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y 15th, 2015

May 15, 2015: 2:55 am: bluemosesErudition

“당시 그들을 사로잡은 마약은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라는 것이었고, 가운데 어휘 ‘애시드’는 그들의 성격을 규정짓는 용어로 선택되어 사이키델릭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히피의 근거지인 샌프란시스코 애시드록(Acid rock) 그룹들은 LSD 환각경험을 통한 의식해방으로서 인류애, 공동체의식, 그리고 사랑을 부르짖었으며 1967년 7월과 8월을 이른바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으로 이끌었다. 사이키델릭 애시드 그리고 ‘사랑의 여름’으로 채색된 그 시절을 관통한 대표적 작품은 비틀스의 최고걸작 <서전트 페퍼즈 론리 하츠 클럽 밴드>였다.”

: 2:21 am: bluemosesErudition

“1966년 5월에 발표된 <펫 사운즈>는 이같은 브라이언 윌슨의 예술적 욕구가 낳은 산물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비치 보이스라는 그룹의 작품이라기보다는 브라이언 개인의 독집에 가까웠다.”

: 1:21 am: bluemosesErudition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 — 정확하게 인용하면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d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 라 규정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역판 역자후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 “개역을 하기 위해 다시 읽어보니 첫 번째 번역할 때와는 달리 E. H. 카의 이 책은 단순히 역사와 역사학을 이론적 학문적으로는 설명하는 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매개로 당대의 서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수구적인 담론과 냉전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 그것에 대항하고 있는 매우 논쟁적인 책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카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연 — 1961년 1월부터 3월[까지] — 을 하면서 무엇에 대항하려 했던 것인가. 그는 제2판을 출간하기 위해 써놓은 서문에서 자신이 대항하려는 것들을 “진보에 대한 모든 신념과 인류의 더 나은 진보에 대한 모든 전망을 어리석은 것이라고 배제해버리는 오늘날의 회의주의와 절망의 조류”라 밝히고 있다.

역자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그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연했던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즘이라는 공동의 적에게 맞서 협력했던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상호 대립하거나 공존하면서 경쟁하고 있던 냉전기였다. 이 냉전기에 영국을 비롯한 서구의 엘리트 지식인들은 사회의 위기를 부추기고 회의주의를 전파하면서 더 민주적이고 더 평등한 사회를 향한 역사의 변화를 부정하려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당대의 서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집단에 봉사하고 있었다. 이러한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해야 할 긴급성과 필요성이 노년에 접어든 카로 하여금 ‘역사’를 화두로 삼아 강연을 하고 책을 펴내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폴란드 출신의 영국 역사가 루이스 네이미어(Lewis Namier, 1888 – 1960)는 “변화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결합되기 시작했고 그래서 보다 나쁜 것에로의 변화로도 생각될 수 있었던 그런 시기” 즉 “보수주의적 사고방식이 부활하는 시기”에 등장했던 역사가이다. 그는 “어떠한 이념도, 어떠한 혁명도, 어떠한 자유주의도 없었던 시대”에 대해 썼고, “1848년의 유럽혁명 — 실패한 혁명, 고양되고 있던 자유주의의 희망들을 전 유럽에 걸쳐 좌절시킨, 그리고 무력 앞에서의 이념의 공허함과 군대와 맞섰을 때의 민주주의자들의 공허함을 증명한 그 혁명 — 에 관한 심층적인 연구”를 통해, “참담하게 실패한 그 혁명을 ‘지식인의 혁명’(revolution of intellectuals)이라 부름으로써”, “정치라는 과업에 이념이 침투하는 것은 무력하고 위험스럽다”는 교훈을 제시하려했던 것이다.

_ 강유원, 2015. 5. 13.