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의 실종, 수준의 격하, 대안의 부재
1. “반이명박 운동으로서 진보는 대략 세 단계로 무너졌다. 첫째, ‘이명박이 왜 당선되었는가’를 화두로 하는 사회적 성찰이 사라졌다.(누구든 이명박만 욕하면 손쉽게 정의와 진보의 지위를 확보 하는데 왜 성찰이 필요한가.) 둘째, 모든 사회 문제, 심지어 이전 자유주의 정권에서 그대로 이어져온 문제까지도 이명박 탓이 되면서 현실에 대한 정확한 비판과 분석이 사라졌다. 또한 모든 토론과 담론이 이명박 욕하기로 귀결하면서 모든 토론과 담론은 이명박 수준으로 하향평준화했다.(고작 이명박 따위를 욕하는 데 무슨 진지한 토론과 담론이 필요한가.) 셋째, 그런 당연한 귀결로 진보의 다양하고 진지한 대안과 전망들이 사라졌다.(‘닥치고 정권교체’외엔 다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소리로 치부되었으니.)”
2. “그런 진보가 선거에서 이기긴 어려웠다. 진보 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에 투표한 대중에게 실망을 토로했지만 관점을 바꾸어, 대중은 왜 진보에 투표해야 했을까. 자신들의 10년 집권 역시 실망스럽긴 매한가지였던, 아무런 반성도 없이 오로지 이명박에 대한 대중의 반감만 이용하여 도덕적 우위와 희망을 말하는, ‘이명박 욕하기’를 ‘박근혜 욕하기’로 바꾸는 것 말곤 달라진 것도 전망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대중은 왜 투표했어야 할까. ‘이명박도 싫고 이명박 욕만 하는 놈들도 싫은’ 대중의 남은 선택지는 무엇이었을까.”
3. “결국 오늘 진보에 남은 건 한 개의 앙상한 구호뿐이다. ‘최소한의 상식.’ 최소한의 상식이 위협받을 때 최소한의 상식을 지키는 건 두말할 것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상식을 말한다는 건 최소한의 상식부터 회복하자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것 말곤 내세 울 게 없다는 말일 수도 있다. 오늘 진보는 최소한의 상식부터 회복하자고 말하지만 실은 그것 말곤 내세울 게 없다. 그런 진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적이 최소한의 상식을 파괴해주기만 기다리는 것이다. 진보는 지배체제가 바라는 ‘민주화 이후 진보의 이상적인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다.”
_ 김규항, “싸움인가 기생인가“, 「혁명은 안단테로」(경향신문, 2013. 11. 12)
“비결정성은 없다. 자유는 Selbstbestimmung, 自己決定이다. 스스로에게서 유래한다는 점에서 自然 즉 자기 스스로 그러한 것과 다르다. 자유가 없고 자연만 있으면 그는 인간이 아니다. 자연일 뿐이다. 그러면 문화가 없다. 자연과 자유는 전혀 다르다. 스피노자는 이 우주 전체가 필연이요 동시에 자유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바깥에서 우주로 하여금 강압한 바 없다. 우주 전체가 있을 뿐이다. 마음을 늘려서 우주와 합치시키면 그것이 필연이고 자유라고 보았다. 자유는 자기 결정이요 의존 속의 비의존이다.”(손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