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세 연 2회 납부(6, 12월)
“2011년 11월 4일 일본의 대표적인 모바일 게임 업체인 DeNA사가 3일 TBS로부터 정식으로 요코하마를 인수한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DeNA사는 TBS가 가지고 있는 요코하마의 주식 69.23% 중 2.31%를 제외한 나머지를 65억엔에 사들임과 동시에 일본야구기구에 보증금 30억엔을 내면 정식으로 요코하마의 소유주가 된다. … 12월 1일에 열린 구단주 회의에서 4분의3 이상의 동의를 얻어 인수가 정식으로 확정되었다.”
“리더는 조직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구성원들과 그것을 공유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리더 혼자만의 목표가 아니라 조직과 조직구성원 모두를 위한 꿈이 필요합니다. 특히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동기부여가 중요하고, 리더는 구성원에게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저는 조직의 위에 서기보다 조직 안에서 조직을 이끌어 가려고 노력합니다. 팀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생각이 가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줌으로써 업무에 대한 동기부여를 합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심장과 두뇌발달(조셉 칠턴 피어스, 크리스 머코글리아노와의 대화)
거의 반세기 동안 조셉 칠턴 피어스(Joseph Chilton Pearce)는 인간 마음의 신비를 탐구해왔다.《우주 달걀 속의 균열》《마법의 아이》《진화의 끝》등 여러권의 책의 저자로서, 그가 늘 정열을 기울여온 핵심적인 관심사는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지성이 어떻게 발달되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 자신의 말로 그는 우상 파괴자이며, 오늘의 미국식 문화가 아이들의 지적, 정서적, 영성적 욕구를 기르지 못하는 데 대해서 두려움 없이 말하여왔다. 학자이자 과학자로서, 또 신비체험가이자 떠돌이 교사로서, 그는 자신의 관심사에 유관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그들의 업적을 독특하게 종합하고 그 연구결과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공통의 언어로 옮겨놓고 있다. 이것은 과학이 갈수록 전문화되어 가는 오늘날 굉장히 귀중한 공헌이다. 뿐만 아니라, 조셉 칠턴 피어스는 그가 힘들게 수집한 그의 지혜를 나누기 위해서 세계 전역을 여행한다. 우리는 중부 버지니아주에 있는 그의 집에 돌아와 있던 그를 전화로 접촉하는 데 성공했다. (크리스 머코글리아노)
현대 신경과학은 인간의 심장에 관해서 놀랄 만한 발견을 해내었습니다. 거기에 관해 비전문가의 용어로 조금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가슴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더이상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이제는 사실상 매우 실제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두세 분야의 결합된 연구의 결과, 심장이 인간의 지성(intelligence)을 관장하는 주된 센터라는 게 증명되고 있습니다. 분자생물학자들은 심장이 신체의 가장 중요한 내분비선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 반응하여, 심장은 ANF라고 하는 주요 호르몬을 생산 . 방출합니다. ANF(Atriol Neuriatic Factor) 호르몬은 우리가 ‘감정 두뇌’라고 부르는 변연계 구조의 모든 움직임에 깊이 영향을 주는 호르몬입니다. 변연계에는 기억과 학습을 관장하는 해마상(海馬狀) 융기가 포함되어 있고, 신체내 전체 호르몬 체계를 조절하는 통제센터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신경심장 과학자들은 심장세포 가운데 60% 내지 65%가 종전에 생각되어 왔듯이 근육세포가 아니라 실제로 신경세포들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들은 두뇌에 있는 신경세포들과 동일한 것들로서, ‘강글리아’라고 불리는 똑같은 연결고리를 통해서, 또 두뇌 속에서 발견되는 것과 똑같은 신경전달 물질들을 통해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 우리의 가슴에 ‘두뇌’가 있는 셈입니다. 심장의 강글리아(신경절)는 신체내의 모든 주요 장기와 전체 근육 방추체계에 연결되어 있고, 그로 인해 인간은 독특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심장의 신경세포 중 약 절반은 신체 전반으로부터 전달되어 온 정보를 해석하여 신체가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로서 기능하도록 하는 데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우리 머릿속의 감정두뇌와 크고 직접적인 신경상의 연결을 형성하여,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심장과 두뇌 간의 24시간 내내 계속되는 대화를 수행합니다.
그건 어떻게 작용합니까?
심장은 감정두뇌로부터 전해져오는 메시지에 반응합니다. 감정두뇌는 우리의 감정과 자가면역체계와 같은 역동적 상태들의 내부 환경을 감시하고, 우리의 행동을 지도하며, 우리가 개인적 정체성(正體性)을 느끼도록 하는 데 이바지합니다. 감정두뇌는 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질적으로 평가하고, 그 정보를 순간순간 심장으로 내려 보내줍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심장은 두뇌로 하여금 적절한 반응을 하도록 촉구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비언어적 수준에서 이루어집니다.
달리 말하여, 심장이 보여주는 반응이 인체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 한편으로, 생물물리학자들은 심장이 매우 강력한 전자기 발생기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심장은 하나의 전자기장(電滋氣場)을 만들어내고, 이것은 몸을 감싸며, 몸에서 8 내지 12피트 떨어져 있는 거리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은 무척 강력한 것이어서 우리는 몸에서 3피트나 떨어진 곳에서도 심전도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심장이 만들어내는 이러한 전자기장은 홀로그래피적인데, 그렇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몸의 어떤 부분에서든지, 그리고 전자기장 속의 어떤 지점에서든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샘플이 아무리 미세한 것일지라도 그것에는 전체 전자기장의 정보가 들어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자기장이 엄청나게 두뇌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지표로 미루어 보건대, 이 전자기장이 제공하는 전파를 통해서 두뇌가 세계에 대한 우리의 내적 체험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심장의 전파 스펙트럼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 반응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정서적 반응이 우리의 두뇌활동을 좌우하는 심장의 전자기적 스펙트럼에 변화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볼 때,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사건들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지식이 아이들과 건강한 아동발달에 어떠한 의미를 갖습니까?
아이들의 정서적 경험은, 아이들이 자기자신과 주위 세계에 대해 어떻게 느끼건 간에, 그들의 성장발달에 심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것은 모든 학습, 기억, 건강, 복지가 기초해 있는 토대입니다. 그러한 정서적 구조가 안정되어 있지 못할 때, 아이들의 발달은 어떤 것이라도 충분히 기능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중의 발달은 오직 결핍된 것들에 대한 보상일 뿐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총명하고 성공적이고 건강한 아이들을 원한다면, 우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들이 긍정적인 정서적 경험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0년 내지 50년에 걸쳐서 이루어진 연구들이 이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안정된 정서는 아이들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이 관건입니다. 다른 모든 것이 다 주어졌다고 합시다. 높은 생활수준, 최고로 비싼 학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들이 갖추어졌다고 하더라도, 만약 아이들에게 적어도 한 사람으로부터 자기가 무조건 사랑받고 있다는 최초의 경험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래서 학습환경에서 아이들이 안전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을 교육하는 방식에 관련해서 많은 함의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문제의 핵심은 배움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는 진정한 배움이고, 다른 하나는 조건반사입니다. 조건반사는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좀더 오래된 이른바 ‘배후’ 두뇌, 또는 ‘파충류’ 두뇌에 의한 두려움에 찬 반응입니다. 이것은 위험에 처해서 살아남기 위한 반사적인 두뇌의 반응입니다. 물론 여기서도 어떤 형태의 학습이 발생합니다만, 그러나 이러한 조건반사적 학습은 적대감, 분노, 불안과 같은 정서적 상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배움을 원한다면, 즉 우리의 좀더 높은 전두엽 ― 지적, 창조적 두뇌 ― 이 관여하는 학습을 원한다면, 정서적 환경이 긍정적이고 지지적(支持的)인 것이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불안의 신호를 알아채자마자 두뇌는 그 기능을 전두엽으로부터 파충류 두뇌의 방어기능으로 재빨리 전환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말은 인간 발달과정은 아마도 선천적인 요인보다는 양육과정에 더 많이 토대를 두고 있다는 논리처럼 들립니다.
이 문제를 둘러싼 새로운 연구는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영국의 연구자들은 환경이 우리의 유전자 구조를 깊이 변화시킨다는 가설을 들고 나왔습니다. 즉, 환경이야말로 우리의 DNA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의 유전자들은 종래 생각해왔던 것처럼 불변의 프로그램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실은 우리의 환경, 특히 우리의 정서적 환경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있습니다.《사이언스》5월호에는 임신 동안의 어머니의 정서상태가 태아 속에서 일어날 진화의 방향을 어떻게 결정하는가를 논하는 논문이 실렸습니다. 어머니가 행복감을 느끼고 있느냐 아니냐로 인해 태아의 두뇌발달이 전두엽에 집중되거나 아니면 살아남기에 관계하는 오래된 파충류 두뇌에 집중되느냐 하는 게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상당기간 동안 가장 폭발적인 정보로 남아있을 겁니다. 심장은 수태 후 열흘 안에 태아에게서 가장 처음으로 형성되는 기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정보는 매우 일리 있는 얘기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DNA 자신이 자기의 명령전달을 위해 의존하는 토대인 전자기적 스펙트럼이 바로 심장에 의해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수태 이후에도 우리의 유전자 형성이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출생 이후에도 그렇습니다. 출생 이후에도 우리는 파충류 두뇌와 감정 및 인지 두뇌 사이에 역점이 변화하는 것을 계속해서 볼 수 있습니다. 출생후 11년 동안 이러한 변화가 계속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두뇌 속에는 쓸데없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이 쌓여있습니다. 11살이나 12살 무렵에 두뇌는 조정과정에 들어가서, 제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기 시작합니다. 두뇌는 오래된 파충류 뇌 또는 새로운 인지 두뇌에서 과잉의 신경결합 조직들을 떨어버리기 시작합니다. 제거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그때의 아이들이 처한 삶의 상황에 달려 있습니다. 아이들이 안전감을 느끼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느냐, 또는 아이들이 적대적인 세계에 맞서서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고 느끼느냐에 따라 아이의 지성은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면, 부정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 무조건적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이런 과정을 역전시켜서 그런 아이들도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돕자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 내게는 모든 게 심장의 문제로 집약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그러한 아이들은 심장-두뇌에 관계하여 적절하게 양육되는 기회를 박탈당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 아이들이 안전감을 느끼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갖는 양육환경을 제공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나는 내 말이 굉장히 단순화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입니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귀와 입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보살핌, 놀이, 몸운동, 눈과 눈의 접촉, 감미로운 소리, 그리고 신체적으로 열이 날 만큼 긴밀한 접촉입니다. 최근에 마리아나 카플린이 내놓은 새로운 책《접촉 결핍자들》을 보십시오. 이 책은 거의 믿을 수 없을 만큼 관련문헌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뛰어난 책으로, 30년 전에 씌어진 애쉴리 몬티크의 이 방면의 고전적 저서와 동열에 서있습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접촉에 굶주려 있는 미국의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 충분한 양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여기서 정서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너무도 많은 미국 아이들은 생의 출발부터 접촉과 사랑을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그 결핍을 온갖 종류의 문화적 대체물로 벌충하려고 하지만, 그들의 근원적 욕구를 채우지는 못합니다. 지난 15년간 뉴욕주의 앤 모리슨은 가장 경비가 삼엄한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완고한 십대 범죄자들과 함께 일해왔습니다. 그들은 사회에서는 구제불능이라고 간주되고 있는 15살에서 20살 사이의 젊은이들입니다. 그러나, 앤 모리슨은 이들이 얼마나 쉽게 구제될 수 있는 존재들인지를 일반 시민들이 너무도 모르고 있다고 탄식합니다.
그녀는 이야기하기, 연극, 그리고 그밖의 그와 비슷한 활동을 통해서 이들 교육받지 못한 문맹자들의 마음을 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돌연히 책을 읽고, 시를 쓰고, 그밖의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앤 모리슨은 자신의 심장의 본능이 시키는 대로 나갔습니다. 커다란 사랑의 마음으로, 그녀는 그 십대들 속으로 들어갔고 조용히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것입니다.
그녀가 그 젊은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 ― 어머니 상(像), 인자한 어머니-친구의 모습을 그녀가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마가렛 미드가 말했듯이, “예술의 언어는 심장의 언어이며, 그것은 정서적 구조의 언어이다.”
당신은 언젠가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은 결코 폭력적으로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요?
네, 그래요. 스웨덴에는 이게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의사그룹이 있습니다. 그들의 연구에 의하면 내면세계 속에 이미지를 창조해낼 수 있는 능력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아이들은 결코 폭력적으로 되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그들은 폭력에 마주치게 되면 그때마다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의 해결책을 상상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깁니다.
그게 바로 앤 모리슨이 감옥의 젊은이들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즉, 자신의 내면세계를 재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죠. 아이 시절에 발달이 허용되지 않았던 심장/정서적 두뇌 사이의 연관이 다시 세워지도록 말입니다.
당신은 또 텔레비젼이 상상력에 대해 가장 큰 적(敵)이라고 말한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정확히 텔레비젼이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텔레비젼은 문자 그대로 아이들의 정상적인 두뇌발달을 방해합니다. 어린아이들이 텔레비젼을 지나치게 많이 볼 때, 환경에서 직접적으로 감각체계에 주어지지 않은 어떤 사물, 어떤 사람, 또는 사건에 대하여 내면적인 이미지를 창조해낼 수 있는 아이들의 두뇌능력이 억압받게 됩니다. 내면적 이미지의 창조라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상상력’의 핵심입니다. 그동안 학자들은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텔레비젼 프로그램의 내용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만, 그러나 이제 우리는 텔레비젼이라는 기술 그 자체가 매우 유해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풍부한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단순히 텔레비젼을 본다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생리에 깊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얘기가 깁니다. 1960년대 초에 이미 아이들의 마음은 텔레비젼 화면 앞에서 긴장상태가 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두뇌가 눈부신 빛에 반응하는 방식에 관계되어 있습니다. 끊임없이 반짝이는 빛은 텔레비젼과 컴퓨터 모니터에서 공통한 것인데, 이렇게 반사된 빛은 우리의 시각체험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여기서 이 문제를 설명한다는 것은 너무 복잡한 문제이므로 간단히 말하면, 눈부신 빛에 반응하여 우리의 두뇌는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닫아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오래 텔레비젼을 볼 때 최면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텔레비젼 산업이 이러한 최면효과에 맞서서 아동용 프로그램에서 이른바 ‘놀래주기 효과’라는 것을 도입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놀래주기 효과’는 두뇌로 하여금 계속해서 저기에 비상사태가 벌어져 있다고 생각하게 하고, 그 사태의 진원지에 특별히 주목하도록 끊임없이 유도합니다.
텔레비젼에서 이 효과는, 빛의 강도를 갑작스럽게 극적으로 변화시키고, 카메라 앵글을 급속히 이동시킴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마침내 두뇌는 이런 것이 가짜 경고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그 상황에 익숙하게 되어버립니다. 그 결과, 텔레비젼 산업 약 10년마다 ‘놀래주기 효과’를 더욱더 강화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급기야 오늘날 어린이 프로그램에는 30분마다 평균 16개의 폭력장면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프로그램의 내용이 문제됩니다. 신피질, 즉 보다 높은 두뇌는 텔레비젼의 이미지들이 진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파충류 뇌, 즉 보다 낮은 두뇌는 그것을 모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한 아이가 텔레비젼에서 폭력장면을 볼 때, 파충류 뇌가 위급상황에 직면하여 경고의 메시지를 정서적 뇌(변연계)로 올려보내고, 그러면 정서를 담당하는 두뇌는 즉각 심장과 접촉합니다. 그래서, 어떤 부정적 상황이나 위험에 대한 신호를 받는 순간 심장은 평소의 조화상태를 잃고, 코티졸이라고 알려진 인체내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호르몬을 방출합니다. 코티졸은 즉시 두뇌를 깨우고, 사람이 위급상황에 대비하도록 수많은 신경연결망을 만들어내도록 유도합니다.
그러고 나서, 아무런 일이 없다는 메시지를 심장이 받게 되면, 그 즉시 또다른 호르몬이 아까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면서도 사용되지 않았던 모든 신경연결망을 해체시키기 위해 방출됩니다. 오늘날 텔레비젼의 아동용 프로그램의 문제는 이런 상황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평균적으로 미국의 아이들은 대여섯살이 될 무렵까지 텔레비젼을 본 시간이 5,000 내지 6,000시간에 이르고 있는데, 그런 아이들의 두뇌가 이와 같이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텔레비젼으로부터의 엄청난 과잉자극은 종래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인간 두뇌의 발달에 혼란을 끼치고 있습니다. 텔레비젼은 문자 그대로 뇌신경 발달을 모든 차원에서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두어개의 예를 들려드리지요. ‘독일 심리학 연구소’(The German Psychological Institute)는 20년 동안에 걸쳐 해마다, 6세가 될 때까지 평균 5,000 내지 6,000시간 텔레비젼을 시청한 경험이 있는 4,000명의 아동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연구자들의 발견에 의하여, 20년 전에 아이들은 붉은색이나 푸른색과 같은 단일 색채 카테고리 속에서 360개의 다양한 음영을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그 숫자는 약 130개로 줄어들었습니다. 색채의 뉴앙스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의 3분의 2가 손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엄격히 말해서 신경-인지 능력이 망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연구자들이 발견한 가장 심각한 변화는 두뇌가 모든 운동감각 체계를 가로지를 수 있는 능력이 훼손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점점 갈수록 아이들의 감각체계는 두뇌 속의 고립된 구성부분들로서 기능하지, 각 부분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실험에서 젊은이들을 텔레비젼과 같은 고밀도의 자극이 없는 자연적인 환경에 놓아두었을 때, 그들은 몹시 불안해 하고, 지루해 하며, 폭력적으로 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 독일대학에서 이루어진 연구가 마지막으로 전해주는 불길한 소식은 20년이라는 같은 기간 동안 아이들이 자연환경을 지각하는 능력에 20%의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80년대에 마르시아 미쿨락이 진화에 관해 행한 연구결과와 일치합니다. 그녀는 미국의 아동들이 비문자, 비기술 사회의 아이들과 대조적으로 자연환경에서 나오는 감각적 신호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20 내지 285% 감소했음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독일사람들의 연구는 아이들이 텔레비젼과 록뮤직과 컴퓨터와 같은 원천으로부터 발생하는 부적절한 자극에 노출됨으로써 심각한 감각둔화 현상을 보여준다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뒷받쳐주고 있습니다.
제리 맨더는 텔레비젼에 관한 그의 책에서, 텔레비젼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그것은 모든 사람의 삶을 향상시켜주고, 누구에게나 무료로 제공되는 교육적 도구로 쓰일 매우 훌륭한 민주적 기술이라고 선전되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래서 50년대의 미국문화는 그러한 환상을 송두리째 사들였습니다. 이제 90년대의 컴퓨터는 어떻습니까?
컴퓨터도 본질적으로 같은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컴퓨터도 텔레비젼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신에 어떻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한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교과서에서 한 페이지를 가지고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그 페이지에는 설명문이 있고, 두어개의 도표 또는 그림들이 있었습니다. 피실험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이 페이지에 들어있는 정보를 기억하여 말해보게 하였습니다. A그룹은 인쇄된 페이지를 그대로 갖고 읽게 하고, B그룹에게는 그 페이지를 영화화한 것을 보여주고, C그룹은 텔레비젼 화면을 통해 ― 정확히 컴퓨터 모니터와 같은 화면을 ― 그 페이지 내용을 보게 하였습니다. 20분 후 각 그룹이 그들이 읽은 정보를 얼마나 이해하고, 기억하고 있는지 시험해보았습니다. 학습내용을 종이를 통해 본 A그룹은 평균적으로 85%의 내용을 기억해내었습니다. 영화 스크린상으로 그것을 본 B그룹 사람들은 25 내지 30% 정도 수준으로 학습내용을 기억하고 있었고, 텔레비젼 모니터를 통해 학습한 C그룹은 이해와 기억 수준이 겨우 3 내지 5%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각 그룹들을 다시 뒤섞어서 그 책의 다른 페이지들을 가지고 테스트해본 결과 모든 경우에서 기억과 이해 수준은 동일하였습니다. 이러한 실험결과도 다시한번 인간의 두뇌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와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멈추어서 깊이 숙고해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왜요?
나는 버클리의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있었던 한 컴퓨터 관련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그 회의 동안 교육에 있어서의 컴퓨터 문제에 관해 나흘간 토의를 하였습니다. 바로 그때에 캘리포니아주는 학교에서의 컴퓨터 교육을 위한 실험 프로젝트로서 5억달러를 지출하는 법안을 준비중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날더러 캘리포니아 주의회 의원들을 만나서, 우리가 버클리에서 나흘 동안 회의를 하면서 발견한 사실들을 전해주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의회 의원들을 내가 만나도록 주선을 했던, 그 당시에 공화당 전략국의 국장으로 있던 여성이 나를 초청했다는 이유로 해고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결국 이 문제에 돈과 권력이 얼마나 많이 개입되어 있는가를 말해줍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수많은 직업이 컴퓨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컴퓨터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 젊은이들에게 컴퓨터에 관해 필요한 지식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버클리에서 있었던 나흘간의 심포지엄에서 우리는 모든 것은 나이에 달려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MIT에서 온 어느 교수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첫째 사고력을 기르도록 한 다음에 컴퓨터를 주어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습니다. 만약 아이들의 사고과정이 충분히 계발되기 이전에 컴퓨터가 주어진다면, 아이의 성장발달은 재앙을 맞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아제가 지적했듯이, 인생의 첫 12년간은 나중에 젊은이로 하여금 추상적이고, 은유적이며, 상징적인 형태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지식의 틀이 형성되는 데에 쓰여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추상적 사고능력은 몇백만년 동안 진행되어온 자연적인 구체적 과정의 결과로서 발달한 것입니다. 텔레비젼과 똑같은 인공적인, 음극선 튜브 기술에 의해 움직이는 컴퓨터가 그러한 발달을 방해한다는 데 위험이 있습니다.
텔레비젼이나 컴퓨터를 떠나서, 저는 많은 아이들에게서 그들이 그들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 결핍감을 느끼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런 점을 주목해보셨는지요?
나는 자주 모든 십대들에게 있는 세가지 중요한 특징에 관해 말해왔습니다. 첫째는 열대여섯살 무렵에 아이들은 그들의 삶에 무엇인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큰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그들 자신 속에 어떤 위대한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셋째는 억누를 수 없는 굉장히 강렬한 동경심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십대들은 자기자신들의 이상적인 삶의 모범이 될 만한 모델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결국 갖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MTV를, 록스타를, 영화나 텔레비젼에 나오는 온갖 쓰레기를 인생의 모델로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기는 많은 다른 문화에서는 아이들에게 성년식이나 통과의례와 같은 것을 통하여 정신적 성장을 장려하는 삶의 단계입니다. 당신은 우리 문화에서 이러한 것들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실패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당신이 얘기하는 그러한 것은 경제적으로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강력히 차단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식들은 한푼어치의 가치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우리의 문화체계에 갇혀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 의미있고 실질적인 것을 찾는 젊은이들은 심각한 좌절을 경험합니다. 기업이 아이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랄프 네이더와 린다 코코가 같이 쓴 책을 보십시오. 이 책은 폭탄입니다. 예를 들어, 랄프 네이더가 MTV를 만든 보브 피트먼에게 접근했을 때의 얘기를 보십시오. 랄프 네이더가 그들이 14살짜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보브 피트먼은 등을 의자에 기대면서 말했습니다.
“랄프, 우리는 14살짜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을 소유하고 있어요.”
오늘날 실제로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아 이용해먹을 것인가에 대해 상세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기업에 파는 사업가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지금 완전한 소비사회의 틀 속에 갇혀 있습니다. 이 사실을 변경하려고 하면 그것은 문자 그대로 우리의 경제를 위협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나는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어떠한 대규모적인 토대 위에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만 가장 자리를 파고들면서 개인 개인에게 접촉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무도 총체적인 체제를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들을 귀를 가진 사람들에게 말하고, 우리가 처한 이 미치광이짓으로부터 아이들을 벗어나오게 하는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있는 부모들에게 호소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이 가진 깊은 욕구를 추구하는 데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십대들의 부모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네, 무엇보다도 많은 십대들은 그들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걸 발견할 기회가 주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우선 아이들이 그들 자신의 욕구를 알아보도록 돕는 데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 우리는 사후대처보다도 사전예방적인 길로 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젊은이들 사이에 발생하고 있는 대부분의 위기는 자의적인 것들, 즉 문화 그 자체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수백만달러를 들여서 십대들의 잘못된 문제를 땜질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교육에 투자를 하여 그들이 좋은 부모가 되어,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길러서 나중에 아이들이 엄청난 문제를 갖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인생의 첫 4년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스웨덴에서는 새로 엄마가 되는 여성들에게 3년간의 출산휴가가 주어집니다. 종래에는 1년이었는데, 지금은 어머니들이 아이들과 집에 같이 있을 수 있도록 3년으로 올려졌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들도 온전한 봉급을 그대로 받으면서 1년간 휴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부모 모두가 출생 후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간인 1년간 아이와 같이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십대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고 하는 당신의 질문에 대해, 나는 우리가 바로 처음부터 손상을 막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세계 전체를 통해서, 조그마한 틈들 가운데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거대한 불합리의 체제 속의 진정한 합리의 공간들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가 방출해놓은 이 글로벌 경제라는 악몽이 마침내 자멸해버릴 때 ― 나는 자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 이들 작은 이성의 공간들은 스스로를 드러내어, 아이들의 잠재적 능력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는 세계의 창조에 필요한 변화를 위한 동력과 지혜를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나는 매우 낙관적입니다.
* 이 대담의 출전은 Journal of Family Life 제5권 제1호(1999년)이다.
“정부가 지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은 우선 채권을 발행하는 방법이 있다. 채권발행을 통해 우선 재원을 마련한 다음 이자는 현 세대가 부담하고 원금은 미래 세대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 방법은 세금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가장 어려운 방법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화폐공급량을 늘려 인플레를 유발하는 것이다.”(원재훈, 2012 : 54)
* 인플레 : 부채 가치절하, 간접세수 증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