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September 27th, 2010

September 27, 2010: 3:38 pm: bluemosesErudition

子安宣邦(2010). 思想史家が読む論語:「学び」の復権. 岩波書店.

: 1:58 am: bluemosesErudition

These lines begin “Solitude,” first published in the Feb. 25, 1883, issue of the New York Sun. The author was Ella Wheeler, and the inspiration for the poem came to Miss Wheeler on a day in early February, when she was to attend the governor’s inaugural ball in Madison, Wis. She was on a train, en-route to the celebration, when she noticed a young woman dressed in black sitting across the aisle from her. Since the woman was crying, Miss Wheeler sat next to her and sought to comfort her for the rest of the journey. When they arrived, the poet was so depressed that she wondered how she could possibly attend the scheduled festivities. Later on, with the incident behind her, Miss Wheeler prepared for the inaugural ball. As she looked at her own radiant face in the mirror, she suddenly recalled the sorrowful widow. It was at that moment that she wrote the opening lines of “Solitude”:

“Laugh, and the world laughs with you; Weep, and you weep alone.”(Ella Wheeler Wilcox, 1883)

* 부정적 감정의 전염성을 의도적으로 곡해한, 위 경구는 실제와 부합하지 않는다.

: 1:32 am: bluemosesErudition

1. “나 자신의 마음 상태는 이 두 가지 감정을 모두 종합하고 그것들을 넘어서도 있지. 나의 지성은 비관주의적이지만 나의 의지는 낙관주의적이란다. 어떤 상황이건 나는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하는 데 내가 비축해 놓은 의지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단다. 나는 절대로 환상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는 일도 없어, 나는 언제나 끝없는 인내심으로 무장되어 왔단다. 그건 수동적이고 활력 없는 인내심이 아니라 끈기 있는 노력과 결합된 참을성이야.”(1929. 12. 19) _ “이는 그람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말이지만 그의 혁명 전략을 이해하는 데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상을 어른스럽게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람시가 이러한 태도를 가지로 무엇을 추구했는가이다.”(강유원, 2005: 109)

2. 그람시가 로맹 롤랑(1866~1944)의 문구를 인용하고 있는 한 예는 1920년 4월 30일자의 <<신질서>>에 실린 한 논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혁명 과정에 대한 사회주의적 구상은 롤랑이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라는 자신의 문구에서 요약했던 두 가지 근본적인 요소들로 특징지어진다.” <무정부주의자들에게 보내는 말 Discorso agli anarchici>이라는 제목의 이 논설 전체는 매우 흥미롭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것은 진정한 혁명가들, 그리고 혁명 정당의 건설은 단순히 혁명적 “진리”를 갖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는 명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필연적으로 그러한 진리는 대규모의 대중적 행위를 불러일으킬 수 없다. 러시아 혁명의 승리 이후로 무정부주의자들이 자신들이 항상 옳았음을 확인해 왔지만, 그들은 그 혁명을 수행한 이들이 왜 무정부주의자들이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이었는지를, 그리고 이탈리아 프롤레타리아트가 왜 무정부주의자들이 아닌 사회당을 따랐는지도 설명할 수 없다고 그람시는 쓰고 있다. “절대적 진리가 대중들을 행동하게 만들기에는, 대중들에게 혁명 정신을 고취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지만, ‘특정한’ 진리는 필수적이라는 것을 그들이 인식하게 되었을 때에만, 또 인간 역사의 목적에서 유일한 ‘진리’는 행동 속에 체현되는 것으로서, 행동은 열정과 추진력을 그 시대의 정신 속으로 불어넣으면서, 심오한 운동들과 실제적인 성과들로 대중들의 편에서 표출된다는 것을 그들이 인식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무정부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빠져 있는 모순을 해결하고, “주제넘은”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혁명가들이 될 것이다(Lynne Lawner, 1973: 219~220).

* 진리는 행동 속에 체현된다.

: 12:22 am: bluemosesErudition

1. 문상을 다녀왔다. 죽음은 유산의 이전이며, 유족의 몫은 ‘빈 자리’다. 삶의 공란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기억과 그것의 산출이다. 추억을 또 다른 추억으로 대체하며 인생은 아물고 새살이 돋는다.   

2. 비판과 달리 부정은 정서의 영역에 속한다. 설령 일시적으로 공감이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부정은 이내 쌍방의 마음을 냉랭하게 한다. 부정은 공멸로 통한다.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