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October 31st, 2009

October 31, 2009: 9:51 pm: bluemosesErudition

“비가 솔찬히 와서 녹록치 않겠다. 그래도 온맘다해 예술로 찬양하길. 그것이 당신의 사명이니까.” 궁극적 지향점. 무대 위의 상처 입은 치유자.

: 1:11 pm: bluemosesErudition

1. “예술가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 정치인이나 사회운동가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적인 예술가들은 90년대 이후 사회운동가, 아니 정치인의 상상력을 뒤쫓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현실 정치에서 당선 가능성이라든가 실현 가능성도 중요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상상력의 최대치가 제도정당의 그것에 머문다는 건 우리가 현재 세상을 넘어서길 포기한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나는 그런 상상력의 빈곤이 답답했어요.”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12:2) 자아의 욕망은 언제나 이미 체제에 배태된 타자의 욕망이다. 부단히 일상에 종속된 허영을 지양하며 공의를 구현하는, 사랑의 동심원적 확장이 요청된다. 난제 가운데 하나는 내가 추구하는 대안적 가치를 “재미 없어” 하는 것이다. 권위를 상실한 채 ‘재미’라는 올무 속으로 호명당한 나는 사명을 방치한 채 세속의 근사함을 잣대삼아 끊임없이 누군가와 견주게 된다. 자아가 소멸하는 듯한 불안의 두 원인은 이것이다: 사명의 퇴행과 사랑의 외도.

3. 그들이 구획한 협애한 식견과 사소한 쾌락에서 자유한다. 아, 얼마나 후퇴했던가. 나는 나의 길을 간다.

: 1:04 pm: bluemosesErudition

나누지 않는다면 일용의 양식 외에 더 받을 이유가 없다. 나누지 않으면 나뉜다. 공동체(community)는 라틴어 어원상 cum(함께)과 munus(선물)의 합성어이다. 내 것을 선물하여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삶, 이것이 공동체의 본향이다.

: 1:03 pm: bluemosesErudition

보수 체제의 위기에 따른 좌파의 약진 속에 반동적으로 대두되는 우파 혁명의 리더십. 파시즘은 자본(C)-민족(N)-국가(S)로 구성된 근대의 막장에서 출현하는 기득권과 [기득권이 되길 원하는] 대중의 결탁이다.

“히틀러는 … 대공황의 산물이었다. 이 사실은 경제사적으로 의미심장하다. 나치 정권 하에서 공식적으로 실업은 해결되고 노동력 부족사태까지 낳았다. 정말 그랬다고 해도 경제학자로서는 이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다. 1차 대전 후 베르사유조약을 체결할 때, 서방세계의 주요 산업국인 독일을 가난에 빠뜨릴, 천문학적 액수의 전쟁배상조항이 끼어들지 말았어야 했으며, 또한 일단 경기침체가 시작될 때 세계 주요국 정부들이 디플레이션 정책으로 4년간이나 경제를 방치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 이외에는. 그토록 가공할 테러를 써서 추진된 계획경제가 나치 독일 말고는 서방세계에 없었다. 그런 체제는 스탈린의 계획경제 즉, 대공황과는 무관했으면서도 더욱 끔찍한 테러 방식으로 운영된 공산주의 계획경제에나 비할 것이었다.”(양동휴, 2009: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