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ll of God as a way of life
언제나 미래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과거의 선택을 바꿀 자유는 없다. 하나님은 선택의 결과에서 건져주시지 않는다. 그 결과를 견뎌내며 자랄 수 있는 힘을 주신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곳이다.” … 나는 속물이다. 십자가 없이 살 수 없다. 그러니 “오늘, 여기서, 주를 위해” 날마다 죽겠다.
The will of God as a way of life
언제나 미래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과거의 선택을 바꿀 자유는 없다. 하나님은 선택의 결과에서 건져주시지 않는다. 그 결과를 견뎌내며 자랄 수 있는 힘을 주신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곳이다.” … 나는 속물이다. 십자가 없이 살 수 없다. 그러니 “오늘, 여기서, 주를 위해” 날마다 죽겠다.
이번 수업의 교훈이 적지 않다. 시험, 기도, 순종, 믿음. 교훈을 체득한 나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빛으로 나아가면 어둠은 물러간다. 좋은 것을 맛보면 나쁜 것을 삼간다. 그렇다. 울적함을 이기는 법은 유쾌함을 즐기는 것이다. 지식이 지혜가 되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왔다. “천국 구현”의 기쁨이 아니라 천국 구현의 “기쁨”을 보여주자. 이것이 예수께서 실천한 진정한 가르침(real teaching)이다. …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리스도의 본질인, 사랑(’09. 10. 13.).
사랑은 비효율적인 기적이다. 손해를 기꺼이 여긴다는 점에서 ‘비효율적’이고, 두 사람이 서로 동시에 그리 한다는 점에서 ‘기적’이다.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because the days are evil.”(Ephesians 5:16)
간절한 기도는 거룩한 노고이다.
“어서, 수산에 있는 유다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시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게 하십시오. 사흘 동안은 밤낮 먹지도 마시지도 말게 하십시오. 나와 내 시녀들도 그렇게 금식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는, 법을 어기고서라도, 내가 임금님께 나아가겠습니다. 그러다가 죽으면, 죽으렵니다.”(에스더 4:16)
“예수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서 땅에 떨어졌다.”(누가복음 22:44)
결혼은 사랑과 권위의 연합이다. 연합의 비결은 온전한 사랑과 그에 상응하는 권위의 회복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전혀 다른 두 개의 삶이 주 안에서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