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uly 9th, 2017

July 9, 2017: 11:21 pm: bluemosesErudition

1.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는 성(聖) 안토니오 수도원이 의뢰한 작품이었다. … 제단화는 성당의 제단 뒤에 걸려있는 회화나 조각, 부조 형식을 일컫는다. 예술에서 제단화는 두폭제단화(diptych), 세폭제단화(triptych) 등으로 구분된다. 이젠하임 제단화는 입체 제단화로 아주 독특한 형식을 취했다. 한 마디로, 맨 앞에 있는 제단을 열면 또 다른 제단화가 계속해서 나오는 대형 이동식 입체 제단화였다. 형식은 입체였지만, 회화가 제단의 여러 패널을 장식했다. 그뤼네발트는 1512년부터 1516년까지 4년에 걸쳐 이 작품을 제작했다. 평소 제단화는 닫혀있었다. 닫힌 상태의 이젠하임 제단화 중앙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왼쪽 날개에는 화살을 맞은 성 세바스찬, 오른쪽 날개에는 성 안토니오가 표현돼 있다. 좌우의 두 성인은 병든 자를 치료해주는 수호 성인들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당시 이 그림을 보던 사람들과 같은 피부병을 앓고 있다. 못에 박힌 고통을 강조했던 다른 도상과 달리, 이젠하임 제단화의 예수는 피부병으로 물집이 잡혀있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자신들의 모습을 닮아있다. 하얀 복장을 한 마리아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자 요한이 부축한다. 그 옆에 있는 막달레나 마리아도 긴 상심에 빠져있고, 그리스도 오른쪽에 위치한 세례 요한 옆에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뜻하는 양이 그려져 있다.

2.
제단화 속 세례 요한은 유독 긴 검지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 손 뒤로 라틴어 성서의 한 구절이 적혀 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한 3:30) 바르트는 그리스도를 힘써 가리키는 세례 요한의 긴 손가락에서 신학이 나아가야 할 길과 목적을 보았다. 바르트는 이 그림을 평생 사랑했고, 책상 정면에 이 그림을 걸어 두었다. 그리스도교 성현들의 글과 씨름하다가 고개를 들면 늘 이 그림이 바르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르트의 제자인 갓세이D. Godsey는 이 그림을 이해한다면 바르트 신학의 심장을 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뤼네발트의 세례자의 가리키는 손을 따라가며 바라볼 모험을 감행할 것인가? 우리는 그 손이 어디를 가리키는지를 안다. 바로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그분이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란 점을 즉각 덧붙여야 한다. 저 손이 말한다. 바로 이분이다!”

: 3:10 pm: bluemosesErudition

“Because your steadfast love is better than life, my lips will praise you. So I will bless you as long as I live; in your name I will lift up my hands.”

* 시편 63편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가서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라고 고백합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상기하면서 그것이 현재 위협받고 있는 자신의 생명보다 나은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으므로”는 “값어치 있으므로”라는 뜻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존재 이유이며, 그 인자하심으로 지금도 모든 생명이 지탱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 2:58 pm: bluemosesErudition

“My little children, for whom I am again in the anguish of childbirth until Christ is formed in you.”(Paul to the Galatians)

: 2:54 pm: bluemosesErudition

Karl Barth, 1886 ~ 1968 / Dietrich Bonhoeffer, 1906~1945

: 2:46 pm: bluemosesErudition

바나바. 격려의 아들

: 2:43 pm: bluemosesErudition

목장의 역할은 우선 영적 디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