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rch 12th, 2010

March 12, 2010: 3:49 pm: bluemosesErudition

1-1. “일본의 현재 최대 문제점은 재정 적자가 아주 크다는 것이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를 합해 재정 적자가 800조 엔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일본 국채는 대부분 일본 내에서 처분되는데, 일본의 저축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개인 총 자산이 1600조 엔인데, 그 중에서 600조 엔은 가계부채라서 순수 자산은 1000조 엔 밖에 안 된다. 그런 상황에서 재정 적자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 “사회·경제적 격차가 늘고, 성장이 둔화되고, 환율이 불안정하고,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있고, 자살률이 상승하고 있다. … 전쟁 65년이 지나 아주 중요한 타이밍에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1-2. “민주당 정권은 세 그룹의 복합체이다. 첫째, 민주당 오리지널 그룹으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국가전략상 같이 민주당을 만든 사람들이다. 둘째는 오자와 간사장 같이 자민당 출신 그룹이다. 오자와 이치로는 정권 교체에 큰 힘을 실어 줬다. 그는 러시아의 (현 총리) 푸틴 같은 사람이다.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여러 면에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정치를 바꾸는 힘이 있다. 셋째는 구 사회당, 사민당 그룹으로 홋카이도(北海道)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이다.”

1-3. “한일관계를 저해하는 요인은 역사 문제, 독도 문제, 북한에 대한 입장,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 문제, 한일간 무역 구조 이렇게 다섯 가지다.” ”북한 문제는 굉장히 어렵다. 한일간의 의견차가 있다. 그러나 독일 유학 경험에서 볼 때, 서독의 동방정책이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최근 공개된 외교문서는 당시 프랑스의 미테랑 정권이 처음부터 서독의 콜 정권을 지지했고, 독일 통일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처럼 남북한이 단계적으로 조금씩 접근하고 일본이 미테랑 정부 때의 프랑스처럼 한국을 지지하면 남북관계, 한일관계는 원만히 진행될 것이다.”

1-4. “한국이 500만 해외동포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했으면 좋겠다. 재일동포는 현재 5세까지 나왔는데 한국말도 못하고 한국의 역사·문화를 잘 모르면서도 국적을 안 바꾸는 아주 희귀한 사람들이다. … 한일관계가 독일-프랑스 같은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 독일 유학 시절 프랑스에 간 적이 있었는데 두 나라 말로 나오는 방송이 있었다. 한일관계도 그렇게 되는 시대가 됐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란다.” _ 在日 논객 강상중이 본 新한일관계(2010/03/09)

 

2-1. “1950년 일본 규슈 구마모토 현에서 폐품수집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재일교포 1세이다. 일본 이름을 쓰며 일본 학교를 다녔던 그는 차별을 겪으면서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2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고, ‘나는 해방되었다’고 할 만큼 자신의 존재를 새로이 인식하게 된다. … 재일 한국인의 사회 진출이 쉽지 않아 대학원에서 유예기간을 갖던 중 은사의 권고로 독일 뉘른베르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독일에서 그는 베버와 푸코, 사이드를 통해 ‘재일(在日)’이라는 자기규정과 문제의식이 근대화와 서구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보다 보편적인 컨텍스트로 이해되고 확장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1998년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지 않은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도쿄 대학 정교수가 되었고, 일본 근대화 과정과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일본 지식인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냉정한 분석과 세련되고 지적인 분위기, 호소력 강한 목소리로 많은 팬을 가지고 있다.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적 발언 때문에 강연회를 할 때마다 극우파의 공격에 대비해 배에 신문지를 넣고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2. ”극심해진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기술을 강조하거나, 감성을 자극해 심리적 위안을 주는 … 두 가지 탈출구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실마리 삼아 고민하는 삶의 방법을 말한다. 100년 전 근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될 무렵 활동한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않고 ‘고민하는 힘’을 발휘해서 근대라는 시대가 낳은 문제와 마주했다.”

2-3. “자본주의는 타자와 차이를 만들어냄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일본 사회는 차이를 찾아내기가 몹시 힘들기 때문에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을 찾아내려 하고 거기서 격차가 생깁니다.” 다양하지 않은 격차, 이것이 물화된 세속에서의 인정투쟁이 산출한 위계이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돈을 벌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돈을 사용하고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윤리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본의 논리 위를 걸아갈 수밖에 없다.”(강상중, 2008[2009]: 62)

2-4. ‘타자를 배제한 자아가 존재할 수 없다’면 타자와의 관계는 곧 자아의 경계 안에 구축된 마음의 체제이다. 이는 <고민하는 힘>이 모색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 책은 정치/사회 개혁을 제언하는 책이다. …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는 지금이 바로 자본주의 핵심에 있는 가치관이나 인간관, 사회관, 삶의 방법을 다시 생각해볼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 4:00 am: bluemosesErudition

1.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한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2. 희귀 사례다. 김예슬은 ‘수술 중 각성’에서 우경화로 귀결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저항”하여 “탈주”를 감행하였다. 그는 필경 “자유의 대가로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는 대목에서 유추하기에 - 낭만주의적 감성에 경도되어 현 체제 속에 부재한 “삶의 목적”을 찾아 나선 것인지도 모른다. 다소 치기어린 25세 청년의 차라투스트라를 연상케 하는 선포(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와 속내(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는 그러한 심증을 우려케 한다. 배치에 내재된 욕망을 거스르는 超人이 되고자 “선택한” 트랙에서의 탈선. 그가 진정 自信이 아닌 自尊, 다시 말해 소유에서 존재로의 전환을 추구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싸움”을 결의하는 마음의 체제를 형해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이러저러한 글을 펴내며 선전할지도 모를 ‘결국 본인이 옳았다’는 우월감을 사상하지 않는다면, 김예슬이 언급한 “균열”은 “체제를 떠받치”는 “위악”의 변태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Erich Fromm의 Marx’s Concept of ManTo Have or To be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