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련에서 같이 활동하던 김기설이 1991년 5월8일 아침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한 뒤 투신하여 사망했다. 4월26일 명지대생 강경대 학생이 죽은 뒤에 지속적으로 학생,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지면서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정권의 위기 국면을 돌파하려는 이들이 기획한 게 ‘분신의 배후’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민주화운동 세력을 도덕적으로 매장함으로써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치안관계 장관회의가 5월7일 열렸고, 8일 아침 7시에도 열렸다. 바로 이럴 때 김기설의 죽음이 발생하자 이를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기획에 활용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유서를 대필해 김기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시나리오가 작성되고, 전격적으로 검찰 강력부가 수사를 전담한다. 그들에게는 강기훈이 가장 만만한 먹잇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