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December 1st, 2020

December 1, 2020: 10:16 pm: bluemosesErudition

최승복, <포노 사피엔스 학교의 탄생>, 공명, 2020.

8. 새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장치가 온라인 교육과정 아카이브와 온라인 수업 플랫폼이다. 아카이브는 언제 어디서나 최고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도서관이고, 수업 플랫폼은 교사가 학생 한 명씩 만나고 가르치고 도와주는 사이버 교실이다.

23. 근대학교를 존속시키는 세 가지 환상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익숙함의 환상(익숙한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 개념의 환상(동일한 단어를 사용하면 그 내용도 같다고 생각하는 경향), 시간의 환상(현재를 바꿔야 미래가 바뀐다고 생각하는 직선적 시간관의 환상)

144.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축적의 길>에서 …. 대한민국 산업 전반이 처한 문제 상황에 대해 “개념설계 역량의 부재”라고 강조한다. 개념설계 역량이란 “제품 개발이 되었건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건 산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가 있을 때, 이 문제의 속성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고 창의적으로 해법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량”이다.

199~200. 포노 사피엔스의 학습은 상하좌우, 전후 내외를 가리지 않고 종횡으로 펼쳐져 나간다. 학교 내에만 머물지도 않고, 국내에 한정되지도 않는다. 이들의 학습은 교사에 의해 전달되는 지식과 기술을 통해 사회화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관계 맺기를 통해 얻는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상호협력하고 충돌과 긴장을 조정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개인화’하고 ‘주체화’하는 과정이다. 그동안 교육학에서는 사회화 과정을 중시해왔지만, 비고츠키는 교육을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것을 받아들여 그것을 개인화하고 주체화하는 과정임을 강조했다. 이제 우리는 개인화하고 주체화하는 과정인 학습을 중심으로 학교를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 25년차 교육부 공무원인 최승복은 이 책을 저술하면서 신났을 것이다. 깊은 마음의 비판을 주저함 없이 토로하였기 때문이다. 이 책으로 우리 사회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은 저자가 모두 누렸을 것이라고 믿는다. 안정된 직위와 혁신의 자부 -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 9:58 pm: bluemosesErudition

건강할 때만 유의미한 공동체. 예로부터 질병은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을 의미하였다. 단기간 선의는 절교의 뱃고동 같아서 아픈 이들은 짧은 소란 속에 잊혀진다. 병자들은 얼마를 버틸 식량으로 외로이 어두운 숲을 헤쳐 나가며 침묵의 기다림에 서서히 소실되어 간다. 저들은 보이지 않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실질적 진리를 간절히 구한다. 애통이다.

한국 기독교는 ‘다음세대’와 ‘가나안성도’란 두 가지 종횡의 명분을 들고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배에 승선하더라도 [거의 모든] 약한 자들은 다시금 파양되고 만다. 치유와 회복은 어디에 있는가. 그곳은 하나님 나라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실질적 진리는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 9:24 pm: bluemosesErudition

1800년대 초반의 프로이센을 운운하며 공교육을 비판하는 논지는 ‘정오의 그림자’에 비견될 기이한 이야기다. 공교육과 세금 그리고 사회복지. 이것이 러다이트를 종식한 근대의 토대였다. 구제도가 문제인 것이 아니다. 구태에 중층 결합된 이해관계의 자기 혁신이 관건이다. 견인과 추동.

비르투와 포르투나. 카롤루스 보빌루스의 <지혜에 대하여>(Liber de sapiente, 1510)에 삽입된 ‘포르투나와 비르투’라는 제목의 목판화. “눈을 가린 채 회전하는 운명의 바퀴를 들고 공처럼 둥근 의자에 불안하게 앉아 있는 것이 운명의 여신이고, 성찰의 거울을 들고 사각의 안전한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지혜의 여신이다. 오른쪽 맨 위에 있는 ‘지혜자(sapiens)’가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비르투를 믿어라. 포르투나는 파도보다 더 순식간에 사라진다.”

: 8:26 pm: bluemosesErudition

폴란드 출신의 분석 마르크스주의자 아담 쉐보르스키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연구하면서 ‘전환의 계곡(Valley of Transition)’이라는 개념을 고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