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촌 이구영(1920~2006)은 충북 제천에서 만석꾼 갑부이자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벽초 홍명희, 위당 정인보 선생의 제자였으며, 일제 당시인 1943년 독서회 사건으로 1년간 옥고를 치루었다. 이구영은 1950년 월북하여 북한에서 김일성에게 실학사상을 강의하다, 1958년 9월 부산에서 남파간첩으로 체포되었는데, 그를 체포한 경찰은 일제시대에 그를 고문했던 형사였다. 이후 22년간 수감생활을 하면서, 신영복, 심지연 등에게 한학과 세예를 가르쳤다. 1980년 출소해 경기 안양시에 이문학회를 창립하여 후진에게 한학을 가르쳤고, 호서의병사적과 의병운동사적을 출간하였다. 2006년 10월 20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이 글을 쓰면서 그 동안 노촌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였음을 뉘우치게 된다. 그러나 조금도 적조한 느낌을 갖지 않고 있다. 문득 문득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국어사전을 찾을 때면 일부러라도 290쪽을 펼쳐 본다. 국어사전 290쪽은 노촌 선생님께서 바늘을 숨겨 놓는 책갈피이다. 바늘을 항상 노촌 선생님께 빌려쓰면서도 무심하다가 언젠가 왜 하필 290쪽에다 숨겨 두시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290’이 바로 ‘이구영’이라고 답변하셨다. 엄혹한 옥방에서 바늘 하나를 간수하시면서도 잃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여유이면서 유연함이었다. 지금도 물론 나의 가까이에 국어사전이 있고 자주 사전을 찾고 있다. 찾을 때면 290쪽을 열어 보고 그 시절의 노촌 선생님을 만나 뵙고 있다.”
지리산 끝자락을 산보하며, 동명이인의 후배와 이름을 두고 담소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