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마르크스의 사상은 독일의 관념론 철학, 잉글랜드의 정치경제학, 프랑스의 사회주의라는 원류를 가진다고 알려져 있으나 우리는 그가 이 세 가지를 무비판적으로 혼합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물론 [헤겔 국법론 비판]의 초고를 작성하던 시기에 그는 자신에 선행하는 사상들을 공부하여 정리하고 있었으므로 그것들로부터 자신의 독자적 사상 체계는 아직 세우지는 못한, 즉 모든 것이 “함께 놓여 있기는 하나 아직 통일적으로 파악되지 못한”(David McLellan, Marx before Marxism, 1970 참조) 상태에 있었다. 특히 헤겔에 관한 한, 그는 포이어바흐의 ‘비판’이라는 관점에서 헤겔을 파악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헤겔을 헤겔에 즉해서 읽고 내재적으로 넘어서는 단계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이 초고를 작성하면서 헤겔에서 정점에 이른 독일 관념론 철학을 수용, 비판, 극복하는 이른바 ‘변증법적 지양’의 도정에 들어선다. 1843년의 «헤겔 법철학 비판», «유대인 문제»에서 시작하여, 1844년의 «신성가족», «경제학-철학 수고», 1845년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를 거쳐 1846년의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대체로 마무리된 뒤, 1847년의 «철학의 빈곤», 그리고 1848년의 «공산당 선언»에서 이러한 도정은 매듭지어지거니와, 우리는 이 5년여를 ‘청년 마르크스의 이론적-실천적 도야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세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려 한다. 이러한 의도는 헤겔도 마르크스도 여타의 철학자들도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파악의 방식이다. 헤겔은 현전하는 존재자들 전체를 본질의 측면에서 파악하고 그러한 개념적 파악을 이성적 필연성으로 해소시켜 일종의 거대한 ‘존재의 대연쇄’를 형성해 낸다. 이 연쇄에서 개개의 존재자는 이성적 체계에 불가결한 계기이지만, 체계의 측면에서 보면 그것들은 연역의 하위 단위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헤겔의 범논리주의의 귀결인 이러한 총체성은 그의 학적 탐구의 전 영역에 관철되고 있어서, 이를테면 «법철학»과 같은 “저작의 전체와 그 부분의 구성도 논리적 정신에 의거”(«법철학», 서문)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마르크스가 볼 때, 체계 구축의 시도가 운동을 폐기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헤겔이 개념적 파악을 위해 정치적 현실을 논리화해 버렸다고 비판한다. 헤겔에서는 “사유를 정치적 규정들 속에서 구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현전하는 정치적 규정들을 추상적 사유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이다. 사태의 논리가 아니라 논리의 사태가 철학의 계기이다. 논리가 국가를 증명하는 데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가 논리를 증명하는 데 봉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르크스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헤겔의 «법철학»이 과연 이러한 비판을 받을 만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헤겔의 «법철학»은, 그의 전 철학체계의 일부분인 «정신철학»의 하위 단위인 “객관적 정신론”에 속한다. “정신론”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서 헤겔이 전개하는 개념과 규정들은 구체적인 맥락을 추상화한 것이다. 이를테면 «법철학»의 출발점을 이루는 “소유”는 역사적 현실적 맥락에서의 재산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근대사회의 인격들과의 연관 속에서 파악된 지의 형태, 정신화한 것, 사회의 인격적 법적 관계에서의 현상형태를 가리키는 것이다(우리는 여기서 마르크스의 «자본»이 ‘상품’이라는 현상형태에서 출발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헤겔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 그리고 그에 대한 반비판은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렇게 복잡다기한 이론적 논의가 있다는 점만을 유념해두고 우리는 마르크스의 이러한 비판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마르크스가 1845년에 작성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는 그가 헤겔을 비판하는 단초를 어떻게 잡았는지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포이어바흐에 따르면 인간은 감성적 존재이며, 자신의 현존재의 기초를 자연에 두고 있다. 자연적-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라는 이러한 개념이 인간에 관한 새로운 태도이기는 하나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는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며 세계를 만들어가는 ‘실천하는 인간’을 드러내고 있지는 못한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의 맹아를 발견한다. 마르크스는 존재자의 세계의 본질을 물질적 생산의 구조로 파악한 점에서 헤겔과 구별되며, 헤겔의 «법철학»에 대한 비판의 기조도 바로 여기에 두고 있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헤겔의 «법철학»은 근대 국가에 대한 이론적 정당화였고, 그에 따라 «법철학»(정확하게는 «법철학»의 ‘국가’ 부분의 ‘국내법’, 즉 국가 체제와 기구)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정당화에 대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정당화의 외피를 입은 근대국가의 근저에 대한 비판이다. 마르크스의 비판의 요지는 대체로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는데, 우선 헤겔의 국가 개념은 근대 입헌군주정의 단순한 표상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입헌군주정을 보편타당한 체제로 정당화하기 위해 경험적 실존을 과장하여 정당화했다는 것, 그런 까닭에 헤겔의 법철학, 더 나아가 철학을 극복하려면 과장된 정당화를 비판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그러한 정당화를 만들어 낸 현실 자체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비판이 가장 잘 적용되는 사례는 헤겔 «법철학»의 가장 뚜렷한 성과로 지적되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구별이다. 주지하듯이 헤겔은 근대의 자본주의적 행위가 전개되는 시민사회의 영역과, 시민사회에서의 갈등이 폐기되면서 구성원들이 더 높은 입장으로 올라서는 보편적 국가를 구별했으며, 이를 ‘시민사회의 내재적 초출(內在的 超出)로서의 국가’로 개념화하였다. 그런데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러한 개념화를 비판하는 것도 핵심 문제이기는 하나 더 중요한 것은, 국가가 시민사회의 진정한 폐기나 고양이 아니라 그저 보편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을 뿐인 여러 특수한 이익의 겉모습에 지나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고, 이처럼 가상의 내재적 초출을 폭로함으로써, 가상적 폐기와 고양을 진정으로 폐기함으로써, 그리하여 시민사회를 시민사회 안에서 비판하여 폐기하고 더 이상 명목상의 가상으로 들어올리지 않음으로써, 근대인이 직면한 난관을 근본적으로 해소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와 국가의 구별 및 폐기와 고양’에 얽힌 쟁점이 첨예하게 나타나는 부분은 ‘신분’이다. 헤겔에서 신분은 보편적 국가 의식과 특수한 사회 계층의 의식을 동시에 체현하는, 즉 시민사회의 특수성과 국가의 보편성을 종합한 것이었다. 그러나 재산이 정치적 지위를 획득하고, 그에 따라 정치적 지위가 사회적 지위를 그대로 반영할 수 있었던 중세적 삶의 유제(遺制)이기도 한 신분은, 사회구성원을 대표하기는 하나 그 구성원들의 이익이 아닌 대의원 자신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이었고, 이로써 물질적 생활의 조건과 정치적 영역은 모호한 관계에 놓이게 되어 그러한 제도는 “물질적 생활의 스콜라주의”일 뿐이었다. 시민사회의 지위와 국가에서 가지는 정치적 지위의 불일치가 ‘시민사회와 국가의 통일’에서 심각한 장애로 등장하는 또다른 사례는, 헤겔이 보편적 신분이라 말한 관료 집단이다. 헤겔에 따르면 관료는 시민사회의 한 계급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의 보편적 관심을 자신의 과제로 가지”(«법철학», §205)는 보편적 신분이어서 특수와 보편, 시민사회와 국가를 매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보기에 관료는 보편적 신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자신들의 특수한 이익을 추구할 뿐이었다.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의 핵심적인 매개들을 겨냥함으로써 그 근본구조를 무너뜨리려 한다. 정치적 제도의 힘으로 시민사회를 규율 — 최소한 조절 — 할 수 있으리라는, 시민사회의 특수한 이익을 국가의 보편적 목적으로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는 헤겔의 희망과는 달리, 근대의 국가는 전적으로 시민사회에 의해 규정되는 까닭에 오히려 국가라는 허구의 가상을 폐기해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 시민사회의 물질적 삶의 영역의 이해관계를 전면적으로 나타내는 제도를 수립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진정한 통일의 성취를 민주주의로 본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개인이 더 이상 사회와 대립되지 않는 상태, 공적인 자아와 사적인 자아의 이분법을 극복한 상태, 개별 인간과 정치 구조 사이의 소외가 없는 상태이거니와,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가 민주주의, 계급 및 국가의 철폐에 관한 견해를 형성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민주주의에 이르는 방도는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선거제도를 쟁점으로 내세운다. 그에 따르면 선거에서는 “능동적 및 수동적 선거권의 범위와 최대한의 보편화가 중요한 것”인데, “추상적인 정치적 국가 내부에 있어서 선거제도의 개혁은… 정치적 국가에 대한 해체의 요구이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시민사회에 대한 해체의 요구이기도 하다.” 정치적 국가가 해체되고 그에 따라 시민사회가 해체됨으로써 공동체적 본질을 가진 존재, 즉 유적 존재(Gemeinwesen 또는 Kommune)로서의 인간이 회복된다. 우리는 여기서 제시된 마르크스의 대안이 곧바로 이어지는, 유대인의 정치적 해방에 대한 논의를 사유재산의 폐지라는 보편적 인간 해방에 대한 논의로 전환시키는 «유대인 문제»에서는 물론, «공산당 선언»에 서술된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이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연합체”로 전개되어 갈 것임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엥겔스는 1869년에 쓴 [칼 마르크스]라는 논설에서 “마르크스는 헤겔의 법철학을 다루면서 헤겔이 ‘건축물의 절정’이라고 묘사한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그렇게 의붓자식 취급하던 ‘시민사회’가 인류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대한 이해의 열쇠를 찾게 되는 영역이라는 통찰에 이르렀다”고 마르크스의 작업을 정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엥겔스의 이러한 정리에 대하여, 바로 이러한 “통찰”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마르크스가 정교한 국가 이론을 전개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개인의 자유로운 연합’이라는, 일견 속류자유주의적인 규정에 그쳤음을 지적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의 초고들이 출간된 경위는 MEW 편집자 주에 간략하게나마 소개되어 있고 우리의 관심은 문헌학적인 것을 비켜나 있으므로 상세한 내용을 덧붙이지 않는다. [헤겔 국법론 비판]은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 보다 먼저 작성된 것이므로 전집에서도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으나 여기에서는 ‘서문’의 의의를 고려하여 앞에 두었다. «헤겔 법철학 비판»부터 «공산당 선언»에 이르는, 청년 마르크스의 저작을 번역하는 작업이 이로써 중간쯤에 이르렀다. 그간의 작업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결의를 새롭게 한다.
_ 2011년 6월, 강유원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