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좋은 학교란 어떤 학교일까? 나는 좋은 학교란 끊임없이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가 문제를 공유하고 그 해결을 위해 협력하고 연대하는 학교라고 생각한다. 교육이라는 일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사업이다.”
2. “학교라는 장치는 고대 그리스의 아카데미까지 소급되는 역사를 갖고 있지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지되어온 규범을 갖고 있디. 그것은 첫째 문해력의 전통이고, 둘째 민주주의의 실현이며, 셋째 공동체의 형성이다. 이 세 가지 규범은 학교의 존재 근거로서 앞으로 어떠한 사회가 되더라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 나는 오늘날 추진되고 있는 세계 각국의 학교개혁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제시된 두 가지 학교상을 기반으로 하여 전개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그 하나는 존 듀이가 구상한 ‘배움의 공동체’로서의 학교상이고 다른 하나는 엘렌 케이가 구상한 ‘가정학교’로서의 학교상이다.”
3. “앞으로의 학교개혁 지침으로 다음 세 가지 원칙을 제기해두고 싶다. 첫 번째 원칙은 ‘보다 적게 배우는 것이 보다 많이 배우는 것(Less is more)’이라는 원칙이다. … 한층 더 본질적인 내용을 ‘좁고 깊게’ 배우는 학교로 탈피하여 보다 높은 질의 배움을 모든 아이들에게 보장해야 한다. 두 번째 원칙은 ‘교육과정과 조직의 단순화(Simple is better)’이다. … 한 명 한 명의 교사가 전문가로서의 전체성(全體性)을 되찾고, 교내에 서로 배우고 서로 성장하는 동료성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과 교사조직을 가능한 한 단순화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세 번째 원칙은 ‘작은 공동체로 섬세한 관계를 기본으로 삼는 것(Simple is sensible)’이다. … 학교 폭력이든 이지메든 문제행동이든 학급 붕괴든 간에 많은 위기적 현상은 대규모 학교일수록 심각하다. 대규모 학교일수록 아이도 교사도 부모도 있을 곳을 잃고, 서로 배우는 친구도 잃고, 자기 자신도 잃는 경향이 현저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규모 학교일수록 아이에 대해서도 교사에 대해서도 전체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관리가 강화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 학교는 ‘잃어버리는 장소’에서 ‘찾아내는 장소’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_ 佐藤學(2010[2011]). 박찬영(역).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살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