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책을 읽는 것이 예전부터 좋아서 꽤나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통틀어서 저만큼 책을 많이 읽은 인간은 주변에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음악도 좋아해서 참 여러 가지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학교 공부를 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거기에 얼마나 옳은 슬로건이 있든, 아름다운 메시지가 있어도, 그 올바름이나 아름다움을 지탱하는 영혼의 힘, 모럴의 힘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은 공허한 말의 나열에 불과하지요. 제가 그 때 몸으로 체득한 것은, 그리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당시의 와세다대학은 수강한 강의들의 수업료를 내면 되는 제도라, 일을 하면서 시간을 내서 강의에 나가 7년 들여 어쨌거나 졸업했습니다. 마지막 해엔 출석일수가 모자라 또 한 해 다녀야 하는 상황에 봉착해서 담당교수실에 가서 ‘실은 제가 이런 사정으로 결혼도 하고 매일 일도 하고 그래서 대학에 오기 힘들고…’라고 설명했더니 그 교수는 일부러 제가 경영하던 고쿠분지의 가게까지 직접 와주시고 ‘너도 참 여러 가지로 고생하네’라고 말하고 귀가하셨습니다. 덕분에 졸업도 할 수 있었죠.”
“제 20대는 아침부터 밤까지 육체노동을 하고, 빚을 갚는 일에 바쳤습니다. 당시의 일을 돌이켜보면 참 열심히 일했구나, 라는 기억 밖에 없습니다. 아마 보통의 20대들은 더 즐겁겠지 상상해보지만 제게는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 ‘청춘의 날들을 즐긴다’같은 여유는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도 틈만 나면 책을 잡고 읽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생활이 힘겨워도,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은 제게 있어서 변할 일이 결코 없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 기쁨만은 아무한테도 빼앗길 수 없었습니다.”
“1978년 4월의 화창하게 개인 날 오후에 저는 진구구장에 야구를 보러갔습니다. 그 해 센트럴 리그 개막전으로 야쿠르트 스왈로즈 대 히로시마 카프의 경기였습니다. 오후 한 시부터 시작하는 데이 게임이었죠. 저는 당시 야쿠르트 팀의 팬으로 진구구장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자주 산보하는 김에 시합을 보러가곤 했습니다. 그 시절의 야쿠르트 팀은 참으로 약한 팀으로서 만년 B급, 구단도 가난하고, 화려한 스타선수도 없었습니다. 당연하지만 인기도 별로 없었습니다. 개막전이라고 해도 외야석은 텅텅 비었습니다. 혼자서 외야석에 널부러져서 맥주를 마시면서 시합을 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진구구장의 외야는 의자석이 아니라, 풀밭의 언덕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주 좋은 기분이었습니다. 하늘은 아름답게 청명했고, 생맥주는 아주 차가웠고, 오랜만에 보는 초록색 풀밭 위로 흰색 공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야구라는 것은 역시 구장에 가서 봐야 하는 것이지요. 정말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히로시마 팀의 선발투수는 아마도 ‘야키바’였고 야쿠르트의 선발은 ‘야스다’였습니다. 1회말, 야키바가 제 일구를 던지니 힐튼은 그것을 왼쪽으로 고스란히 내리쳐 이루타로 만들었습니다. 야구방망이가 공에 부딪히는 기분좋은 소리가 진구구장 안에 울려퍼졌습니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습니다. 저는 그 때, 아무런 맥락도 근거도 없이, 불현듯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몰라’라고.”
“밤 늦게, 가게 일을 끝내놓고, 부엌 테이블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새벽까지의 몇 시간 빼고는 자유로운 시간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대략 반년에 걸쳐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소설을 써냈습니다.”
_ 무라카미 하루키(1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