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8th, 2013

January 8, 2013: 3:03 pm: bluemosesErudition

대교협 입학전형지원실장 변경 : 오성근(한양대 화학공학과) >> 최창완(가톨릭대 일어일본문화전공)

: 9:16 am: bluemosesErudition

도심형 재속재가수도원 신비와저항(박총)

1. 우리는 수도원입니다.

낯설지만 새로운 게 아닙니다. 가톨릭의 전유물도 아닙니다. 종교개혁의 후손인 개신교인들은 모두가 수도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많은 설명 대신 막스 베버(Max Weber)의 말을 빌려봅니다. “루터와 칼빈은 수도원을 없애고, 대신 온 세상을 수도원으로 만들었다(Luther and Calvin did away the monasteries and in turn, made the whole world into a monastery).” 문제는 우리가 그 수도원의 수도사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거지요.

2. 이것은 재속재가수도원입니다.

우리는 탈속수도의 전통을 깊이 존중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 길로 부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세속에 거하며(在俗) 가정을 두고(在家) 수도하도록 부름 받은 이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밥벌이에 치이고 인간관계에서 상처받는 것 자체가 이미 수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유의 수도를 좀 더 잘하도록 도울 수 있는 재속재가수도원이 있으면 괜찮겠다고 생각합니다.

3. 이름은  ‘신비와저항’입니다.

많은 분들이 한국교회의 쇠락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신앙을 교회라는 온실에서만 키워내서 일상과 현실 속에서는 피지 못하는 꽃이 되게 한 것이라 봅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와 약자의 편에 서서 정의를 위해 싸우는 ‘저항’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영성의 측면에서 한국교회의 두 가지 금기어 ‘신비’와 ‘저항’의 봉인을 풀지 않는 한 주님이 주시기로 한 풍성한 생명(요 10:10)을 누리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재속재가수도원 신비와저항은 이 두 송이 꽃을 피우는 들녘이 되겠습니다.

4. 센터나 연구소가 아니라 왜 수도원인가?

신비와저항 수도회는 영성 공부와 수련, 연구와 집필, 예배와 성찬, 일상과 투쟁을 두루 추구합니다. 연구소, 영성센터, NGO의 성격을 조금씩 갖고 있는데 이를 아우를 말로 수도원을 택한 것은 이들 활동 역시 수도 활동의 일부로 보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축제와저항 수도회는 ‘통전적 앎, 총체적 삶, 전인적 영성’을 빚어가겠습니다. 반복합니다. 우리는 주님 품에 안길 때까지 이 땅에서 수도의 삶을 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수도는 세속과 담을 쌓는 대신 세상 속에 들어가 벌고, 쓰고, 먹고, 싸고, 사랑하고, 애 낳고, 즐기고, 아파하고, 분노하고, 저항하는 재속/재가수도입니다. 제가 2005년부터 연재했던 글의 꼭지명인 ‘분닥세인트’(변두리 성자)가 세속수도의 개념에 놓여 있었습니다. 재속재가수도원 신비와저항은 주중수도원입니다. 지역교회에서 미처 일구지 못한 밭을 함께 일구어가는 동역자로서 존재하고자 합니다. 지역교회를 섬기고 더 풍성한 목회적 지형도를 갖추고자 합니다.

5. 신비와저항은 팔색조의 공동체입니다.

1색. 만민제사장제를 격하게 믿는 평신도 공동체입니다.
2색. 삶을 누리고 즐기고 희열하는 향유 공동체입니다.
3색. 적은 소유 속에 큰 풍유함을 누리는 청빈 공동체입니다.
4색. 뭇 생명과 벗하며 살아가는 생태 공동체입니다.
5색. 더불어 즐거이 공부하는 학문 공동체입니다.
6색. 이 땅의 불의에 맞서는 저항 공동체입니다.
7색. 가슴은 물론 물질까지 공유하는 생활 공동체입니다.
8색. 획일성을 싫어하고 다양성을 좋아라 하는 발랄 공동체입니다.

6. 우리의 감수성은 우리의 육성(六聲)이자 육성(肉聲)입니다.

향유의 감수성: 헌신과 충성보다 누림과 즐김이 먼저라고 믿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향유와 축제이며 이 땅에서도 향유와 축제를 통해 퍼져간다고 믿습니다. 또한 돈 없으면 즐기지도 말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향유와 축제는 강력한 저항의 몸짓이 됨을 믿습니다.

일상의 감수성: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 정지용의 시 ‘향수’의 한 구절을 빌자면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일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하는 일상영성과 생활신학을 추구합니다.

배움의 감수성: 앎과 씀의 꼬뮨. 복음주의 전통을 래디컬하게 재해석하는 것과 더불어 기독교 2천 년의 풍성한 유산을 배우고 익히려 애씁니다. 영성, 인문학을 연구하고 글을 쓰는 학문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성과와 역량이 쌓이면 여러 매체에 기고를 하고, 출판사와 함께 기획해서 단행본을 낼 생각입니다.

생태적 감수성: 창조영성의 재발견을 통해 구속영성과의 어울림을 되찾고, 일상 속의 신비와 아름다움, 그리고 초록과 보혈이 보색대비를 이루는 생태적 영성을 추구한다. 주어진 여건 속에 도시 농업 및 변두리로의 이주, 나아가 귀촌, 귀농을 적극 지지 및 지향합니다.

저항의 감수성: 억압 받는 이들과 연대하지 않는 영성은 중산층의 자기 만족과 자위행위일 뿐입니다. 우리의 이름대로 ‘신비’와 ‘저항’은 같이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름의 감수성: 우리는 하나님은 다양성의 하나님이시고 그 속에서 그분의 능력과, 신성, 부유함이 드러난다고 믿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는 획일성이 불편합니다. 강한 규칙과 결속력을 지닌 수도원과 공동체를 존중합니다만 저희 같이 헐렁한 공동체가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7. 준비 모임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향후 변화가 있겠지만 우선 이렇게 모일까 합니다.

시간: 12월부터 주중 하루, 저녁 3시간 정도
장소: 혜화동 호모북커스 또는 종로나 혜화동 쪽의 공간
인원: 이 시간이 가능한 7~8명 정도

내용:

- 전례 공동체 (30분) : 침묵, 찬미, 성찬 등

- 나눔 공동체 (30분) : 삶의 나눔, 중보 기도 등

- 수련 공동체 (30분) : 예수기도, 관상기도 등

- 배움 공동체 (1시간) : 영성 서적 강독 등

- 저항 공동체 (기회마다) : 투쟁 현장 지지 방문 등

* 향후 각자의 관심사 및 재기(才器)에 따라 연구모임, 저항모임, 수련모임, 향유모임, 나눔모임 등 분과모임으로 가지가 뻗어나가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실은 적극 권장.

8. 모르는 분들을 위해 저를 정식으로 소개합니다.

수도원장 박총은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다. 사랑스러운 안해 및 시끄러운 네 아이와 함께 수유리 삼각산 자락에 셋집을 얻어, 소비문화에 길들여지지 않은 삶을 다복하게 살고 있다. 아이들을 안방 침대에서 낳고, 손수 산후조리를 하고, 최저생계비로 유기농 식단을 꾸리고, 불필요한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등 재속재가수도를 실천하고 있다. 영성은 취향과 패션이라고 우기면서 40대에 레게 머리를 하고 보헤미안 옷차림을 즐겨 하며 핸드폰을 쓰지 않고 있다. 문학소년 시절을 거쳐 학부와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동지들과 구로동 지하실에서 교회를 개척, 한부모 가정 청소년들과 공동체로 살았다. 그 뒤 캐나다에서 신학 공부와 교회 사역을 하고 한국에 돌아와 ‘복음과상황’ 편집장으로 일하다 우울증으로 접고, 지금은 주부와 저술가로 지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밀월일기』(복 있는 사람)를 썼고 『욕쟁이 예수』(살림)을 낸 뒤 대중신학자로 자리매김했다. 공저로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한울출판사),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2』(행복을 담는 집), 『내게 찾아온 은총』(한국기독교연구소)을 썼고, 현재 『내 삶을 바꾼 한 구절』(가제, 포이에마)을 비롯한 몇 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 작년 『목회와신학』에서 선정한 명강사 237인에 꼽힌 덕인지 밤무대 활동(설교 및 특강)도 열심히 뛰고 있다.

9. 끝으로 초청의 말

이렇게 미사여구를 동원해 포장해놓으니 사뭇 거창하네요. 솔직히 말하면, 혼자 공부하려니 어려워서 같이 공부하자는 겁니다. 혼자 영성 수련을 하려니 오래 못 할 것 같아 같이 하면 좋겠다는 겁니다. 혼자 떡과 포도주를 나누려니 외로워서 같이 하면 좋겠다는 겁니다. 혼자 투쟁의 현장에 나가려니 뻘쭘해서 함께 대오를 이루면 좋겠다는 겁니다. 이 모든 걸 혼자 하기엔 아까워서 같이 하자는 겁니다. 제가 좀 특이하긴 하지만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가진 밑천도 머잖아 바닥이 날 겁니다. 큰 기대 마시고 가볍게 놀러온다는 생각으로 오세요. 저는 ‘신비와저항’ 수도회를 통해 거창한 일을 하려 들지도 않고, 다른 분들을 섬기기 위해 애써 제가 아닌 모습으로 살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건 옳지도 않고 오래 갈 수도 없으니까요. 우리는 있는 모습 그대로 즐겁게 모이고, 그런 우리가 한국 교회와 사회에 보탬이 된다면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일상, 누림, 성찬, 신비, 저항… 저는 이런 말을 떠올리면 가슴이 뜁니다. 저 말고도 가슴이 뛰는 분들이 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 설렘이 바로 제가 보내는 초대장입니다. 꽉 막힌 한국교회에 소박한 오솔길 하나 같이 내 봅시다.

: 2:59 am: bluemosesErudition

“타고난 천성이 밝기만 했던 제가 믿을 수 없게도 마흔이 넘어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게 됐습니다. … 일년 내내 치료 상담을 받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자기 용납’입니다. … 자기 수용성이 높고 이 정도면 꽤 건강한 자아상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단 한 번도 저의 부정적인 면을 용납하거나 사랑한 적이 없었습니다.”(박총)

“유아 놀이방 시절부터 우리는 비은혜의 세계에서 성공하는 법을 배운다.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는다, 수고 없이는 소득도 없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권리를 주장하라, 돈 낸 만큼 찾아 먹으라. 나도 이런 공식들을 잘 안다. 그런 공식들을 따라 살고 있으니까. 나도 벌기 위해 일하고 이기는 것을 좋아하고 권리를 내세운다. 누구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받아 마땅한 대로 받기를 원한다.”(필립 얀시)

* 2009년 1월과 겹치는 2013년 오늘. 아브람을 기억한다. 편애를 되새긴다. 비은혜의 세속에서 은송림을 바란다. 세면대의 고장에서 하나님의 기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