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y 7th, 2015

May 7, 2015: 2:19 am: bluemosesErudition

“월세는 절대 안되요. 월세는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려워요. 될 수 있으면 전세로, 쉐어하우스를 하더라도 방이 아니라 집의 꼴을 갖춘 곳에서 사세요. 공간 자체가 삶의 질을 변화시킵니다.”(박해천)

: 2:04 am: bluemosesErudition

SPS는 직관에 호소한다. 하여 그 효과와 한계가 분명하다.

: 1:45 am: bluemosesErudition

1. “How long, O simple ones, will you love being simple? How long will scoffers delight in their scoffing and fools hate knowledge?”(Proverbs 1:22 ESV)

2. “이 부분을 잘 지적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히포 레지우스라고 하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로마 제국 해변 도시의 주교였다. 그는 자신의 주요 작품인 <삼위일체론>(On the Trinity)을 쓰는 중에, 잠시 휴식을 위해 근처의 아름다운 해변으로 산책을 갔다. 산책을 하면서 그는 다소 이상하게 행동하는 소년을 보았다. 그 소년은 바닷물을 통에 가득 채워서 해변에 자신이 파 놓은 웅덩이에 계속해서 갖다 부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장면을 다소 신비스럽게 여기며 한참을 쳐다보았다. 왜 그러는 것일까? 결국 그는 그 소년에게 물었다. 그러자 소년은 지중해 바다를 가리키면서, ‘저 바다를 다 비워서 이 모래 구멍에 담을 거예요.’ 아마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린아이들의 이상하고 순진한 생각에 어른들이 짓는 예의 그 묘한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그렇게는 할 수 없지! 바다를 네가 판 그 자그마한 구멍에 채울 수는 없어.’ 그러자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에 대한 책을 쓰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결코 한 권의 책에 끼워 맞출 수가 없어요!’”

3. “나는 기독교 신학의 발전에 전문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설명해 온 것을 보면 두 가지 욕망 사이에 긴장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는 하나님이 실제로 어떠한 분인가에 대해 공정하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을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려는 것이다. 나는 두 가지에 다 공감하지만, 인간의 지성은 하나님의 위엄과 탁월함을 이해하려 애쓰다가 결국에는 실패하기 때문에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하나님을 인성이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제한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수용할 수 있게 우리의 지성을 확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합리적 성찰보다는 기도와 예배를 통해 가장 잘 이루어진다. 물론 우리는 누구나 간단한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단순화는 축소로, 축소는 왜곡으로 가기 쉽다. 좋은 신학은 하나님을 공정하게 다루면서 신적 실재를 이해하려 애쓰는 우리의 연약하고 미약한 지성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_ 알리스터 맥그래스, <하나님은 누구인가>, 성서유니온, 2014, 132~1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