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uly 15th, 2017

July 15, 2017: 9:04 pm: bluemosesErudition

“저조하던 팀이 갑자기 우승후보로 변했습니다.” “노동절에 르브론이 ‘연습하러 가자’고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우리는 30분 일찍 가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르브론은 이미 한 시간 전에 와서 땀에 흠뻑 젖어 있었어요. 그걸 보고 놀랐죠. 르브론은 진정한 선수입니다. 카이리 어빙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르브론에게는 핑계를 댈 수 없다고요. 우리는 운동량을 두 배로 늘려야 했습니다.”(트리스탄 톰프슨, 센터/포워드 13번)

* 르브론 제임스와 스테판 커리는 오하이오 주 애크런 소재의 같은 산부인과에서 출생하였다.

: 8:53 pm: bluemosesErudition

디오티마는 상승의 노력으로써 연습을 거듭하면 “갑자기” 최고의 앎에 이를 것이라 조언하지만 그것은 무녀巫女에게만 도달 가능한 경지인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운 것 자체에 대한 배움으로 올라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러면서도 소크라테스는 스스로가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면서 다른 이들에게도 그것을 권한다.

에로스 신에 이르는 길은 무녀들만이 오를 수 있다. 무녀의 모사물인 소크라테스는 그 길을 연습하고 권할 수 있을 뿐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에로스 신에 이르지 못한, 그러나 에로스 신에 이르는 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그는 알키비아데스와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디오티마에게 이야기를 들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밤새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으려 하고 남들이 다 잠든 다음 날 아침 목욕을 한 뒤 하루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멀쩡하게 보낸다. 알키비아데스는 술을 마시지 말고 일찌감치 아가톤의 집에 도착하여 소크라테스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폴로도로스의 부지런함을 보라!

: 8:48 pm: bluemosesErudition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나, 미친 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이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羑里)로도 모인다.”

_ 박상륭朴常隆(1940. 8. 26 - 2017. 7. 1), <<죽음의 한 연구>> 첫 문장

: 4:20 am: bluemosesErudition

일본 정치사상 연구자인 하라 타께시(原武史)의 『다키야마 코뮌 1974: 민주적 집단 교육 공동체는 어떻게 개인을 억압하는 권력이 됐나』는 우리에게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책에서 추억하는 ‘타끼야마(瀧山) 꼬뮌의 모델’이야말로 한국의 진보세력 역시 동시에 꿈꾸었던 교육현장에 방불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이 책은 ‘정치의 계절’과 ‘사생활주의’ 사이의 경쟁이 ‘사생활주의’의 승리로 끝났다는 일본 전후 사상의 명제에 대해 저자가 표명하는 작은 의구심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타끼야마 꼬뮌은 일상생활 속에 드리운, 야위어가던 정치의 그늘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어릴 때 살던 타끼야마 단지를 재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타끼야마 단지는 1950년대 말부터 일본정부가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성한 대규모 단지 중 하나였는데 우리로 치면 분당이나 일산과 같은 교외 신도시에 해당할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다녔던 타끼야마 단지 제7초등학교를 무대로 “전공투 세대인 교사와 다키야마 단지에 사는 어린이, 제7초등학교를 개혁하려 나선 어머니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국가권력에서 벗어나 자립해 어린이를 주권자로 삼은 민주적 학교를 만들 목표로 생긴 지역공동체”를 ‘타끼야마 꼬뮌’이라고 칭한다. 우리로 치면 386세대 학부형이 전교조 교사들과 손잡고 급진적인 교육개혁을 추진한 것으로 이해하면 비슷하겠다.

흥미로운 것은 타끼야마 꼬뮌을 이끈 주축이 어머니들로 구성된 ‘학부모교사협의회’라는 점이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데 그래서인지 저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달아놓고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1970년대는 몇몇 학생이나 지식인 말고도 적지 않은 이들이 사회주의라는 이상을 여전히 믿던 시대라는 점이다. 정치의 계절은 끝났지만 사람들은 이상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타끼야마 단지 주민들 중 상당수가 일본 사회당 혹은 일본 공산당의 지지자였으며 이러한 성향의 ‘어머니’들은 진보적인 교사들과 뜻을 함께했다. 제7초등학교의 어머니들은 “지금 입시학원은 공부가 뒤처진 아이들이 아니라 좋은 학교에 들어가려는 아이들이 공립학교에서 하는 공부로 만족할 수 없어서 가는 곳인 듯합니다. 사회모순을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라는 교사의 말에 적극 동의하는 한편 학생 평가방식에 있어 “돈 받고 파는 시험지로 테스트를 해서 무슨 평가를 한다는 겁니까?”라며 학교 측에 따지기도 한다.

: 3:57 am: bluemosesErudition

빛을 경험하면 무수한 그림자는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