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Shot, Scene, Sequence
43. 운동하는 계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이것을 ‘시간 팽창(time dilation)’이라고 한다. … 운동하는 계는 그 전체가 ‘슬로 모션’으로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이 효과는 속도가 커질수록 더 커진다.
46. 운동하는 좌표계에서 길이는 ‘줄어든다.’ 이것을 ‘길이 수축(length contraction)’이라고 한다. 길이가 줄어드는 정도는 시간이 느려지는 정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왜냐하면 길이는 빛이 몇 초간 이동했느냐로 정의되는데, 시간이 느려지면 그만큼 빛의 이동 거리는 시간이 늘어난 딱 그만큼 짧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47~49. 상대성 이론은 현대 과학뿐만 아니라 20세기 인류의 지성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 예술계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다음은 피카소의 대표작 중 하나인 <우는 여인>이다. 첫눈에도 이 그림은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 본 세상이 아닌 것 같다. 그림은 기본적으로 2차원 평면에 3차원의 대상을 표현한다. 그 때문에 대상의 모든 정보를 한 장의 그림에 담기는 불가능하다. 피카소는 이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했다. 그는 한 장의 그림에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관찰한 모습을 한꺼번에 표현했다. <우는 여인>에서도 여인의 옆모습과 앞모습이 동시에 그려져 있다. 이런 표현 방식을 일러 ‘큐비즘’ 혹은 ‘입체파’라고 한다. 화가들이 이런 시도를 하게 된 데에는 상대성 이론의 영향이 컸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약간의 예술적 상상을 가미해 본다면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 간다면 감춰진 천의 얼굴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하나의 관점에서만 바라본 대상은 그 실체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성 이론이 예술로 전파되었을 때에는 <우는 여인>과 같은 걸작을 빚어냈지만 철학적으로 잘못 받아들여졌을 때에는 인식론적인 상대주의를 옹호하는 결과를 낳았다. 즉 진리란 (과학적 진리를 포함해서) 결코 절대적일 수 없으며 사람들의 관점과 상태에 따라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 종종 상대성 이론이 그 근거로 등장한다. 진리의 상대성은 종종 양비론이나 양시론의 절대적인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 전개는 아인슈타인은 물론 대다수의 과학자들을 기쁘게 할 것 같지 않다. 상대성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갈릴레오에서부터 뉴턴과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관성 좌표계에서의 물리 법칙의 동일성이다. 특히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시공간이 통합되고 시간이 늘어나고 길이가 줄어들고 동시성에 문제가 생기는 그 모든 원인은 서로 다른 운동 상태의 관찰자가 똑같은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상대성 이론은 진리의 상대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불변을 위한 현상의 상대성을 말하는 셈이다. 피카소의 <우는 여인>을 다시 보자. 우리가 울고 있는 여인을 보는 관점이 아무리 달라지더라도, 그레서 그 보이는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더라도 울고 있는 여인의 실체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진리나 법칙이나 원리가 바뀌는 것에 대체로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본래 보편적이고 항상 적용 가능한 무엇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인슈타인 본인도 ‘상대성 이론’이라는 이름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_ 이종필, <물리학 클래식>, 사이언스북스, 2012.
현대문학 8월호에 게재된 이해존의 ‘직립’. 2013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이해존의 ‘녹번동’. 심사위원이 황현산 선생님이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