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August 6th, 2016

August 6, 2016: 5:20 pm: bluemosesErudition

르상티망 혐오, 신(앙)의 부정, 니힐리즘 즉 영원회귀의 세계, 운명애, 위버멘쉬

: 4:26 pm: bluemosesErudition

왜 모집단과 표본의 분산 식은 상이한가 _ 자유도(df, degree of freedom)

: 2:53 pm: bluemosesErudition

비트겐슈타인 전기와 후기의 매개항

: 2:28 pm: bluemosesErudition

“n개의 양수에 대하여 그 역수들을 산술평균한 것의 역수를 말한다. 예를 들어, 두 지점 A, B를 갈 때는 ‘a’ km/h의 속도로, 올 때는 ‘b’ km/h의 속도로 왕복했다면 이 사람의 평균속력은 a와 b의 조화평균에 해당된다. 또 100m를 3회 뛴 속력이 a, b, c일 때, 평균속력은 조화평균으로 구해진다. 이와 같이 일이나 능률의 예에서는 산술평균을 구하면 틀리게 된다.”

: 2:14 pm: bluemosesErudition

asterisk

: 4:38 am: bluemosesErudition

<고통의 문제>에서 <헤아려 본 슬픔>으로

: 4:34 am: bluemosesErudition

“결국 신의 죽음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신앙의 죽음이고, 신앙으로 존재하는 자인 인간의 죽음일 수밖에 없다. 신앙이 살아 있고, 신앙으로 존재하는 자인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신의 죽음 소식은 이해될 수가 없는 것이다. 신앙이 남아 있다면 신은 수백 가지 버전으로 출현할 수 있다. 국가와 민족을 섬기는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화폐를 숭배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으며, 시장을 우상화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따라서 신의 죽음은 인간적 형태의 온갖 우상 숭배의 종식을 의미한다. 차라투스트라가 신의 죽음을 전하는 곳에서 위버멘쉬를 가르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신의 죽음이란 곧바로 인간의 죽음이며, 위버멘쉬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 인간이 위버멘쉬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복음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항상 자기 가치를 두고 그것에 복종해 온 인간이 드디어 노예적인 생활을 끝내고 자기 가치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진은영)

“‘신은 죽었다’라는 대담한 선언은 유신론자에게는 당연히 그랬겠지만, 알고 나면 무신론자에게 더 끔찍한 선언이다. 니체는 종교를 사제 집단의 권익과 약자들의 르상티망이 합작한 산물이라고 본다. 사제 집단은 자신들의 존재 근거를 위해 도덕과 죄의식이라는 무기를 발명해 벼리었으며, 약자들로 이루어진 대중은 강자들로 이루어진 귀족 계급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착함·겸허·순종·인내·용서 따위의 미덕을 궁리해냈다. 원수를 사랑하라느니,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해주라느니 하는 예수님 말씀은 다 약자의 강자에 대한 “증오와 복수”에서 나왔다. 니체는 민주주의·사회주의·민족주의·여성주의 등 평등에 근거한 온갖 근대 사상을 그리스도교 복음의 세속화된 형태로 본다.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같이 놀라야 할 것은 신의 죽음이 아니라, 그 선언이 사랑·동정·박애와 같은 이상마저 몰살했다는 점이다. 니체에게 그것들은 신과 함께 합장해야 할 노예의 도덕에 지나지 않는다. … 신도, 사랑도, 동정도, 도덕도, 선악도 없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니힐리즘(허무주의)밖에 없다.” “니체에게는 초월적인 이데아가 없으므로 세계는 닫힌 계(界) 안에서 무의미한 영원 회귀만을 반복하게 된다. 초인이라고 불리는 소수의 위버멘슈만 이 로도스에서 창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며, 열등한 대다수에게는 폐쇄 속의 반복을 사랑하는 운명애만 주어져 있다. 이런 상항이야말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며, 압도적인 대다수가 직면해 있는 신자유주의 천지가 아니고 무엇인가? … 세상에 고통이 없다면 그것을 극복하려는 힘에로의 의지나 위버멘슈가 탄생할 수 없다. 인간 세계로부터 고통을 덜어주거나 고통을 평준화하겠다는 사회복지니 고통 분담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인간을 퇴화시키는 악덕이다. 니체는 서양 역사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자였으나, 휴머니즘을 가장한 그의 반시대적 광기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자(Libertarian)들의 교설이 되었다.”(장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