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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은 과학을 합리적인 규범이 지배하는 과학자 사회의 산물로 파악했다. 머튼은 과학활동은 일련의 가치규범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보았는데, 이를 보편주의(universalism), 공동체의식(communality), 조직화된 회의주의(organised scepticism), 불편부당성(disinterestedness)이라고 보았다.”
“뭘 좀 제대로 하려면 최소한 필사라도 한바닥해서 검사를 받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부페가서 음식먹듯이 … 이것저것 찔끔찔끔 공부하는 것도 취향이라 우길테니 내비둬야지.”
“읽을 거리의 범위를 가늠하는 것이 첫째라면, 읽는 것이 둘째, 그걸 자기 눈으로 하나하나 요약정리하는 것이 셋째,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 전체에 지도를 그리고 비판적 평가를 가미하는 것이 넷째, 마지막으로 거인의 어깨 위에서 벽돌 한장 쌓는 것이 다섯째가 됩니다. 물론 이 순서는 선형적이지 않지요. 그러나 일진 학자가 되려면 마지막 단계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쌓은 벽돌을 또 허물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까놓고 말씀드리자면 웹상에서 속칭 한가닥 하는 분들은 학위 소유와 무관하게 단계 1/2정도?”(okminu)
“하르트만의 이른바 ‘비판적 실재론’은 이 책에서도 기조를 이룬다. 하르트만은, 논리적 관념론을 제시하고 칸트의 철학적 관점을 극복함으로써, 그 유산을 전승하려 했던 나트로프(Paul Natrop), 코헨(Hermann Kohen) 등에게서 사사하면서 본격적인 철학적 탐구를 시작하였지만, 그는 일찍이 이들 이른바 신칸트학파의 철학적 노선을 떠남으로써 그의 독자적인 철학, 즉 비판적 실재론을 구축해 나아간다. 칸트가 과제로 남겨 놓은 ‘물 자체’ 개념을 사유의 논리적 연관 속으로 해소시키려 했던 논리적 관념론은 기본적으로 사유의 형식과 존재의 방식을 동일시하는 형이상학적 사변을 기초로 하는 잘못된 이론이라는 것이 그의 비판이다. 칸트가 불가피하게 설정한 ‘물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것을 원리적으로 인식 불가능한 영역으로서 현상의 배후에 남겨 놓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 가능한 영역에서 ‘현상하는 실재’로 보자는 것이 하르트만의 새로운 비판적 시각이다.”(손동현, 1996)
* 바스카 이전에 하르트만을 숙고해야 한다.
1. “이글턴은 1943년 랭카셔(Lancashire)의 샐포드(Salford) - 공업도시 맨체스터 근교에 위치 - 에서, 매우 어렵게 살던 아일랜드 이민 출신의 가톨릭 노동계급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학비가 없어 중등교육을 포기했고, 말을 조리 있게 못해 자격지심으로 인해 늘상 침묵 속에 있었다고 하고, 문맹인 외할아버지는 가끔씩 이글턴에게 이해도 못하는 주식시장 동향을 읽어 달라고 하면서 마치 증권중개인인 듯한 기분을 내곤 했다고 합니다. … 천식으로 고생하던 병약한 이글턴은 어려서부터 고전을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어머니가 헌 책방에서 할부로 사준 디킨즈(Charles Dickens) 전집을 읽으면서 성장하였고, 그 결과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으나 아들이 자신의 임종을 지켜보는 것보다는 입학시험 치러 가길 원했고, 이글턴은 결국 시험 도중에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지요.”
2. “문법/규칙이란 창의적인 것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규칙 준수적 행위라는 것은 규칙의 창의적 적용을 의미하는 것이고, 따라서 문화에는 ‘내재적 비판(immanent critique)’의 가능성이 있으며, 변하지 않는 내부/중심과 저항으로서의 외부/주변성(marginality)을 대립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분법적 구도는 잘못된 것”이다. … “이글턴의 입장에서 인간의 본성이란 앞의 문법/규칙의 예에서도 보았듯이, 완전히 닫혀있지도 않고 열려있지도 않은, 육체적 한계 속에서도 자신을 뛰어넘으려는 내적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자신을 넘어서려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3. “세미나에서 다뤄진 내용들은 어쩌면 문학이라기 보다는 윤리학, 정치학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주된 내용은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문제의식 하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의존해 현대의 생활양식을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행복이란 단순히 심리적인 만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다. 윤리를 감정으로 환원하는 것은 18세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며, 이것이 바로 문학과 소설이 그 때부터 중요해진 이유이다. 한편 19세기로부터 유래하는 ‘금지’로서의 도덕은 의무를 중시하는 칸트로부터 유래하는 데, 이것은 도덕을 행복과 유리시키는 관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행복한 삶이란 미덕(virtue)의 삶을 사는 것이며, 미덕이란 자신의 본성에 부합되게 잘 행동하는 것에 의해 얻어진다. 예를 들어 축구를 잘하고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미덕이고 도덕이다. 하지만 그것을 다른 것(예: 돈)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 또는 결과(승패)로부터 그것의 가치를 따지는 것은 자본주의적인 삶의 양식이다. 좋은 삶을 살려면 좋은 사회가 필요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려면 윤리적인 정치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4. ”이글턴의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행복한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항상 실정적(positive)인 문제만 붙잡고 있다가 규범적(normative)인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저 개인적으로는 무척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글턴이 말했듯이, 점점 더 결과에 근거해 모든 것을 판단하고, 마치 미국의 부시 행정부처럼, 노골적으로 자신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것을 점점 더 두려워하지 않는 이 ‘탈윤리적 시대(post-ethical epoch)’에.”
* “positive와 normative의 갈등. 그거 정말 문제임. positive의 세 가지 뜻이 떠오름. 긍정적, 실증적, 실정적. 이 시대는 … 탈윤리가 실정성으로까지 고착되는 시대가 아닐까 함.”(gaudium)
* “탈윤리가 실정성으로까지 고착되는 시대를 실정성이 윤리를 대체한 시대로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는 ‘Sein이 Sollen을 대체하는 시대’라고 할까요. 비록 결과(목적합리성)를 생각하지 않고 가치(가치합리성)만 생각하느냐는 ‘책임의 윤리’와 ‘신념의 윤리’ 문제는 언제나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를테면 이라크 파병을 반대할 때 ‘파병은 비윤리적이다’라는 주장이 그 논거로서 매우 불충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파병이 결국 국익에 도움이 안될 것이다’라는 어정쩡한 논거를 하나 더 추가할 수 밖에 없는 시대인 것은 분명한 듯 싶습니다. 물론 이건 사람들이 윤리를 생각하다가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뤄야만 하는 환경에서 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탈윤리가 실정성으로까지 고착’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pepe)
“헤겔을 제외한 이전의 어떤 사상가도 인정 원칙 자체를 윤리학의 주춧돌로 삼지는 않았다. 즉, 인정 개념은 항상 더 근본적인 다른 개념들에 가려서 단지 간접적인 의미만을 지녔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헤겔은 고독한 선구자였다.” “헤겔이 일생 동안 몰두한 정치 철학적 과제는 개인의 자주성이라는 칸트의 이념에서 단순한 당위적 요청의 성격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 헤겔은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근대 자유 이론이 가지고 있는 도덕성과 고대 정치관에 함의되어 있는 인륜성 개념을 연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헤겔이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도구를 마련하는 데 몰두했던 시기는 예나에서 철학 강사로 일하던 시절에 국한되어 있다.”(Honneth, 1992[1996]: 5, 31)
* 조극훈(2002). 도덕성과 인륜성: 칸트 실천철학에 대한 헤겔의 비판. 칸트연구, 9. pp.18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