아름다운재단에서의 3년을 보내고 32세에 이라크 여행을 시작했던 때, 작년에 이 지역(경기도 화성)에 더불어 숲 교회를 개척해서 내려오게 된 41세. 이제 곧 또 다른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겠지요.” 

“저희가 교회(담임: 이도영 목사) 개척을 준비할 때 저희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서울에 많겠지만, 그 가치가 필요한 사람은 지방에 있을 거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여서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 … 작년에 이 동네 20대 젊은이들들을 인터뷰해서 그들을 초청하고 전시회와 파티를 열었는데, 그들이 찍어온 사진들과 저마다의 사연을 대하면서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냥 이마트 직원이 아니라,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존귀함을 발견해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해외에 나가는 어떤 여행보다 저희 동네에소 새로운 누군가를 깊이 만나는 것, 그와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여행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간으로서의 여행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지만 거기에 가면 누구를 만날 수 있다는 관계의 여행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한번은 제가 히말라야를 여행하면서 가이드에게 들은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그들은 여행의 기준을 거리에 두지 않고 고도에 두고 여행한다고 했습니다. 즉 오늘 몇 킬로미터를 가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몇 미터를 올라갈 수 있는지 고도를 정하고 산행을 하는 것이지요. 그들이 올라야 할 산은 8천 미터가 넘는 산이기 때문에 고도를 여행하는 사람은 속도에 연연하지 않는 것입니다. 매일 그날만큼의 고도에 맞춰 호흡과 몸을 조율하면서 높은 고도를 견디는 것입니다. 저는 그 후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나 멈춰있는 것 같을 때, 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면, ‘아? 지금 내가 거리를 여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도를 여행하는 사람이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멈춰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지금 나의 고도를 높이고 계시는 중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잠잠히 멈춰 서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고 머물게 하시는 이의 뜻에 따라 머무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_ 임영신 공정여행가(매일성경, 2011. 07+08)

: 1:08 am: bluemosesErudition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행 4:32~35)

키프로스 태생으로, 레위 사람이요, 사도들에게서 바나바 곧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별명을 받은 요셉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밭을 팔아서,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그런데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함께 소유를 팔아서, 그 값의 얼마를 따로 떼어놓았는데, 그의 아내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떼어놓고 난 나머지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그 때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였다. “아나니아는 들으시오.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사탄에게 홀려서, 그대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의 얼마를 몰래 떼어놓았소? 그 땅은 팔리기 전에도 그대의 것이 아니었소? 또 팔린 뒤에도 그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소?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할 마음을 먹었소? 그대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오.” 아나니아는 이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숨졌다. 이 소문을 듣는 사람은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행 4:36~5:5)

* 금권력으로 권세를 횡령하려는 자는 공동체의 지향을 혼잡케 한다. 이는 ‘죽을 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