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August 25th, 2018

August 25, 2018: 10:32 pm: bluemosesErudition

천안중앙고 교사, 이정록

: 9:59 pm: bluemosesErudition

시선집을, 신춘문예 심사하듯 읽는다.

: 9:28 pm: bluemosesErudition

“죽음을 잘 이해하는 자만이 삶을 위대하게 만든다.”(릴케)

: 12:14 pm: bluemosesErudition

46~47. 14년 만에 되돌아온 다카마쓰는, 그런 내 심상 풍경에 딱 들어맞는, 좀 서글픈 곳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내가 그 전에 근무하던 무렵은 거품경제가 최고조였던 때입니다. 세토 대교가 개통되고, 이제부터 혼슈의 대도시처럼 편리하고 활기찬 생활이 기다릴 것이라며 지역 전체가 에너지에 넘쳐 들떠 있었습니다. 상점가에는 도쿄에나 있음직한 브랜드가 입점하고, 영화관도 많아져서 휴일쯤 되면 그야말로 사람들로 북적댔습니다. 그런데 내가 다카마쓰를 떠나 있는 동안 거품은 꺼지고 세토 대교도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는커녕 혼슈에 단물을 쪽쪽 빨아 먹히는 ‘빨대’로 둔갑해 있었습니다. 다리가 놓인 섬에 화려히 개장했던 관광 시설이 차례로 문을 닫았고, 가가와 현 유일의 테마파크 역시 개장 오픈을 여러 번 되풀이하고도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그렇게 화려했던 상점가도 망해서 셔터를 내린 채 방치되어 그야말로 황폐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 대신 활기를 띤 곳은 다카마쓰 교외에 생긴 혼슈 자본의 쇼핑센터였습니다. 도시 어디에나 있는 대형 체인점이 휴일만 되면 엄청난 정체를 일으킬 만큼 인기몰이를 하는 그 광경은, 마치 내 사랑하는 시코쿠의 영걸 다카마쓰가 혼슈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듯한, 나 자신의 ‘낙향’이라는 감정과 섞이면서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54. 지도를 확인하고 농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어디 숨었는지 모를 등산로를 겨우 찾아내, 다 허물어져가는 산길을 묵묵히 오릅니다. 그런 밋밋한 산을 오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지, 농가 사람들한테서 어딜 가느냐, 거길 왜 가느냐, 꽤 웃음을 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굉장했습니다. 여전히 추위가 가시지 않은 초봄, 살포시 비치는 햇빛 속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온통 뒤덮은 복사꽃 말입니다. 복사꽃을 본 적이 있나요? 분홍색에 벚꽃보다 튼튼하고 무척 요염합니다. 그게 눈길 가는 곳마다 온통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도쿄 근교 같으면 지금이 꽃구경 시기라며 관광버스가 줄줄이 서 있을 텐데 여기엔 아무도 없습니다.

55~58. 어느 날, 평소처럼 장시간 노동에 녹초가 된데다, 고약하고 무능하고 가진 거라곤 권력뿐인 본사 데스크(죄송합니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거든요)와의 아무 결실 없는 교섭에 모든 것을 다 때려치우고 싶어졌으나 물론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래도 휴일만큼은 이대로 보낼 수 없다며 필사적으로 새벽에 일어나 산길을 부지런히 걷고 있었습니다. 나이는 한 일흔쯤 되었을까, 어떤 오헨로상의 모습을 한 할아버지와 스쳐 지나갔는데, 늘 그랬듯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주고받은 나는, 순간 전혀 예기치 못한 격한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터벅터벅 혼자 걷다가 갑자기 엄청난 기세로 눈물이 쏟아져내렸고, 그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슬프다 혹은 기쁘다, 그런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무無’였습니다. 하지만 대단히 격렬한 무. 왠지 모르게, 하염없이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원인은 분명했습니다. 나는 그만 할아버지의 웃음에 허물어졌던 것입니다. (중략) 아아, 뭐라 표현할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투명한 웃음’입니다. 아아 그래, 웃음이라는 게 원래 이런 표정이었구나, 처음으로 깨닫게 되는 그런 웃음….. 그리고 그날, 그 웃음이 내 속에 있던 작고 딱딱하고 뾰족한 돌멩이에 빔 광선처럼 꽂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내 속의 응어리를, 이유도 모르게, 한순간에 녹여버렸습니다. 그 후, 대체 그 표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헨로상들은 이웃한 도쿠시마 현에서 출발해 고치 현, 에히메 현 길을 걸어 이곳 [가가와 현] 다카마쓰 근처에서 그 여정을 마칩니다. 저마다 여러 감정들을 품고 혼자서 고생길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그 속에서 여러 사람들과 자연의 친절함과 시련을 맞닥뜨리다 겨우겨우 목표점에 다가갑니다. 그런 상황을 뚫고 지나기에 그런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거라면…..

62~65. 가가와 현 사람들은 툭하면 우동을 먹습니다. 쉽게 말해 우동은 무슨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 그곳 주민들에게는 일상적인 ‘주식’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 일본 제일이 있는데, 이건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을 겁니다. 가가와 현은 한 세대당 평균 저축액이 일본에서 가장 높습니다(2008년 기준). 이건 좀 의외가 아닐까요? 무엇보다 시코쿠의 경제 활동을 일본 전체에서 조망해보면 상당히 소규모니까요. 네 현을 다 합쳐도, 시코쿠의 GNP는 일본의 겨우 3퍼센트라 합니다. 경제 규모가 그 정도니 그곳 사람들도 그다지 돈을 벌지 못하는 셈이죠. 하지만 저축액은 많습니다. 이건 대체 무슨 뜻을까요. 답은 하나뿐입니다. 가가와 현 사람들은 돈을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우동 소비량이 일본에서 제일’이라는 것과 ‘저축액이 일본에서 제일’이라는 것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게 제 가설입니다. 그리고 이 가설 자체가 돈에 대한 내 사고 방식에 실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가가와 현 사람들은 왜 돈을 쓰지 않을까? 그건 뭐니 뭐니 해도 이 ‘우동’에 원인이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가가와 현의 우동은 정말 저렴합니다. 가가와 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셀프’ 우동 집인 경우, 우동만 들어간 경우엔 한 그릇에 100엔대. 여기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긴 하지만, 기분이다 하고 튀김을 세 종류나 넣어 봐야 500엔을 넘기기 힘듭니다. 1000엔까지 도달하려면 그냥 우동으로만은 있을 수 없는 가격입니다. 그래서 가가와 현 사람들은 도시에서라면 당연한, 런치에 1000엔 이상 받는 가게에는 가려고 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반드시 내뱉는 대사가 바로, “그 돈이면 우동을 00그릇 먹을 수 있겠다”이니까요. 다시 말해 우동 한 그릇이, 그들이 물건 가격을 따질 때의 단위라는 말입니다. ‘엔’이 아니라 ‘우동’인 셈이지요. (중략) 입장료가 몇천 엔이나 드는 시설은 가가와 현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나요. 왜일까요? 그렇습니다, 가가와 현 주민은 “입장료만으로도 우동을 몇십 그릇이나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까요. 말도 안 되게 비싼 겁니다. 아깝잖아요. 엄청 깐깐한거죠. … 그들은 테마파크에 가고 싶은데 참는 게 아닙니다. 그저 납득할 수 없는 돈은 쓰고 싶지 않다는 것이죠. 그 편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돈이 모입니다.

65~66. 또 하나, 내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끼는 게 있습니다. 그건 바로 그들의 ‘기축통화’인 우동을 파는 사람들입니다. (중략) 대부분의 가게들은 붐이 일었다고 해서 가격을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변함없이 한 그릇에 100엔대 가격으로, 변함없이 밀려드는 손님들을 수습하고, 그야 물론 정신없이 바쁘기야 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영업을 계속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축통화인 우동을 다루는 사람들의 긍지가 아닐까요. 장사란 그저 팔아서 돈만 벌면 되는 게 아닙니다. 물건의 가격이란 수요와 공급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물건’이 무엇인지에 따라, 허용되는 가격과 허용되지 않는 가격이 있습니다. 그 분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먼 장래까지 내다보았을 때 그 장사를 보호하는 길입니다. 물론 손해 보고 본전도 못 찾는 건 말이 안 됩니다만, 너무 많이 벌어서도 안 됩니다.

87~88. 회사란 조직을 두려워하다보면, 이상하거나 부조리하다 싶은 부분이 있어도 조직의 힘 앞에 목소리를 내길 주저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을 겨를이 있다면 정면에다 대고 목소리를 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밑져봐야 본전이라고 생각하면, 의외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략) 머리를 쥐어짜 생각해낸 전략이, 전국의 지역판 기사를 읽고 ‘괜찮은 기사들’을 발굴하여 마구마구 칭찬하는 리포트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포함한 본사 사람들은 ‘총국은 미적지근하다’ ‘무르다’고 단정하면서 실제로 총국 기자들이 매일 어떤 기사들을 쓰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총국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불신이 쌓이는 묘한 상황이었습니다. 해고 운운하기 전에 그것부터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죠. “지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활성화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아무도 반대하기 어려운 옳은 말을 늘어놓으며 매주 사내 메일로 장황한 리포트를 오사카 본사의 모든 편집국원들에게 보내는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달랑 그것뿐이었습니다만, 영향력은 상상 이상으로 굉장했습니다. 그만큼 회사는 지역판을 무시해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읽어보니 예정조화론 같은 모범적인 기사들이 넘쳐나는 전국판 기사들보다 기자나 데스크의 마음이 거칠게나마 흘러넘치는 기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정말이지 흥미로웠습니다. 내가 한 일은 그걸 ‘보이는’ 형태로 만들었을 뿐입니다만, 그것만으로도 회사 분위기가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좋은 기사에 주는 매월의 상을, 점차 지역판 기사들이 석권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걸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너 정말 하는 짓이 야비하다”고 대놓고 질책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그 질책은 오히려 제가 바라던 바였습니다! 이 전통 있는 조직을 내가 그렇게까지 흔들어놓았나 싶어서, 오히려 멋대로 자화자찬하고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164~168. 일본은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허벌판에서 출발한 국민들은 한마음으로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세계대국이 되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일본인들은 다들 훌륭히 ‘자립’했다고 근거 없이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분명 경제는 성장했고, 국민들은 집과 자동차와 편리한 것들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자립이었을까요? 풍요는 의존을 낳습니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더불어 모두가 평등하게 성장의 과실을 나눠 가질 수 있었던 시대가 지속된 결과, 줄만 잘 서면 된다는 사고회로가 생겨버렸습니다. 깔려 있는 레일 위를 앞뒤 없이 달리는 것이야말로 중요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큰 회사에 매달려 이익을 나눠 가지는 것이 점차 기득권이 되었습니다. 이걸 자립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중략) 결국 경제성장은 우리의 자립이 아니라 의존을 낳아버린 게 아닐까요? 그리고 지금은 ‘있으면 편리한’ 것들을 생산하는 일조차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물건을 사려 들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물건을 팔아야만 합니다. 거기서 펼쳐지는 행위가, 불법과 구분하기 힘든 아슬아슬한 상행위입니다. ‘있으면 편리하다’는 구호는 ‘없으면 불행한’ 영역에 돌입했습니다. (중략) 지금 필요한 것은 분명 의존으로부터의 탈출입니다. 누군가가 무엇을 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두 발로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방법을 스스로 생각해내야 합니다. 그 힘이 과연 우리에게 있을까요? 지금 우리는 그런 질문에 직면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이지 두려운 일입니다. 당연합니다. 반세기 이상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대모험을 해야 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걱정 말아요. 기대도 된다니까요. 내가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인기가 모이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다들 아베노믹스를 좋아하는 겁니다.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더라도, 자립하라고 등 떠미는 것보다 나으니까. 각료들이 문제 발언을 하든, 돈 문제로 사임을 하든, 지지율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대신 XX은 추진해야겠습니다, 라는 말에도 눈을 감은 채 따라갑니다. 안보법안이나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으로 ‘아베 정치로부터의 탈피’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호소가 제대로 침투하지 않는 까닭은, 그러한 정치 세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의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리 자신이어서가 아닐까요? “We are not ABE”가 아니라 “We are ABE.” 이를 직시하는 데에서 출발하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172~174. 내 제안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자기 안에 있는 ‘회사 의존도’를 낮추라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돈’과 ‘인사’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죠. 예를 들어 월급이야 저마다 다르지만, 많이 받는 사람도, 적게 받는 사람도 가능한 한 그 월급에 전면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업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생활을 점검하고, 자기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을 다시 돌아보자는 뜻이빈다. 돈 들이지 않는 즐거움을 찾아보자는 뜻입니다. 그렇게 약간이라도 지출을 줄일 수 있다면, 쓰지 않고 돈이 조금씩이나마 쌓여갈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회사에 대한 ‘자세’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회사에서 일하는 것 말고 무엇이든 좋으니 좋아하는 일을 찾아봅시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듭시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가치관이 회사에 의해 좀먹는 비율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회사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고 시 읽는 모임에서도 존경을 받는가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인사이동에 총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더라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과 사고방식이 복안적이 되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길 터. 회사의 명령이라고 해도 반사회적인 행위라면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만약 따르지 않을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제정신으로 견딜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회사에 의존하지 않는 자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분명 일 본연의 기쁨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일이란 원래, 사람을 만족시키고 기쁘게 할 수 있는 훌륭한 행위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기뻐할지 고민하는 것은, 무엇보다 창조적이고 가슴 뛰는 행위입니다. 그건 돈이나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돈을 벌기만 하면 뭐든 해도 좋다는 것은 일이 아니라 사기입니다. 장기적인 눈으로 봤을 때 결코 회사를 위한 게 못 됩니다. 그런 기쁜 사람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늘어난다면, 실체 없는 ‘회사’라는 괴물이, 사람들의 행복을 좀먹는 ‘회사 사회’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 미래에는, 회사 사회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등장할 것입니다.

187~188. 일이란 무엇인가 하고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일이란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회사에 들어가는 것도, 돈을 받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 그것은 놀이와는 다릅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지해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일은 재미있습니다. 고생이 된다고 해서,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성취감도 느끼고, 동료도 생기고, 인간관계도 넓어집니다. 도와준 사람에게서 도움도 받습니다. 그 모든 것이, 놀이만으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정말 일이란 멋진 것입니다. 돈을 지불해서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이 끊임없이 떠올라 멈출 수가 없습니다.

193. 회사는 나를 만들어가는 곳이지, 내가 의존해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걸 알게 되면 회사만큼 멋진 곳도 없습니다. 그리고 수행이 끝났을 때 당신은 언제고 회사를 그만둘 수 있습니다. 다만 ‘언젠가 회사를 졸업할 수 있는 자기를 만들 것.’ 그것만큼은 정말 중요한 게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하는 51세 무직의 봄입니다.

_ 이나가키 에미코, <퇴사하겠습니다>, 엘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