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을 긍정하는가 하면 동시에 그와 반대되는 것을 긍정하여 두 개를 동시에 세운다.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의 표어인 ‘민족사회주의’에만 해도 특정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와 노동자를 중심에 둔 사회주의가 뒤엉켜 있다. 심하게 말해 파시즘은 그때그때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거의 즉흥적으로 가져다가 이리저리 짜 맞추면서 형성된, 그래서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항상 변화하는 역동적인 이데올로기이거니와, 바로 이것이 파시즘을 명료하게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주된 요소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런 잡탕 덩어리가 전간기 서구에서 아주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지도자와 그를 둘러싼 지배층, 지배기구의 구성원, 피지배집단(이들의 참여를 감안하면 ‘피지배’ 라는 말을 붙이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긴 하다. 그런 점에서 파시즘을 규정할 때에는 치밀하게 적극적인 대중동원과 열광적이고 긍정적인 대중참여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며, 이는 파시즘이 참여 민주주의적으로 작동했다는 판단도 가능케 한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이념체계 실현에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바쳤던 것이다. 이러한 실행과정 역시 명료한 파악을 저해하면서 동시에 파시즘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 밀고 나간 인간 군상의 심성구조 이해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는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