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악을 행하지 않았다. 다만 악을 먹었을 뿐이다.
“하버마스의 이론에 따르면 사회는 ‘체계’와 ‘생활세계’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회를 크게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의 네 하위체계로 나눈다면, ‘체계’에는 정치와 경제의 상위체계가, ‘생활세계’에는 사회와 문화의 하위체계가 그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된다. 생활세계는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서 사회의 규범을 구성해나가는 사회적 행위의 공간이고, 체계는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일치할 수 없는 요청에 의해, 사회 구성원들의 의사로부터 독립적인 사회적 행위의 공간이다. 생활세계는 하버마스에게는 사회 구성원들이 그들의 의지와 자유에 따라서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고, 체계는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또는 인간의 언어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공간이다. … 우리는 생활세계의 부활이라는 하버마스의 희망은, 체계의 확장에 사회 구성원들이 어떻게 포섭되어 있는가를 그가 애써 외면하고 있음으로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그는 체계의 확장이 사회 구성원의 행위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돈이나 권력이라고 하는, 탈언어화되어 있는 매체라고 하는, 애매한 용어를 사용하여 강제된, 소외된 노동에 의한 체계의 확장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이홍규)
“운동권을 배제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도 결국은 ‘운동권’이다. 정치적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적 행위이듯.”(하종강)
Warum ist die Furcht und Angst
“데카르트와 파스칼, 영리한 근대인들인 계몽철학자들, 그리고 후대의 키에르케고어를 사로잡은 것은 두려움과 불안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향해간 곳은 각각 달랐다.”
* 자각된 중간지대의 두려움과 불안. 현기증의 밑둥을 죄책감으로 규정하는 것은 합의된 바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