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짜 짱가”
아직 어떤 곳은 가정교회라 할 수 없다. 3축을 매개하는 리더십이 권위주의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동역이 아니라 하청이다. 4주에 어긋난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적 성격을 고려해 본다면 에클레시아는 교회(敎會), 곧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모임으로 번역될 것이 아니라, 교제하는 공동체, 곧 교회(交會)로 번역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런 점을 이야기하며 교회(敎會)가 아니라 교회(交會)여야 한다고 주장한바 있다. 이런 나의 생각에 확신을 준 것은 대천덕 신부였다. 우연히 발견한 그의 책에서 그는 나와 동일한 생각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에클레시아가 우리 성경에서 ‘교회’(交會)가 아닌 ‘교회’(敎會)로 번역되었을까? 1887년간 로스역 <예수셩교젼서>에서부터 ‘교회’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중국어성경의 번역을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미완의 순종은 불순종이다. 그 때 원칙을 어기고 타협하였다. 올무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험난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