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April 28th, 2011

April 28, 2011: 9:52 pm: bluemosesErudition

“삶에 생긴 상처의 아물어 감을 뜻하는 生의 痂 … 삶의 새 살인 ‘상처 딱지 痂’ … 배움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갖가지 상처가 아물고, 또 아물어 가고 있다는 것을 조용히 알려주는 생명의 속삭임이다.”(한준상, 2009: 23)

* 배움이란 생의 상처가 아물어 성숙해지는 여정이며, 고단한 순례 뒤에 이르는 마음의 평정이 그것의 딱지이다.

: 8:53 pm: bluemosesErudition

“오다카는 단명했다. 1950년대 초 무렵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치과의사에게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쇼크로 사망했다. 그 일이 신문에 보도되어 나 자신도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 생각난다. 이 무렵 오다카는 <국가구조론>(1936)과 <실정법질서론>(1942)을 썼던 경성제국대학에서 동경대학으로 옮겨와 있었다. 오다카의 죽음으로 동경대는 한 순간에 정치학과에서 미래의 이론적 지주로 기대되고 있었던 인재를 잃어 버렸다. 동경대는 경제학에서도 정치학에서도 전통적으로 이론가가 자라나기 어려운 곳이었다. 정치학은 오다카를 잃고 나서 마루야마 마사오가 주도하는 일본정치사상사의 시대로 옮겨갔다. 경제학부를 보면 전전에는 난바 하루오의 황국사관적 경제학, 전후에는 오쓰카 히사오의 베버 사학이 압도하고 있다. 물론 경제학부에는 그 동안 우노 고조의 우노이론과 네기시 다카시, 우자와 히로부미의 수리경제학이 있었지만 법학부 [소속의 정치학과]는 오다카를 잃어 버려 빈터가 되어 버렸다고 말할 수 있다.”

: 8:31 pm: bluemosesErudition

1. “1929년 10월 5일자 동아일보에는 탈옥을 권하는 크리톤에게 소크라테스가 ‘나의 양심이 육체보다 귀하다’란 이유로 탈옥을 거부하는 장면을 전하고 있다. 해석의 여지는 있으나, ‘악법도 법이다’란 말로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또한 1930년 3월 6일자 매일신보 어린이 코너에 「희랍의 성인 쏘크라데스」라는 제목의 기사로 소크라테스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크리톤』의 한 장면을 소개하면서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의 권유대로 탈옥을 하지 않으면서 내 세우는 이유가 ‘악법도 법이다’란 통념과는 다르다. 그는 ‘내게는 다만 정의가 있을 뿐 죽음을 두려워하랴. 인생의 참된 집이 영혼에 있음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보아서 이 당시에는 ‘악법도 법이다’란 통념이 적어도 아주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  그런데 1973년 9월 25일자 조선일보에는 최명관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인사가 그런 말을 했고, 대학생들도 종종 그런 답을 적는다고 하면서 ‘악법도 법이다’란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적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뒤집어 보면 이미 그때는 그런 상식이 공공연하게 유포되어 있었다는 소리인데, 그럼 그 시점과 출처는 어디일까?”

2. “현재 확인된 바로는 국내나 일본에서 ‘악법도 법이다’란 말과 소크라테스를 연관 지은 가장 오래전 학자는 오다카 도모오(尾高朝雄)이다. 『실정법질서론』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이 학자는 일본의 법철학자로서 1930년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승진하여 해방 전까지 재직하다, 해방 후에는 일본 동경대학교 법학부 교수로 재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다카는 1937년 출판한 『法哲學』에서 실정법주의와 소크라테스를 연결하고 있다. 먼저 유택성에 따르면 오다카는 이 책에서 ‘惡法도 法이기 때문에 一應 지켜야 하며 惡法이라는 것을 國民에게 널리 弘報하여 正當한 立法節次에 따라서 그 惡法을 改正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같은 책에서 오다카는 ‘이와 동시에 그는 국가의 실정법에 복종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따라야 할 시민의 의무로서 설하고 선량한 시민이 나쁜 법에 복종하는 것은 나쁜 시민이 좋은 법을 배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道를 위해 탈주를 권하는 친구나 제자의 간원을 물리치고 무실무당하게 그에게 가해진 사형의 판결을 중하게 여겨서 아테네의 감옥에서 순순히 독배를 받았다. 즉 소크라테스는 실정하는 법을 초월한 정의의 객관성에 대한 신념과 실정한 법에 내재한 질서의 확실성의 존중을 그 비극적인 궁행실천 안에서 종합해서 보여준 것이다’라고 해서 실정법주의와 소크라테스를 확실하게 연결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바로 이 오다카 도모오가 ‘악법도 법이다’란 경구도 최초로 국내에 소개하고, 이 경구를 소크라테스와 관련짓기도 처음 한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_ 김주일 “성균관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고 성균관대학교와 추계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 및 번역서로는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2006)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단편 선집》(공역, 2005), 《알키비아데스》(공역, 2007), 《에우튀데모스》(역, 2008) 등이 있으며, <에우튀데모스의 쟁론술과 대화술의 대비가 갖는 몇 가지 함의들〉등 몇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 7:59 pm: bluemosesErudition

“내 자신의 경험으로도 가장 열심히 공부한 것은 고교 2학년(18세) 무렵이었다. 당시 나의 하숙에는 동급생인 데라다 준조가 있었다. … 내 일생에서 데라다만큼 나를 바짝 조였던 사람은 없었다. 그야말로 나의 개인교사였다. 학교에서 하숙까지는 산길을 40분 정도 걸어 다녔다. 우리들은 자주 같이 돌아왔지만 일주일에 몇 번은 ‘오늘은 하숙에 도착할 때까지 독일어 이외에는 사용하지 말자’고 그는 나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나는 그런 연극 같은 짓을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내 독일어는 회화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발음을 수정당하고 틀린 문법을 계속해서 지적당했다. 그러나 이는 개인 교습의 시작에 불과했다. … ‘우리 두 사람은 같은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논의하고 있는 책 - 高田保馬, <社会と国家>, 岩波書店, 1922 / 尾高朝雄, <国家構造論>, 岩波書店, 1936 - 을 읽고 있으므로 이야기해 보자.’ 데라다가 이렇게 말을 꺼내 우리는 저녁 식사 후에 두 사람 방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몇 번이고 오랜 시간 이야기 했다. … 연전연패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그와의 경쟁이 없었다면 현재의 나는 절대로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 나는 다카다 야스마, 아오야마 히데오, 야스이 다쿠마와 같은 대학시절 선생의 지도를 받아 성장한 것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이러한 선생들 앞에서 데라다에게서 배운 대로 했을 뿐이었다. … 이야기가 완전히 벗어나고 말았지만 내가 여기에서 주장하는 바는 교육의 열매를 가장 크게 거둘 수 있는 시기는 10대 후반이며, 이는 교실에서 하는 정규교육보다는 친구와의 상호 자극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 같은 나이 또래에 이러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은 대단히 필요한 일이다.”(森嶋通夫, 1999: 137~145)

: 6:59 pm: bluemosesErudition

“1~2학년 때부터 가고자 하는 대학의 자기소개서 양식에 맞춰 미리 써보세요. 20여년 인생을 정리하는 일입니다. … 자신이 해왔던 일들을 성찰해 동기-과정-결과로 ‘나’를 드러내세요.” “학교에서 이뤄지는 활동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세요. 불안하면 교외 활동에 집착하게 됩니다.”(권성철, 포스텍 입학사정관)

* A cover letter… is a letter of introduction attached to, or accompanying another document such as a résumé or curriculum vitae.

: 12:14 pm: bluemosesErudition

“이번 재보선 선거구는 ▲경기 성남분당을, 경남 김해을, 전남 순천 등 국회의원 3곳 ▲강원지사 ▲서울 중구, 울산 중구ㆍ동구, 강원 양양, 충남 태안, 전남 화순 등 기초단체장 6곳 ▲광역의원 5곳 ▲기초의원 23곳 등 38개다.”

* 강원(민주 최문순), 분당(민주 손학규), 순천(민노 김선동), 김해(한나라 김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