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rch 8th, 2010

March 8, 2010: 10:31 am: bluemosesErudition

“한 공동체 사람들의 완전히 이성적이지 않은 관습들에 근거하는 선행하는 Sittlichkeit가 있고, 통합적이고 이성적인 국가체계 안에 토대를 둔 후행하는 Sittlichkeit가 있다.” _ Terry Pinkard(1994). Hegel’s Phenomenology: The Sociality of Reason

“헤겔에 따르면, 자연적인 ‘삶’은 항상 ‘불평등’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일부가 다른 일부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진 채 올바른 유형의 사회적 매개 없이 행위자들이 만난다면, 결과는 완전한 상호 인정이 아닌 지배 관계, 즉 ‘주인과 노예’ 관계일 수밖에 없다.”(Pinkard, 2000[2006]: 233~234)

* 물화, 주인(강자)과 노예(약자)의 인정투쟁, 인륜 혹은 윤리: 위계에서 경계로?, 제3의 학습 工夫

: 2:37 am: bluemosesErudition

Robert Fulghum(1986)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는 간과할 수 없는 통찰을 제공한다. 1)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세계관을 뜻한다. 2) 세계관은 마음의 체제로서 영유아시절 구축된다. 영유아교육의 중요성을 되새긴다. 이러한 점에서 <고래가 그랬어>의 발간은 유효한 전략이다.

: 1:33 am: bluemosesErudition

1. Spirit: 왜 기도하지 않는가. 제 힘으로 견딜만하기 때문인가. 주께서 어찌 하실 것 같은가.

2. Heart: 주의 말씀과 나의 인생은 직결된다. 가장 취약한 자아의 전장에 영적 병력을 집중시키자. 여호수아가 하나님을 대면하듯 영성 - 마음 눈 - 이 밝혀지기를 소망한다.

3. Body: “강해설교는 ‘우리가 어떻게 전하느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전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계속 세상의 경향을 설교의 발판으로 삼는다면 필경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기 바라시는 치명적 진리를 놓치게 된다”고 역설했던, Roy Clements는 동성연애로 좌초했다.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의 저자 Gordon MacDonald를 기억한다. 거룩을 허무는 음란을 삼가자. 다윗도 예외가 아니었다. 요셉을 따라 필사적으로 피하자.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나는 누구인가?

* ‘아간’이 예시하듯, 교만과 정욕은 결국 ‘자신이 세속에서 원하는 것을 좇는 삶’을 형상화한다. 누구의 만족을 위해 살 것인가?

: 12:50 am: bluemosesErudition

Q. 학습을 공통분모로 하는 ‘교육’과 ‘훈련’의 차이는 무엇인가? 예측 여부이다. 전자는 결과를 알 수 없고, 후자는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양자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A. “어떤” 학습인가, 여기에 해답이 있을 것이다. 학습은 [구획하는] 모델링과 [추동하는] 메커니즘에 따라 그 성질이 판이해진다. 참고: Pedagogy, Andragogy (or Heutagogy) etc.

: 12:32 am: bluemosesErudition

알아도 하지 않는다?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식화는 무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